미국에서 1940, 50년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포크 음악가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를 한국 매체에서는 "미국의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부른 가수"로 소개하곤 한다. 한국에서 1970, 80년대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들을 통칭하는 '민중가요'라는 표현을 미국 포크 가수의 노래에 붙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우디 거스리를 민중가수라고 부르는 건 꽤 적절하다. 미국이 대기근("Dust Bowl")과 대공황을 겪던 시절, 거스리는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는 물론, 인권과 불평등 문제를 노래로 엮어내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디 거스리를 대표하는 노래는 'This Land Is Your Land'(번역된 가사는 여기에서 읽어 볼 수 있다)이지만,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일련의 노래들이 있다. 거스리의 '살인 발라드(murder ballads)라고 불리는 이 노래들은 남북전쟁(1861~65) 이후인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악명 높았던 무법자들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거스리가 노래한 무법자들에는 제시 제임스(Jesse James),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찰리 플로이드(Charlie "Pretty Boy" Floyd)처럼 헐리우드의 영화나 책, 다큐멘터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스포티파이에서 한곳에 모아 둔 우디 거스리의 '살인 발라드'

뉴요커의 제시카 윈터(Jessica Winter)는 루이지 맨지오니가 대중의 안티히어로(antihero, 반反영웅)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서 우디 거스리가 찰리 플로이드를 노래한 곡, "Pretty Boy Floyd"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무법자와 압제자의 분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가사는 이렇다: "어떤 사람은 총을 들이대고 강도질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만년필로 강도질을 해. 인생이라는 여정을 통해 알게 되는 건, 무법자가 한 가정의 집을 뺏지는 않는다는 거야."

19세기 미국의 무법자들이 은행을 털고, 돈을 훔치기는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죽였지만, 집을 빼앗아서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한 가정의 집을 뺏는다(drive a family from their home)는 얘기는 은행이 집을 압류하는 상황을 말한다. 무법자의 강도질은 불법이지만, 은행을 비롯한 부자들의 강도질은 합법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분을 노래한 것이다.

이게 지금 많은 미국인이 기업의 CEO를 살해한 루이지 맨지오니에 환호하는 이유다. 보험 회사의 CEO들은 알고리듬을 사용해—즉, "만년필로"—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지만 처벌받기는커녕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데, 맨지오니는 그런 CEO 한 명을 죽였을 뿐이라는 거다.

무법자 빌리 더 키드와 현상금 전단 (이미지 출처: Wikipedia, Missouri State University)
경찰에 체포된 찰리 "프리티 보이" 플로이드의 신상 정보 (이미지 출처: Reddit)

제시카 윈터는 이어서 무법자를 학술적으로 정의한 학자를 소개한다. 미국의 민담(folklore)을 연구한 리처드 E. 마이어(Richard E. Meyer)는 무법자(outlaw)와 범죄자(criminal)를 구분해서 전자를 아주 미국적인 민담 속 영웅이라고 말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미국의 무법자-영웅은 대중이 자신들과 동일시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런 무법자가 미국 역사 속에서 대중을 압제하는 경제적, 행정적, 법적 시스템에 맞서는 존재로 받아들인다."

한국인이라면 여기에서 홍길동이나 전우치를 떠올릴 것이고, 영국인이라면 로빈 후드(Robin Hood)를 떠올릴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미국에 국한된 민담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기원이 정확하지 않거나 허구가 분명한 인물들과 달리 19세기 미국의 무법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은 현실의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한국이나 영국의 민담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이 법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쉽게 잡히지 않았던 비결은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준 데 있다.

그 이유는 리처드 마이어의 설명처럼, 대중이 무법자들을 자기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단순히 대중의 투사(projection)가 아니다. 찰리 플로이드는 은행에서 훔친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은행을 털다가 모기지(mortgage) 서류를 발견하면 조각조각 찢어버려 사람들의 은행 빚을 탕감해 줬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열차 강도로도 유명했던 제시 제임스는 열차 내 승객들에게서 돈과 귀중품을 뺏을 때 승객의 손을 살펴 보고, 굳은 살이 없이 말랑말랑한 손을 가진 사람들의 돈만 뺏었다는 일화도 있다.

리처드 마이어의 논문, 무법자 제시 제임스의 시신 (이미지 출처: JSTOR, PBS)

미국 대중의 무법자 사랑을 확인하려면 굳이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없다. 용의자 루이지 맨지오니가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일제히 인기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Walter White)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마약왕으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암이었다. 암에 걸린 게 확인되었지만 의료 보험 회사는 치료비 지급을 거부했고, 다급해진 주인공은 화학 교사로서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순도 높은 마약을 만들어 낸다는 게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내와 함께 장애를 가진 아들을 키우는 월터 화이트는 정규직 교사의 봉급으로 생활이 충분하지 않아 부업으로 세차장에서 일한다. 미국에서 교사가 그렇게 "투잡"을 뛴다는 것, 그렇게 일하면서도 항암 치료비를 구할 수 없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미국의 시청자들은 이렇게 성실한 소시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약왕이 되어 미국 사회의 '시스템'에 복수를 하는 모습에 환호했다.

물론 루이지 맨지오니는 월터 화이트에 비하면 넉넉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미국인들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에 주목했다. 중요한 건 무법자의 출신이 아니라,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 (이미지 출처: The Independent, Villains Wiki)

리처드 마이어는 무법자가 대중의 환호를 받는 안티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범죄 대상이 "일반 대중이 아니어야 하고, 대중을 압제하는 '눈에 보이는 상징들(visible symbols)'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 대가로 대중은 무법자를 지지하고, 존경하고, 도와준다는 것이다. 루이지 맨지오니가 범행 후에 남긴 노트를 보면서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가 얼마나 "압제적(oppressive)"이고 "미국에만 존재하는" 방식인지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의 기생충 같은 이들이 연례행사를 여는 곳에 가서 CEO를 때려잡는 거다. 그 사람만 정확하게 겨냥해서 죄 없는 사람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말이다."

맨지오니는 미국의 전통 민담 속 무법자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위해 범행 장소인 뉴욕으로 이송되어 오는 루이지 맨지오니 (이미지 출처: Newsweek)

루이지 맨지오니의 범행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취재한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은 어느 갑부의 경고를 에필로그처럼 보도 말미에 소개했다. 닉 하나우어(Nick Hanauer)라는 벤처투자자가 2014년에 한 테드 토크(TED Talk)에 나와서 했던 얘기로, 제목은 "상류층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쇠스랑을 든 군중이 몰려옵니다(Beware, fellow plutocrats, the pitchforks are coming)"이다.

"여러분은 아마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저는 여러분이 자주 듣는 '상위 0.01퍼센트'의 부자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측정해도 저는 상류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며 자기를 소개한 하나우어는, "같은 상류층에 속한 분들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참고로, 한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다.

하나우어는 자기가 극도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비결로 운과 노력, 그리고 몇 가지 재능을 들었다. "저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직관적으로 예측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미래에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는 게 뭔지 아시나요? 쇠스랑을 든 성난 군중입니다. 탐욕에 눈이 먼 상류층 사람들이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엄청난 부를 누리는 동안 99%의 국민들은 점점 더 뒤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계속해서 부, 권력, 소득이 최상위 극소수에 집중되면, 우리 사회는 민주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18세기 프랑스와 같은 새로운 봉건주의 사회, 지대(rent, 임대료)를 챙기는 사회로 변화할 것입니다. 쇠스랑을 든 군중이 혁명을 일으키기 전 프랑스 말입니다. 저와 같은 상류층에 속하는 억만장자 여러분,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버블 속에 살고 계신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지속되지 못합니다." 🦦  

루이지 맨지오니를 성인으로 묘사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포스터 (이미지 출처: A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