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사의 CEO 브라이언 톰슨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26세의 루이지 맨지오니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심각한 허리 통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다 다쳤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확인된 이야기는 아니다) 척추 유합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아래 X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작은 수술이 아니다. 이런 수술을 받고도 계속해서 통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루이지 맨지오니의 척추유합수술 후 사진 (이미지 출처: Newsweek, Reddit)

미국에서 병원을 찾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경험이 있다. 의료보험 회사와의 줄다리기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단일 지불자 의료 체계(single payer healthcare system)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환자가 어느 병원에 가도 국가의 의료보험 체계 안에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내가 가는 병원이 내가 가입한 (민간) 의료보험사의 네트워크 안에 들어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평소 다니던 병원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지역을 여행 중에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기거나, 처음 겪는 질병으로 새로운 병원을 찾아야 할 때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특정 진료, 치료 행위에 보험수가가 적용되는지를 쉽게 알 수 있지만, 미국의 보험사 중에는 이를 분명하게 알리지도, 의사가 판단하게 하게 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다. 특정 치료를 해야 하는지, 심지어 큰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는지를 병원이 아닌 보험사가 결정하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은 보험사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번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에 한 여성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임신 9개월일 때 한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죠. 병원에서는 아이의 뇌에 거대한 종양이 자라고 있어서 뉴욕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나티드헬스케어 보험사에서는 다른 주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보험사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저는 아이와 병원에서 3일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는 (CEO 살해 같은) 폭력을 용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의자가 왜 그랬을지는 완벽하게 이해합니다."

위급한 상황에 있는 환자의 이송을 허락하는 데 왜 3일이나 걸려야 했을까? 그 특정 케이스가 발생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앞의 글에서 언급한 책 'Delay, Deny, Defend'에 따르면 이런 일은 미국에서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의료보험사가 의도적으로 하는 Delay(지연)이다. 그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미국 전역에서 수천, 수만 건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보험사의 승인을 받기 위해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 사망하는 환자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보험사는 수술에 들어갈 수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미국인들이 의료보험 회사를 죽음의 상인(death marchants)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의료보험 회사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왼쪽)과 시장의 성장세. 현재 2조 3,212억 달러 규모다. (출처: Visual Capitalist, Precedence Research

더 잔인한 방법은 Deny(거부)다. 물론 실험적인 약의 사용을 포함한 모든 치료를 보험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의료보험은 없다. 하지만 욕을 많이 먹는 미국 의료보험 업계에서도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지급 거부율은 업계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매달 봉급에서 꼬박꼬박 보험료를 떼어가면서, 환자의 지급 요청 중 1/3을 거절하는 게 브라이언 톰슨의 유나티드헬스케어다. 이 회사의 자회사인 내비헬스(NaviHealth)는 가입된 노인 환자의 지급요청을 거절하는 알고리듬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이를 알게 된 가입자들에게서 집단 소송을 당했다. 미국의 연방 상원은 자체 조사를 통해 유나이티드헬스케어를 비롯한 대형 의료보험사들이 뇌졸중과 낙상 사고를 당한 노인 환자들의 치료비 지급을 고의로 거부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살해당한 CEO 브라이언 톰슨은 이렇게 지급을 거부하는 절차를 AI 혹은 알고리듬을 통해 자동화한 "혁신"을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전해진다.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결정을 내려도 이를 뒷받침하는 서류를 많이 요구해서 지급을 지연하거나 거부할수록 보험사의 이윤은 증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가입자가 보험사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의료보험 시장이 대형 기업들의 독과점 체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지적해 온 사람 중 하나가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이다. 그는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이 미국 의사의 10%를 장악하고, 이런 유리한 위치를 사용해서 보험료를 인상하고 경쟁기업을 압박할 뿐 아니라, 환자와 의사의 요구를 무시하며 수익을 추구하는 "극도의 독점 행위(a monopoly on steroids)"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브라이언 톰슨이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CEO로 취임한 후 유나이티헬스 그룹은 매년 9~14%라는 매출 성장을 만들어 냈고, 지난해에는 4,000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달성했다. 그 공로로 톰슨은 지난해 상여금을 포함한 연봉으로 1,020만 달러(우리 돈으로 147억 원)를 받았다. 물론 다른 미국 대기업 CEO들의 연봉과 비교해서 유달리 많은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헬스케어 같은 의료보험 회사들이 올리는 수익은 결과적으로 고객들이 누리는 이익(=건강)을 통해 얻어진 게 아니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 본사 건물과 브라이언 톰슨 (이미지 출처: Investopedia, UnitedHealthcare)

미국인들의 건강은 나빠지고 있고, 이는 기대수명으로 나타난다. 아래의 그래프는 여러 선진국에서 1인당 지출하는 의료비(X축)와 기대 수명(Y축)의 변화를 표시한 것이다. 1970년부터 2018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나라에서 기대 수명은 80세를 넘기며 증가하고 있는데, 미국만 예외다.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79세를 넘지 못하고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1인당 지출하는 의료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결과를 낳은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이 나라들 중에서 의료보험이 단일 지불자 체계가 아닌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 그리고 민간 의료보험으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 몇 배에 달하는 의료비를 지불하는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원인이 다양하다고 해도 가장 크고 분명한 이유는 의료보험 시스템의 문제다.

내 아이가 어릴 때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적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혹시 뼈를 다친 게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응급실에 갔었다. 대기실에서 2시간 넘게 기다려 간호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손가락을 만져 보더니 별문제가 아니라면서 타이레놀 2개를 주었다. 몇 주 후에 날아온 청구서에 적힌 치료비는 약 1,500달러,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이 넘었다. 물론 보험이 커버했기 때문에 우리가 부담하는 액수는 거의 없었지만, 의료보험 회사들은 이렇게 진료비와 약값을 다른 나라보다 몇 배로 과다 청구를 하며 돈을 번다. 미국에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 국민의 건강을 전혀 증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출처: Our World in Data)

미국의 사례는 한국에서 보수 정권이 종종 끄집어내는 '의료보험 민영화'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보여준다. 2021년에 나온 자료를 봐도 미국은 의료체계의 퍼포먼스—의료 접근성, 절차, 행정 효율성, 평등한 기회, 결과 등의 기준으로 측정—가 선진국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만큼 뒤처져있지만 가장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 의료비 빚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1억 명, 인구의 40% 달한다. 미국에서 개인 파산 원인의 1위가 본인이나 가족의 치료비 부담이다. 넉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가족이 중병에 걸리는 순간 파산하고, 심지어 집을 잃고 노숙인이 될 수 있는 게 21세기 미국의 풍경이다.

선진국의 의료 시스템 성능과 의료비 지출 (출처: Commonwealth Fund)

결국 의료보험 회사의 CEO가 살해당한 것을 보는 미국인들이 던지는 농담은 이렇게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서 돈을 버는 기업과 기업인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는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건 이후에 나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20대의 41%가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CEO가 살해당한 것을 "그럴 수 있다(acceptable)"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의료보험업계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미국의 기업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수는 근년에 들어 크게 늘고 있다.

톰슨이 살해된 뉴욕시에서 "더 많은 CEO를 죽여주세요"라는 배너를 든 시위대 (이미지 출처: Reddit)

톰슨 살해의 용의자 루이지 맨지오니는 체포되던 순간에 가방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길지 않은 선언문(manifesto)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이 선언문을 입수한 기자가 이를 자기 웹사이트에 올렸는데, 그의 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세계에서 약 42위에 불과합니다. 유나이티드는 시가 총액 기준으로 애플과 구글, 월마트에 이어 미국에서 [불분명한 단어] 최대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우리의 기대 수명은? 현실은 이러한 [불분명한 단어] 기업들이 너무 강력해졌고, 엄청난 이익을 내기 위해 미국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기업들이 그러고도 무사하도록 미국의 대중이 허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는 그보다는 복잡하지만, 그걸 전부 여기에 적을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걸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업계에 만연한 부패와 탐욕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인식의 문제가 아니며, 파워게임의 문제입니다. 저는 잔인할 정도 정직하게(with such brutal honesty) 이 문제에 직면한 첫 사람인 것 같네요."

즉, 맨지오니는 자기가 고통받는 많은 미국인을 대변해서 행동에 옮겼다고 말한 것이다. 그가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미국의 대중이 가진, 그러나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깊은 불만에 호소한 범인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찰스 아서 플로이드(왼쪽)와 루이지 맨지오니의 머그샷 (이미지 출처: Wikipedia, France 24)

마지막 편, '웃는 군중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