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방문 연구자의 자격으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가족은 미국에 있었지만 한국에서 하는 일이 길어져 일 년 중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내는 생활을 5년 넘게 하다가, 말하자면 '귀국'을 한 셈이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기 전에 1년 정도를 함께 있을 계획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몇 달 뒤에 세상을 뒤흔들 일이 생길 줄 전혀 알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후 한국에서도 그랬겠지만, 전염병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미국에서는 모두가 공포에 빠졌고, 식료품을 사는 것 외에는 몇 달 동안 외출도 하지 못했다. 그저 텅 빈 동네를 산책하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 그러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이웃을 만나면 가까이 마주칠까 봐 서로 웃으며 한쪽이 길을 건너 "사회적 거리"를 유지했다. 대략 1년 정도 그렇게 살면 끝날 것 같았던—과학적 근거가 없는—기대는 완전히 무너졌고, 사람들은 집과 일터가 구분되지 않는 애매한 공간에서 유령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비로소 2022년에 다시 한국을 찾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라 생각하며 도착했는데, 그사이에 한국은 완전히 다르게 변했고, 내가 모르는 낯선 장소처럼 느껴졌다. 북적이던 거리는 텅 비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서로를 피하며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그 사이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망하지 않고 버티는 식당들도 9시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9시가 넘으면 택시를 타는 걸 포기해야 한다며 저녁 식사만 마치면 모두 집으로 향했다.

내가 알던 세상에서 활기가 30% 정도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이, 한국이 아니었고, 한 달 후 무척 실망한 기분으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2020년, 텅 빈 맨해튼 거리 (이미지 출처: Reuters)

팬데믹이 온 세상을 바꿨는데 한국만 그대로일 거라고 기대한 건 분명히 내 착각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에서 활기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울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저 "삶이 예전 같지 않다"고 불평하는 게 철없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내가 느끼는 이 공허함, 부질없음의 정체는 뭘까, 하고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글이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오리지널스' 같은 책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트가 2021년 4월에 쓴 칼럼이었다. 그랜트는 팬데믹을 지나는 우리가 모두 느끼면서도 꼭 집어 표현하지 못했던 이 증상이 "languishing(시들함, 기운 없음)"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 칼럼이 그해 뉴욕타임즈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공유된 글이 되었다(댓글도 무려 1,400여 개에 달한다)는 사실은 그 진단이 얼마나 많은 공감을 불러왔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애덤 그랜트는 칼럼에서 이 증상에 languishing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사회학자 코리 키스(Corey Keyes)라고 밝히면서 그의 연구 논문을 링크했다. 키스 교수는 대중적인 연구자가 아니었고, 연구 논문으로 소개한 개념이었는데, 그랜트라는 스타 교수가 뉴욕타임즈에 그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의 저자 코리 키스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애덤 그랜트 교수의 소개로 이 개념을 소개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겪는 시들함, 기운 없음의 정체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어했고, 그렇게 해서 올해 출간된 책이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원제: Languishing)이다.

항상 열정적이고 웃는 얼굴의 그랜트와 달리, 코리 키스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성격이다. 인터뷰어가 질문하면 책을 팔려는 저자들처럼 기다렸다는 듯 답을 쏟아내는 대신 잠깐 뜸을 들이고 말하곤 한다. 단지 그의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 도입부에 약간의 힌트가 있다. 그는 자기가 "말수 적고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었다"라고 하면서 "조금 복잡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로 "함께 사는 조부모와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그에게는 책에서 털어놓지 않은 사연이 분명히 있다.

코리 키스는 한 인터뷰에서 그 사연을 짧게 이야기했다. 그와 그의 누나는 어릴 적 집에서 심각한 학대와 폭력을 받으며 자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척이 아이들의 조부모에게 이를 알렸고, 두 아이는 조부모 밑에서 평온하게 자랄 수 있었다. 그게 그가 미디어에 털어놓은 사연의 전부다. 어릴 때 받았던 학대를 낱낱이 드러내서 책으로 쓰는 일이 흔한 지금의 미국 출판계를 생각하면 코리 키스가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혹시 트라우마라서 건드리기 싫은 걸까?

이 책은 '시들함'의 정체를 설명하는 전반부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다루는 후반부로 나뉜다. 원서의 제목은 전반부, 한국어판 제목은 후반부를 강조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성장기를 우울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인생이 "지루했을" 뿐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고, 성적도 좋았다고 한다. 나중에 우울증을 겪기는 했어도 성장기에는 우울증이 없었다고 한다. 그를 괴롭힌 건 '시들함'이었다. 즉, 저자는 자기를 괴롭히던 증상을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혹시 내가 느끼는 것도...?' 하는 생각이 든다면, 저자가 제공하는 진단표로 체크해보시기 바란다. 정서적 웰빙, 사회적 웰빙, 심리적 웰빙을 14개 항목으로 구분해서 자가 진단하면 된다.

위의 14개 항목 중에서 4, 5점을 준 항목이 7개가 넘는다면 여러분은 활력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시들함, 기운 없음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코리 키스는 이 개념을 설명할 때 우울증과 구분해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시들함은 우울증과 동반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시들함을 경험하기 때문에 분리해서 설명한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시들함을 많이 경험하는 연령대. 그는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어느 시점에서는 시들함을 경험하지만, 특히 청소년기(12~19세)와 청년기(25~34세), 그리고 75세 이후의 노년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들함의 반대인 활력은 어느 시기에 가장 높아질까? 60~65세라고 한다. 은퇴 시기와 겹치니 평생을 따라다니던 스트레스 요인이 감소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이가 더 들면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목적의식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하루의 10% 미만으로 줄어들면서 활력이 사라지고, 다시 심각한 시들함을 경험하게 된단다. 여기에 (책 후반부에서 설명하는) 삶에 활력을 주는 요소들에 관한 힌트가 있다.

저자는 시들함을 벗어나 활력을 되찾는 방법을 다섯 개 제시한다. 배움과 관계 맺기, 영성(반드시 종교일 필요는 없다) 추구, 공동체에 대한 기여, 그리고 놀이다. 정말로 이것들을 추구하면 삶에 활력이 생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변에서 유난히 활력있는 삶을 사는 사람 몇 명을 떠올리고 그들의 특징을 생각해 봤다.

한 사람은 사회에 대한 기여가 자신의 일이 된 사람이다. 한 사람은 80이 넘었는데, 지금도 공부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좋아해서 그게 놀이와 구분하기 힘든 일이 된 두 명은 얼굴에 웃는 주름이 잡혀있다. 주위에서 힘들 때 그를 만나면 에너지를 보충받는다고 할 만큼 활력이 넘치는 한 사람은 가족, 친구들과 눈에 띌 정도로 단단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들을 생각해 보면서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2014년부터 한국에 오래 머무르기 시작했다. 가족과 떨어져서 갑자기 시작한 직장 생활은 그 자체로 힘들지 않았지만, 어디를 다녀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오래 한국을 떠나 살면서 끊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주말은 특히 힘들었다.

그 공허함을 참지 못해 새로운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만나기로 했다.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주면 그 친구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눴고, 그가 어떤 모임에 초대하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도 무작정 나가서 어울렸다. 그러다가 알게 된 아티스트들의 모임에서 자기들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를 해외에 소개하고 싶은데 웹사이트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내 정도의 실력도 괜찮다면 내가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가난한 아티스트들이라 무료 봉사였지만, 나는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일이 내 삶에 그렇게 큰 만족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곳은 내가 종종 찾아가는 놀이터였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봉사 장소였고,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를 제공해 줬다. 바짝 말라 있던 내 마음의 화분에 단비가 내렸고, 내 삶은 다시 풍성해졌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 당시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거기가 당신이 영원히 머물러 있어야 하는 장소는 아니라고.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출구를 찾았다고.


이 책을 출간한 더퀘스트 출판사에서 독자 열 분께 이 책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제가 10월 1일 (화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