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3월 20일,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은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앨라배마주의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 주지사에게 전보를 보냈다. "귀하가 주지사로서의 책무를 이행하도록 돕기 위해, 앨라배마주 방위군 일부를 연방 지휘 하에 두겠습니다." 에둘러서 '돕겠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존슨 대통령은 주지사의 뜻을 무시하고 주 방위군을 연방 업무에 동원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한해 전인 1964년, 미국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통과되었고, 그동안 흑인들의 투표를 방해하던 각 주의 관행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 법으로 흑인들도 백인과 같은 권리들이 보장되었지만, 그들이 투표를 위해 등록하는 것조차 앨라배마주와 같은 지역에서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흑인의 투표 행위를 막으려는 백인들의 불법적인 방해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5년 2월, 이에 항의하던 흑인 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고, 이에 분노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포함한 민권운동가들이 3월 7일에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앨라배마주에서는 경찰을 대거 출동시켜 시위대를 잔인하게 폭행하며 이들의 행진을 막았다. 2014년에 나온 영화 '셀마(Selma)'가 바로 그 사건을 다뤘다.

시위대는 이틀 뒤인 3월 9일에 다시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저지로 행진을 완성하지 못했다.

앨라배마주 셀마의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찰 진압대
이미지 출처: Alabama Public Radio, Politico

린든 존슨이 인종분리주의자(segregationist)인 조지 월러스 주지사에게 보낸 전보는 앨라배마의 주 방위군 병력을 연방정부가 직권으로 동원해서 시위대를 보호하겠다는 통보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21일, 2천여 명의 시위대는 존슨이 보낸 주 방위군의 보호를 받으며 출발해, 앨라배마주의 주도인 몽고메리까지 약 87km를 4일에 걸쳐 행진할 수 있었다.

주지사가 가진 주 방위군 지휘권을 연방의 대통령인 린든 존슨이 빼앗아 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법은 1807년에 제정된 내란법(Insurrection Act)이었다. 연방 정부에 반대하는 무장 반란이나 내란이 일어날 경우 주 방위군 지휘권을 연방 정부가 한시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법이다. 존슨이 이 법을 사용한 이유는 새로 제정된 민권법이 흑인 유권자의 투표 등록과 시위의 자유를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개별 주가 연방법을 무시하고 시민을 보호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법과 법원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위반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내란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법학자 중에는 이런 해석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지만, 많은 헌법학자와 인권변호사들은 존슨 행정부의 주 방위군 사용이 합법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LA를 "시위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보낸 것도 합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한 LA 시위대
이미지 출처: Los Angeles Times

돌이 날아다니고, 차량이 불타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같지만, 1965년 린든 존슨의 사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존슨이 주 방위군을 사용한 것은 앨라배마주의 주지사와 경찰이 연방 정부와 법원의 명령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LA 시위는 경찰력으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었고, 대부분 평화로운 시위를 벌였다. 일부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경찰력은 이들을 체포할 충분한 능력이 있었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와츠 폭동의 경우는 캘리포니아의 경찰력으로 감당 불가능했고, 주지사가 직접 주 방위군을 투입해서 사태를 진정시켰다.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도 필요할 경우 얼마든지 주 방위군을 동원할 수 있지만 단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LA 경찰은 "우리와 협조 없이 외부 병력이 들어올 경우 혼란이 생겨 위험이 증가한다"고 반대했다—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뉴섬 주지사가 무능해서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진압 경찰과 맞닥뜨린 시위대
이미지 출처: The Seattle Times

그렇다면 트럼프의 주 방위군 투입으로 사태가 가라앉았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병력을 동원할 경우 시민들이 더욱 분노할 것이고, 사태가 악화될 거라고 경고한 뉴섬 주지사의 말처럼,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주 방위군의 선발대 300명이 도착한 다음날인 지난 일요일, 시위대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의 자율주행 서비스인 웨이모(Waymo) 차량 3대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였고, 경찰은 시위대는 물론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에게도 고무탄을 쏘는 등 양쪽이 모두 격앙된 분위기로 치달았다.

시위대가 웨이모 차량에 불을 지른 것은 구글에 대한 특별한 반감이 아니라, 운전자 없는 차량이어서 표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할 경우 진입로를 차단하기 위해 타이어나 차량에 불을 지르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미지 출처: Barron's

다행히 일요일 저녁이 되면서 시위는 진정되는 추세를 보였고, 월요일에는 소강상태가 뚜렷했다는 것이 현장에 나간 기자들의 보도였다. 트럼프는 "주 방위군을 보내지 않으면 LA가 불탈 것"이라고 했지만, 시위대가 차량을 불태운 건 병력이 LA에 들어온 이후였고, 그나마 일어나던 폭력 시위도 곧 잦아들었다면 병력은 불필요하다는 게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월요일, LA에 주 방위군을 오히려 2천 명 추가해서 4천 명으로 늘리겠다고 했고, 거기에 더해 해병대 700명까지 추가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경찰들도 시위대와 충돌하면 감정이 격해져서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흔한데, 시민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군인은 더욱 위험하다. 병사들은 민간인 시위를 진압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받은 훈련은 자기를 죽이려는 적군을 제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직 해병대 장군은 인터뷰에서 해병을 "훈련된 킬러"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700명의 해병에게 부여한 임무는 연방 건물을 보호하는 것인데, 이들에게는 시민을 체포할 권한도 없다. 결국 시위대가 돌이나 화염병으로 공격할 경우 해병이 훈련받은 대응법은 '치명적 무력(deadly force)'을 사용하는 것이고, 이들과 시민이 충돌하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이런 일련의 조치를 종합해 보면, 트럼프는 무력 충돌이 발생해 혼란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LA의 시위는 격화될수록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이익이고, 트럼프는 갈등이 격화되도록 하는 쪽으로 계속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LA 경찰은 현장에 나간 CNN 기자를 카메라 앞에서 체포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CNN

주 방위군과 해병대를 동원해 LA에 있는 연방 정부 건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2021년, 자신의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그가 지지자들이 연방 의사당에 난입한 사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취임해서는 그때 체포된 폭도를 모두 사면해 줬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에 살해된 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을 때 한 방송사와 했던 인터뷰에서 법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시위가 극심한 도시—가령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보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에게는 법이 있다. 우리는 법대로 해야 한다. 주지사가 요청하지 않으면 주 방위군을 보낼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대선을 몇 달 앞둔 상황에서 모험을 하기 싫었던 트럼프는 법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둘러댔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지금은 주 방위군을 연방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2021년 1월 6일,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이미지 출처: OPB, Vanity Fair

이런 모든 정치적인 계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는 다른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미국 시각으로) 화요일 오후, 캘리포니아의 대도시들에서는 시위대가 법원과 연방 정부 건물 앞으로 집결하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법원이 안전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

개빈 뉴섬 주지사와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트럼프의 병력 동원 명령이 법에 어긋난다며 연방 법원에 소송을 내고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LA 도심에 머물며 현장을 취재하는 한 기자에 따르면, 당장은 소강상태지만, 언제 다시 불이 붙을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지적처럼 "위기(crisis)는 트럼프의 브랜드"이기 때문에 그는 이 상황이 진정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트럼프는 자기 생일인 6월 14일 토요일에 워싱턴에서 개최하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때 시위하는 사람이 있으면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

이미지 출처: Red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