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트럼프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주 방위군 병력 2,000명을 보내는 명령을 내렸다. 그 결정을 내리기 직전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는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군대를 보낼 필요가 없으며, 보낼 경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위군을 이동시켰다.

뉴섬 주지사의 경고처럼 현장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시내에서는 시위 상황을 보도하는 외신 기자에게 경찰이 고무탄을 고의로 겨냥해서 쏘는 일이 있었고, 뉴섬은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동의 없이 방위군(National Guard)을 현장에 보낸 트럼프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부 장관을 법원에 고소했고, 트럼프는 뉴섬을 체포하는 데 찬성한다는 말까지 했다. 일이 워낙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레딧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해외 사용자들이 미국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시빌 워(Civil War, 내전)" 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화한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의 배경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도로에서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배경: 트럼프의 이민자 단속

미국 연방 정부는 현재 불법 이민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지난 3월 '엘살바도르행 비행기'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불법 이민자(illegal immigrants)'라는 표현은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만, 이민자로 만들어진 미국에서는 '서류가 없는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 서류미비 이민자)'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법적으로 비자 등의 적법한 서류가 없이 미국에 머무르는 것은 불법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자를 연상시키는 '불법 이민자'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미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무려 1,100만 명이나 된다. 한국 인구의 1/5이 넘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해서 국외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떠나도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사람이 일하는 곳이나 거처를 확인한 후, 마약 범죄자를 체포하는 것처럼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들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운 후 밴에 태워 데려간다.

이런 식의 체포와 추방이 적법성 문제는 '엘살바도르행 비행기'에서 다뤘지만, 이 과정에서 ICE 직원들은 마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얼굴을 가리는 일이 흔하고, 심지어 배지도 착용하지 않는 사례도 자주 등장한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시위대가 얼굴을 가리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민세관단속국(ICE) 직원은 얼굴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출처: CalMatters

그런데 단 한 명을 체포, 구금, 추방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854달러, 우리 돈으로 1,400만 원이 넘게 들기 때문에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을 그렇게 내보내는 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결국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하고 있는 방법은 서류 없이 미국에 체류 중인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스스로 미국을 떠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지난주 금요일 LA에서 ICE 요원들이 벌인 작전이 대표적인 예다.

발단: 금요일의 ICE 급습

캘리포니아주에는 단속의 표적이 되는 남미계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이들은 건설현장이나 농장,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들을 많이 고용하는 산업 중 하나가 의류업이다. 참고로, 한국계 이민자가 세워서 유명해진 기업 '포에버 21(Forever 21)'도 LA에서 남미계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제품을 만들었다. 모든 의류업체가 그런 건 아니지만, 포에버21의 경우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초과 근무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등, 노동 착취를 했다는 이유로 연방 노동부에 기소당해 재판에서 패소했다. (포에버21은 지난 3월, 최종 파산 신청을 제출했다.)

금요일, ICE 요원들이 급습한 앰비언스 어패럴(Ambiance Apparel)은 문제의 포에버 21 공장과 같은 LA 의류 지구(Garment District)에 있는 의류 제조업체다. ICE는 이미 추방당한 체류자들이 다시 미국에 들어와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다. 공장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체포하는 동안, 그곳에서 일하던 다른 노동자들이 놀라서 주위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렸다.

의류공자에서 불법 체류자들을 체포하는 ICE와 그 장면을 촬영하는 시민들
이미지 출처: NBC News, AOL

ICE가 체포한 사람들은 공장 노동자들이지, 폭력조직원들이 아니지만 ICE는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군복과 군용 장비를 갖추고, 전투용 차량을 타고 와서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시민의 분노를 자극한다. 특히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 비슷한 일로 모여든 시민들이 ICE 요원들을 몰아내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있어, 최근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 ICE를 몰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던 참이었다. 인위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연방 정부의 계획과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작정한 시민들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의류 공장 급습은 시민들과 큰 충돌 없이 불법 체류자 100여 명을 체포하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전개: 토요일, 파라마운트

다음 날이 되자, LA 남미계 이민자들 사이에는 ICE가 다른 곳을 급습해서 불법 체류자들을 체포할 것이라는 말이 퍼졌다. LA 남쪽,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파라마운트(Paramount)에 위치한 건축자재, 공구 대형 매장인 홈디포(Home Depot)가 표적이라는 소문이었다.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남미계 일용직 노동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홈디포와 같은 대형 건축자재 매장과 이삿짐 차량을 대여해주는 유홀(U-Haul) 대리점 근처다. 건축의 경우, 공사를 맡은 도급업자들 중에는 월급을 줘야 하는 직원을 많이 고용하는 대신, 그날그날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용직 노동자를 일당을 주고 고용하는 일이 흔하다. 이들은 그날 사용할 자재를 아침 일찍 홈디포에서 구해서 공사장으로 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일감을 기다리는 노동자 몇 명을 데려간다.
또한 비싼 인건비 때문에 한국처럼 전문 포장이사업체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삿짐 트럭을 빌리면서 근처에 서서 그날의 일감을 구하는 노동자를 즉석에서 한두 명 고용한다. 이들은 영어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당과 시간 약속, 작업 지시를 위한 간단한 스페인어를 구사할 줄 안다. 남미계가 많은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같은 주에서 특히 흔한 풍경이다.
이삿짐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드는 노동자들과 홈디포 주차장에 서 있는 노동자들
이미지 출처: AZCentral, KSL News

바로 전 날 있었던 앰비언스 어패럴 공장에서 일어난 일을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 사람들은 토요일 습격을 저지하고 항의하기 위해 홈디포 주차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작정하고 ICE 차량들을 기다렸기 때문에 휴대용 확성기를 준비해서 "파라마운트(시)는 너희를 반기지 않는다. ICE는 파라마운트에서 떠나라"고 외쳤고, 진입하는 ICE와 국경경비대(Border Patrol) 차량에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 차량에 돌을 던지는 파라마운트 시위대

토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시위는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어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섬광탄을 쏘면서 시위를 진압, 해산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멕시코 깃발을 흔드는 파라마운트 시위대와 진압 작전에 나선 경찰들
이미지 출처: Los Angeles Times, ABC7

위기: 트럼프의 개입

하지만 토요일까지만 해도 상황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위대가 경찰 차량에 돌을 던지는 것이 가벼운 일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일어나는 시위에서 낯선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LA의 상황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직접 만들어 낸 기회였다.

트럼프는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가에 있는 주들이 자기에게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주들을 공격하는 발언을 한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경우, 미국에서 인구와 경제 규모에서 1위의 주인데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주가 가진 문제를 "진보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문제"라고 비판해 왔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 내에서 발언권이 크고, 2028년 대선에 나설 게 분명한 인기 정치인이다. 따라서 트럼프로서는 캘리포니아의 시위 상황이 악화하면 악화할수록 정치적으로 이득이다. 뉴섬 주지사와 캘리포니아 전체를 공격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즉, 국민에게 '캘리포니아는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만큼 통제 불능 상태'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트럼프가 주 방위군을 동원하기로 한 이유다.

물론 캘리포니아주의 역사에 방위군을 동원해야 할 만큼 심각한 시위가 발생했던 적은 있다. 1965년 와츠(Watts)에서 일어난 폭동과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1992년 LA 폭동이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직접 주 방위군을 동원하는 명령을 내렸다. 원칙적으로 주 방위군의 지휘권은 주지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한 것은 주 방위군을 한시적으로 '연방 정부의 지휘하에 두는(federalize, 연방화)' 명령이다.

1965 와츠 폭동, 1992년 LA 폭동 때 동원된 주 방위군
이미지 출처: Walmart, The New York Times

미국 역사에 (지금 트럼프가 하는 것처럼) 대통령이 주지사의 의사를 무시하고 주 방위군을 연방화해서 사용한 경우가 있기는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민주당 대통령이 남부 공화당 주지사의 의사를 무시하고 내린 명령이었다.


'LA에서 생긴 일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