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양인 코미디언이 한 코미디 쇼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서구인들보다 날씬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했다. "서구에서는 아시아 사람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날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다. 아시아에 가 보면 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면전에서 '너 살쪘다'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한다. 나 정도면 괜찮을 거라는 착각을 확 깨주니까, 살을 빼게 되는 거다."

우리에게는 농담이 아니라, 그냥 문화에 대한 관찰 정도로 느껴지는 이 말이 코미디인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다르면 코미디가 된다. 누가 바다를 보고 "저거 파래," 불을 보고 "저거 뜨거워," 하늘을 보고 "저거 넓어"라고 말한다면 세 살 정도의 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자랄 때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도 (자기 생각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상대로는 그렇게 말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두 영화가 그렇게 사람이 그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상황을 가정한 코미디물이다. 물론 생각나는대로 말하지 않는 것과 거짓말은 다르다.

그래도 요즘은 20, 3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개인의 생각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세대가 바뀐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과거에 그런 말을 쉽게 하던 노인들은 세상을 떠나고, 남의 외모를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는 걸 무례라고 생각하는 세대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변화가 그렇듯,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느리게 변한다. 그리고 이렇게 체감하는 속도의 차이는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갈등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 경우 대화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증폭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상황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내 어머니가 손녀딸(내 조카)에게 "예쁘다" "예뻐졌다"는 말을 칭찬처럼 사용하시는 걸 보고 "여자아이에게 외모로 칭찬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세상"이라고 말했다가 설득은커녕,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내 형까지 참여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이런 문제로 토론해서 어느 한 쪽이 수긍하는 일은 거의 없고, 양쪽이 자기의 기존 의견만 강화하고 끝난다. 그날의 경험으로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내게는 이런 주제로 남을 설득하는 재능이 없다는 것과 그러니 그냥 나 자신이나 조심하며 사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교훈을 잘 따르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가 최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이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내가 가족과 토론—이라기 보다는 논쟁—했던 바로 그 표현, '예쁘다'의 문제로 얘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읽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달리,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가 조심성 없이 내뱉는 말들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짚어가며 지적하는 책이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집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했을 거고, 자기가 평소에 하는 말을 지적당한 독자들은 페이지를 넘기며 속으로 반론을 펼치다가 읽기를 포기했을 거다.) 저자는 너그러운 태도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지금 악습이라 불리는 단어들조차 그 시절엔 최선의 작명"이었기 때문에 "시대를 살아온 단어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내가 실패한 설득("예쁘다는 칭찬을 하지 말자")을 어떻게 했을까? "외모를 평가하는 말은 언제나 감탄과 찬사, 평가라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표현은 쉽게 족쇄가 되어 '예쁘다'는 말을 듣는 날은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그 말을 듣지 않는 날은 왜 하지 않지? 라는 생각에 또 거울을 보게 된다고 한다. 저자가 그 '예쁘다'의 부재는 자신이 '예쁘다'란 세 글자에 중독됐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고 하는 대목을 읽고서야 나는 비로소 이 책을 쓴 유승민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색을 통해 확인했다.)

이 책이 한국인이 쉽게 사용하는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이 아니라, 누가 듣기에도 긍정적인 '예쁘다'는 말을 논의의 시작점으로 삼은 건 참 좋은 선택이었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단순히 어떤 표현이 좋고, 어떤 표현이 나쁘다는 평가를 내리는 대신 특정 표현을 둘러싼 맥락, 그 표현이 변화하게 된 언어적 환경을 살펴봄으로써, 문제의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독자들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설득한다. 그런데 그런 작업에 '예쁘다' 만큼 완벽한 표현도 드물다. 이 표현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무해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남에게 사용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긍정적이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흔하지만 다양한 시각과 문화가 충동하는 단어다.

(이미지 생성: Stable Image Core)

저자는 논의의 범위를 우리가 하는 말에서 행동으로 넓힌다. 예를 들어 '오지랖이 넓다'는 것이 흔히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으로 여겨지지만, 우리가 이웃, 혹은 모르는 사람을 돕는 '미담'의 주인공들은 사실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임을 일깨우면서 자기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예로 든다. 자기가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함부로 먹이를 주는 이웃 할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던 저자의 얘기를 읽다 보면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특정한 표현을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태도 전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표현들도 있다. 2부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사례는 (아마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손이 오그라들) "콜센터 상담직원 어법"인데, 과거 기자였던 저자는 이 직원들이 왜 그렇게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지 취재를 통해 알게 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오랜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저자는 그 밖에도 '아줌마,' '노인' 같은 한국 문화에서 복잡한 함의를 가진 표현을 이야기하고, 빠르게 변하는 일상적인 한국어 대화에서 특정 단어가 왜 나이를 드러내는 민망한 표식이 되는지, 나이가 많은 게 왜 부끄러운 일로 취급되는지 꼼꼼하게 짚어 본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언어를 조심해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책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언어가 어떻게 사람을 규정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지만 그런 깊은 고민을 하는 저자의 생각을 잘 따라가다 보면 생각 없이 선택한 진부한 표현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돌아보게 되고, 단어가 만들어 내는 카테고리 안에 타인을 함부로 가두는 일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 덕분에—모든 책의 저자가 글을 잘 쓰는 거 아니다—그 과정이 수업처럼 느껴지지 않고, 대화하기 편한 사람과 보낸 즐겁고 유익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도 그렇게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 많은 세상,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


이 책을 펴낸 투래빗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 여러분께 책 열 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의사를 표현해 주시면 제가 한국 시간으로 월요일 오전에 추첨을 통해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을 꼭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