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프, 세메냐
• 댓글 2개 보기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알제리의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가 성별 논란에 휩싸였다. 16강전에서 칼리프와 맞붙은 이탈리아의 안젤라 카리니 선수가 몇 번의 강펀치를 맞은 후 46초 만에 경기를 기권하고 울먹이며 "이건 공정하지 않다"고 외치면서 시작된 문제다. 카리니 선수는 칼리프 선수가 여자부 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는 곧바로 전 세계적인 논란으로 번졌다. 일론 머스크와 소설가 J.K. 롤링,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J.D. 밴스까지 논쟁에 가담해서 칼리프 선수를 여자부에 출전하게 허락한 올림픽 조직위의 결정을 비난했다.
이번 일은 2009년 세계 선수권 여자 8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캐스터 세메냐 선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과 판박이다. 여성이지만 XY 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운동선수가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 선수가 아프리카 대륙 출신이라는 것도, 그 선수와 경쟁하며 불만을 터뜨린 선수들이 유럽 출신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런데 세메냐 선수 때 벌어진 성정체성과 인종 문제에 더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극우세력들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만들고 있어서 그때보다 오히려 더 뜨거운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마네 칼리프 선수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부 경기에 출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는 더 나아가, "카멀라 해리스가 생각하는 젠더 개념이 이런 일을 낳았다"면서, 이는 역겨운 일이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를 비판해야 한다는 식으로 미국 보수 유권자들에게서 정치적인 점수를 따내는 데 칼리프 선수를 사용했다.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남자가 여자들의 스포츠에서 뛸 수 없게 만들겠다고 했다.
트럼프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틀렸다. 첫째, 미국의 대통령은 올림픽을 비롯한 운동 경기 참가 자격을 정할 권한이 없다. 그리고 둘째, 이마네 칼리프는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특히 미국 정치인들이— 칼리프를 남자라고 부르는 건, 미국의 보수가 미국 내에서 트랜스젠더와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런 정치적인 목적으로, 혹은 무지로 많은 이들이 이마네 칼리프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트랜스젠더라고 규정하거나, 칼리프=남성이라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냈다. 다른 사람도 아닌 J.K. 롤링, 트럼프 같은 유명인들이 만들어 낸 가짜 뉴스라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한 트랜스젠더는 한 명도 없다.
몇 해 전 오터레터에서 캐스터 세메냐와 스포츠에서의 성정체성, 간성인을 다룬 적이 있고 (What She Is ①, ②에서 읽으실 수 있다) 최근에 펴낸 책 '친애하는 슐츠 씨'에서도 같은 내용을 정리해서 다뤘기 때문에 읽으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되짚어 보면 이렇다.
근대 올림픽에 여성이 처음 출전한 건 1900년이지만, 그때만 해도 테니스, 골프, 크로켓, 승마와 같은 종목에 국한되었다. 그러다가 192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육상 종목에 출전하게 된다. 당시로서는 충격이었고, 그때부터 이미 여자 육상 선수들은 "너무 남성적"이라는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들처럼 당시 쉽게 볼 수 있던 여성들의 외모와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비교하면 왜 그렇게 생각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남성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1948년 올림픽부터 여성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평소 선수가 진찰을 받는 주치의에게서 여성임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받아 제출하게 한 것.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의사가 선수와 짜고 가짜 증명서를 써줄 수 있다는 의혹 때문에 1960년대에 들어서면 다양한 종류의 신체검사를 도입하게 된다. 핵심은 여자 선수들을 검사실에 불러서 성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선수들이 "누드 퍼레이드"라고 분노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이런 비판에 직면한 올림픽 조직위는 1967년에 바소체(Barr body) 검사를 채택한다. 이 검사의 핵심은 여자 선수의 성염색체가 XX인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남자는 XY 염색체를, 여자는 XX 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게 상식이던 시절의 손쉬운 이분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검사를 도입한 지 오래지 않아 외부 신체검사(유방과 생식기 육안 검사)로 여성이 분명한 선수가 XY 염색체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86년 스페인 육상대회에서 성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탈락한 마리아 호세 마르티네즈 파티뇨는 평생 여성으로 살았던 선수이고, 주위의 그 누구도 그의 성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주최 측에서 검사한 결과 XY 염색체를 갖고 있었던 거다. (그는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 염색체를 갖고 있었지만, 외형적으로는 여성이었다.)
그럼 육안 검사와 유전자 검사 중 어느 쪽을 기준으로 여성임을 판단해야 하느냐,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애초에 이런 성별 검사가 필요했던 이유다.
운동 경기에서 남녀를 구분하려는 건 남성이 여성보다 운동경기에서 신체적으로 타고난 이점이 있기 때문이고, 그 핵심은 '테스토스테론'이다. 남성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여성에게서도 소량이지만 나오는 호르몬. 그런데 파티뇨 선수는 XY 염색체를 갖고 있지만,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생식기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단, 난소와 자궁은 없는 경우가 많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도 다른 여성과 다르지 않다. 즉,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는 자신이 다른 여자 선수와 신체적으로 다른 게 경기력에 아무런 이점이 없는데도 탈락한 셈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칼리프 선수는 국제복싱협회(IBA)에서 XY 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격 처분을 받았지만, 1986년의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를 둘러싼 논란을 익히 알고 있는 올림픽 조직위는 염색체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출전을 허락했다. (게다가 국제복싱협회는 문제가 많은 조직이다. 지배구조와 윤리 문제 등으로 인해 2021년 도쿄올림픽부터 올림픽 복싱 담당 조직에서 제외됐고, IOC가 올림픽 복싱 예선과 경기를 직접 감독한다). 사진이나 경기하는 장면만 보면 칼리프 선수가 남성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28년에 처음 육상 경기에 출전한 여자 선수들을 본 사람들도 "너무 남성적"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 What She Is ②에서 설명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경기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에, 설령 특정 여자 선수가 XY 염색체를 갖고 있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경기를 하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여자 육상 800미터 기록 보유자는 세메냐가 아니고, 칼리프 선수도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 패한 적이 있다. 따라서 테스토스테론 조차도 경기력과 무조건 관련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올림픽 조직위가 국제복싱협회와 다른 결정을 내린 이유는 더 나은 조직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문제를 이미 겪어봤고,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한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여론이 그걸 받아들이느냐는 건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평소에 가졌던 (운동 경기와 무관한) 정치적인 불만을 칼리프 선수에 쏟을 것이고, 각 나라들은 자국 선수의 편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선수의 삶은 샅샅이 파헤쳐지고 공격의 대상이 될 거다. 운동선수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단체인 Humans of Sport의 디렉터인 파요쉬니 미트라(Payoshni Mitra)는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여성들은 태어나면서 특정한 성을 부여받았고, 여자아이와 여성으로 길러졌고, 항상 여자 선수들과 경쟁해 왔습니다. 여자부에서 경쟁하면서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 패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우리는 이 여성들이 여성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추측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이들의 인생입니다."
이마네 칼리프 선수에게 기권패를 당하고 그의 악수도 거부했던 안젤라 카리니 선수는 자신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깨닫고, 온라인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관해 온갖 공격을 받고 있는 칼리프 선수와 모두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카리니는 "칼리프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그도 나처럼 그저 싸우기 위해 올림픽에 왔을 뿐"이라면서, "나는 칼리프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았으며, 혹시 만나게 되면 꼭 안아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선수들이 보여준 이런 태도와 달리, 국제복싱협회 우마르 크렘레브 회장은 “켈리프와의 경기를 포기한 이탈리아 안젤라 카리니에게 올림픽 챔피언에 준하는 상금을 주겠다”라며 이를 계속해서 정치 문제화하려는 뜻을 밝혔다. 부정부패로 지탄을 받는 인물이 사회적 편견을 증폭시켜 돌파구를 찾으려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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