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진실
• 댓글 2개 보기미국인들의 여름 야외 활동은 7월 4일 독립기념일 휴일에 절정에 달한다. 사람들은 국립공원과 주립공원은 물론이고, 곳곳의 캠핑장과 공원을 찾아 바비큐를 하고, 불꽃을 터뜨리고,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또 7월은 많은 아이들이 여름 캠프에 참석하는 시기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다양한 종류의 캠프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미국인들의 통과 의례와 같다. 올해 독립기념일인 지난주 금요일, 미국 남부의 텍사스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 커빌(Kerrville)이라는 마을에 끔찍한 재난이 찾아왔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기습적으로 내린 폭우에 텍사스주 남부를 흘러 멕시코만(트럼프는 '미국만'으로 이름을 바꿨다)으로 흘러드는 과달루페(Guadalupe)강이 범람했고, 커빌에 있는 여름 캠프와 캠핑카(RV) 주차장을 급습, 차량과 건물, 사람들을 쓸어 내려갔다. 아직도 구조와 시신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 글을 쓰는 현재 111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 확인되었고, 아직도 찾지 못한 실종자가 161명이다.

미국 기자 제시 싱어(Jessie Singer)는 한국에도 소개된 책, '사고는 없다'(There Are No Accidents)에서 '사고'라는 단어는 마치 피해가 "우발적으로 일어나며, 예견되거나 예방할 수 없다는 잘못된 암시를 준다"고 하면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초대 국장을 지낸 윌리엄 해던(William Haddon)의 말을 인용해 "사고가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개념은 합리적인 인간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민속 전설"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텍사스주 커빌에서는 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돌발 홍수(flash flood)가 직접적인 이유였다.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집중적인 폭우는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특히 건조하고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릴 때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느껴지는 충격적인 재난이 된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다가 알래스카에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크리스 맥캔들리스(Chris McCandless)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 2007)에는 주인공이 네바다 사막을 차로 여행하다가 밤에 돌발 홍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맥캔들리스는 목숨을 건졌지만, 차는 완전히 못 쓰게 되어 버리고 간다. 아래의 영화 속 장면은 바짝 마른 지역에 급류가 밀어닥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보여준다.
이번에 홍수가 난 지역도 돌발 홍수로 악명 높은 곳이다. 일단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면 언덕에서 계곡으로 물이 빠르게 흐르면서 평소 바짝 마른 땅도 홍수가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근처에 있으니 휴양지로 인기였고, 학생들의 대형 여름캠프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캠핑카를 타고 와서 머무는 RV 주차장이 많았다. 특히 과달루페 강변에 위치한 미스틱 캠프(Camp Mystic)은 1926년에 설립된 기독교 캠프로, 이 지역 여성들은 딸을 이 캠프에 보내기 위해 인맥을 동원할 만큼 인기있는 캠프다. 워낙 전통있는 곳이라 할머니 때부터 대를 이어 아이들을 이 캠프에 보낸 가족들도 있다고 한다.
즉, 위험한 강변에 급조된 휴양지가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해서 현재 27명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많은 아이들이 실종된 상태다. 캠프에서 자고 있던 많은 아이들이 건물에 갇혀 침실에서 익사했다.

여름철 폭우가 낯설지 않은 지역이지만, 99년 동안 별문제가 없었던 캠프가 삽시간에 마치 아마존 강을 연상시킬 만큼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것이다. 자연재해를 오래 취재해 온 기자도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재난이라고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단 3시간 만에 강물이 7미터 가까이 올라가며 강변의 캠핑차량과 구조물을 쓸어가 산산이 조각내며 안에 있던 사람들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천재지변 아닐까? 참고로, 미국인들은 천재지변을 'act of God'(신의 행위)이라고 부른다. 보험 계약서에도 등장할 만큼 일상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제시 싱어의 말처럼, 세상에 예견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는 없다. 홍수에 대한 경고는 몇 시간 전에 나왔고, 심지어 이런 자연재해로 인한 대형 참사에 대한 경고도 몇 주 전에 나왔다.
왜 미국같은 선진국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기상청 비난하기
언론에서는 이번 재난이 '퍼펙트 스톰'이었다고 한다. 기상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천천히 움직이는" 비구름이 특정 지역에 폭우를 집중했고, 하필 그날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7월 4일 휴일이었고, 비가 온 시간도 모두 잠든 한밤, 이른 새벽이었기 때문이다. 사고 직후 텍사스주 주지사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미국의 국립기상청(NWS)을 비난했다. 애초에 기상청에서 받은 예보에 따르면 100~200밀리미터의 강우량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300밀리미터의 비가 왔다는 것이다.
텍사스주에서 기상청의 오보를 탓하는 듯한 말이 나오자마자 공화당과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으레 받는 비판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올해 초 취임한 후로 미국 기상청은 직원 500명을 잃었다. 트럼프의 지시를 받은 일론 머스크가 정부효율부(DOGE)를 통해 많은 공무원을 해고하고, 각종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상청이 축소되는 것을 보다 못한 전임 청장 다섯 명은 지난 5월 공개서한을 발표해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경고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곧 여름이 닥치고, 허리케인 시즌이 될 텐데 기상청의 인력 감축은 정확한 예보를 어렵게 만들고, 이는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질 거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기상 예측이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기상청을 강화하기는커녕 약화하는 행동은 상식적인 판단으로 보기 힘들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래도록 기후 위기를 부정해 온 사람이고, 석유 생산 감축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처럼 기후 변화 속도를 늦추려는 모든 시도를 막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따라서 그런 트럼프가 기상청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그게 트럼프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플레이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부 기관이 무능하고 비효율적이어서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예산과 인력을 감축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또다시 무능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비난하는 식이다.
텍사스주의 기상청 탓하기는 그렇게 공화당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인과관계의 규명
그렇게 뻔한 방법을 사용하는 보수층에 대한 비난은 뉴욕타임즈와 같은 진보적인 언론의 기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령, 뉴욕타임즈의 기사(아래)를 보면 "홍수가 강타하고 있는데, 텍사스주의 기상청 사무실에는 공석이 남아있다"라는 제목 아래, "전문가들에 따르면(Some experts say), 인력 부족이 재해에 대한 대처를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기사는 진보적인, 혹은 트럼프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이번 재난이 인력 부족 때문에 발생했을 거라는 인상, 혹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트럼프의 공무원 감축이 이번 재난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민주당에서는 그런 인과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한국의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이를 인용부호를 사용해 소개하고 있다.
가디언 미국판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진보 매체들의 그런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평소 기후 위기와 관련해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저술 활동을 해온 솔닛으로서는 이번 재난을 트럼프의 무책임한 결정 탓으로 돌리기 쉬웠겠지만, 그의 칼럼은 "텍사스의 재난은 기상청 인력 감축의 결과일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라는 제목으로, 이름도 밝히지 않고 막연하게 "전문가에 따르면"이라고 쓰는 태도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애매한 표현을 사용해 독자들이 인과관계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한다.

솔닛의 비판은 적절할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하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서는 트럼프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필요할 경우 이를 저지해야 하는데, 그 지적이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인과관계가 틀렸다면 비판 전체의 타당성이 의심받게 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보수적인 미국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솔닛 같은 사람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다.
단순하지 않은 진실
그렇다면 텍사스에서 일어난 홍수는 왜 대형 재난이 되었을까? 솔닛은 와이어드(Wired)의 기사를 소개한다. (테크놀로지와 경제, 문화 등의 주제를 다루는 와이어드 매거진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뚜렷한 매체다.) 이 기사가 기상학자들의 증언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미국 기상청은 텍사스주 과달루페강의 심각한 홍수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텍사스주 재난관리국(Division of Emergency Management)이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그걸 기반으로 정확한 강우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실제 강우량과의 오차가 발생했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그런데 강우량 예측은 원래 까다로운 작업이고, 워낙 변수가 많아서 정확한 수치를 구하기 쉽지 않고, 텍사스주 과달루페강 유역에서 돌발 홍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 규모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커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기상청이 홍수를 예측하고 이를 하루 전인 목요일 오전에 통보했지만, 그게 캠핑장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이렌도, 스마트폰을 통한 긴급 문자도 없었고, 그 일대에는 휴대전화 기지국도 드물어 날씨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와이어드의 결론은 기상청은 일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텍사스주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기상청이 무능한 것도 아니고, 진보 언론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트럼프의 인력, 예산 감축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기상청을 공격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 기상학자는 "기상청은 일을 아주 잘 해냈지만, 이번 홍수에서 시간 당 강우량은 1,000년에 한 번 만날 수준이었고,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0.1%에 불과한 재난이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의 인력, 예산 감축이 기상청에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와이어드는 그 효과가 앞으로 일어날 거라고 경고한다. 가령, 이번과 같은 예보에는 날씨 풍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정부효율부는 전국에서 운용하는 날씨 풍선의 수를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최근 연방 의회가 통과시킨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에는 기상청의 예보와 대국민 경보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 2억 달러를 삭감하는 조항이 들어있고,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Ted Cruz)는 이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렇게 앞으로 다가올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이 솔닛의 말이다.
"사람들은 설명을 듣고 싶어 하고, 그 설명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깔끔하게 맞아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욕구 때문에 우리는 우리 견해에 부합하는 것이면 아무거나 믿게 됩니다. 쏟아지는 정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원인이 하나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나 매체를 접할 때도 조심해야 합니다." 🦦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