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상원 의원이 된 버락 오바마는 당시 미국인들이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당선된 일리노이주에서는 잘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겠지만, 미국의 한 주가 작은 나라 하나의 크기라는 걸 생각하면, 특정 주에서 유명한 정치인이라고 해도—특히 그 정치인이 이제 막 연방 정치를 시작한 경우—다른 주에서는 잘 모르는 외국 정치인처럼 느껴진다. 자기 주에서 정치인으로 아무리 성공했어도 전국(=연방) 무대에서는 완전히 신인으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자기를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자기를 알리는 데에는 여러 차원이 존재한다. 가령 미국에서 '카멀라 해리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부통령이면 이미 충분히 언론에 노출된 사람이다. 하지만 이름을 들어봤다는 것이 그 정치인을 정말로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의 성장 배경과 정치적 이념은 물론이고,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는지 속속들이 이해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정치인을 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출마를 앞두고 회고록을 출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시간이 없으니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배포하는 거다.)

오바마는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연설을 통해 일반 유권자들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미지 출처: Salon.com)

2016년, 52세의 나이에 연방 상원의원이 된 카멀라 해리스를 두고 언론에서 흔히 "혜성처럼(meteoric)"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의 카멀라 해리스는 정말 대단했다. 미국에서도 경제력, 인구, 영향력이 가장 큰 캘리포니아주에서 검찰총장을 했던 인물일 뿐 아니라, 흑인/인디언 여성이라는 더블 마이너리티(double minority)로서, 그동안 맡아온 직책마다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게 성장해서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으니, 이제 남은 자리는 백악관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처럼 큰 나라에서 "혜성 같은" 등장이 가진 단점은 사람들이 그 혜성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의 평균 유권자들은 잘해야 그의 인종과 정치 경력 정도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일반 유권자들이 카멀라 해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된 계기가 2020년 대선을 위한 민주당 경선 토론회였다.

몇 번의 토론회를 거치는 동안 (토론 실력이 형편없기로 악명높은) 바이든을 아주 아프고 신랄하게 공격한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바마 내각에서 활동했던 훌리안 카스트로(Julián Castro)였고, 다른 한 사람은 카멀라 해리스였다. 바이든 후보에게 "2분 전에 당신이 한 말도 기억을 못 하느냐"며 나이를 공격해서 많은 비판을 받고 물러난 카스트로와 달리, 바이든이 젊은 정치인이던 시절에 반대했던 인종 통합 교육정책("busing")을 두고 그를 공격했던 카멀라 해리스는 바이든의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칼라브로 기자에 따르면 바이든의 아내는 해리스의 공격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바이든 부부는 (두 명의 흑인 여성 러닝메이트 후보 중에서) 해리스가 일을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해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카멀라 해리스는 그 이후로 부통령이 되었고, 언론에 노출될 기회가 적지 않게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스토리를 잘 모른다. 엘레이나 칼라브로 기자에 따르면 이건 해리스가 겪고 있는 정체성의 문제에 가깝다. 민주당이 현재 가고 있는 방향, 즉 트럼프 이후에 추구하고 있는 방향은 해리스가 자신의 진정한(authentic)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 옷

언론에서는 카멀라 해리스를 소통(communication)을 못 하는 사람으로 묘사하지만, 칼라브로 기자는 이를 좀 다르게 표현한다. 해리스는 민주주의나 기후 문제처럼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할 때는 소통 능력이 떨어지고, 좁은 주제를 두고 상대방과 토론할 때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게 기자의 평가다. 해리스를 두고 하도 많이 사용해서 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고 하지만, (판사나 배심원을 설득하는) "검사의 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리스는 뛰어난 소통 실력을 보여준다. 해리스는 검사로 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상원 의원이 되기 전에 맡았던 공직도 주의회 의원이 아니라 지방 검사장(D.A.), 검찰총장이었다. 선출직이지만, 유권자들이 이런 직책의 후보에게 원하는 건 다르다. "현재 검사장, 검찰총장은 범죄인의 유죄 판결률이 낮은데 나는 그 숫자를 얼마까지 높이겠다"는 식으로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이야기하고, 그걸 달성하면 되는 종류의 직책이다. 유권자들은 자기 주의 검찰총장에게서 민주주의의 미래나 기후에 관한 거창한 연설을 기대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시절의 해리스 (이미지 출처: Inside Climate News)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카멀라 해리스는 자기가 맡은 직책에서 계속해서 "첫 흑인 여성"이었던 사람이다. 이런 수식어는 뒤를 돌아볼 때 훌륭한 성취이지, 그 자리에 가기 위해 경쟁할 때는 불리한 조건이다. 백인 남성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만 보아온 유권자들에게 흑인 여성은 낯설다. 따라서 해리스는 검사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해서 좋을 게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연방 정치인이 되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유권자들은, 특히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은 카멀라 해리스를 뛰어난 검사가 아닌, 흑인 여성 지도자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리스가 겪는 정체성의 갈등이 있다.

정치적 환경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카멀라 해리스는 2010년, 주 검찰총장 선거에 나서면서 자기를 알리기 위해 책을 펴내는데, 그 제목이 'Smart On Crime'이고 부제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들어 줄 한 검사의 계획"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때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다. 공화당에서는 흑인 대통령이라서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었고, 검찰총장이 백인일 경우 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건 인종차별로 보일 소지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흑인 여성이 검찰총장이 되어 범죄에 적극 대처하는 건 정치적으로 아주 유리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마음 놓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면서 흑인을 범죄자 취급했고,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한 흑인들이 단순한 범죄를 이유로 백인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이어지면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이 일어났고, 민주당은 이들의 편에 서서 트럼프 정권과 대립했다. 그런데 카멀라 해리스가 민주당 상원의원이 되고 대통령 선거를 위한 경선에 출마한 시점이 바로 이때였다. '범죄에 강한 검사'라는 이미지가 도움이 되지 않는 시점이었던 것.

동생 마야(Maya Harris, 변호사이자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의 정책 보좌관이었다)를 비롯해 카멀라 해리스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하던 주위 사람들은 범죄와 싸우는 검사의 이미지는 버리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새롭게 가지게 된 이미지가 해리스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고, 그런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는 과정도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16년 대선 때 카멀라의 동생 마야 해리스와 이야기하는 힐러리 클린턴. 클린턴은 마야 해리스가 미국에서 최연소 법대 학장이었다고 소개한다. (이미지 출처: 클린턴의 페이스북)

카멀라 해리스는 칼라브로 기자에게 "제 경력은 아름다운 연설(lovely speeches)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로서, 검찰총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주민들의 실질적인 문제(=범죄)를 해결하는 것이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칼라브로 기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건 맞지만, 전국을 대상으로 한 연방 정치는 다르다. 미디어가 그런 걸 다 고려해서 정치인을 대신 홍보해 주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면 아름다운 연설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카멀라 해리스의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이 오바마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오바마는 상원의원이 되기 전에 변변한 경력이 없다가 훌륭한 연설로 상원에 진출하고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분명 지나친 비판이지만, 자신이 한 일을 숫자로 보여줘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지만, "아름다운 연설"을 잘하지 못하는 해리스와 대비되는 게 사실이다.

칼라브로 기자의 설명을 듣던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은 힐러리 클린턴의 이야기를 꺼낸다. 클린턴 역시 아름답고 거창한 연설을 잘 못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클린턴과 해리스의 공통점은 또 있다. 높은 단상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대면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친화력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지만, 언론은 그런 자리에는 관심이 없고, 대규모 연설이 아니면 취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두 사람이 정말로 뛰어난 소통을 하는 모습은 미디어에 잡히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은 칼라브로 기자에게 "카멀라 해리스가 퍼포먼스를 잘하는 정치인은 아니죠(Kamala Harris is not a performance politician)"라고 했단다. 기자는 클린턴이 해리스를 깎아내리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클린턴 자신이 퍼포먼스를 잘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해리스에게서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이 해리스의 대선 출마를 지지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린 옛날 사진(연도 미상). "당신이 그 길을 먼저 걸었기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가 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 눈에 띈다.

'카멀라 해리스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