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트럼프와의 토론회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준 후 사퇴 압력을 받아오다가 3주 만에 내린 결정이다. 이 발표가 나온 직후 바이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endorse)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내에서는 바이든이 해리스를 지지하는 대신, 한 달 동안의 미니 경선을 치러서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냈으면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바이든은 그렇게 하는 대신 자신이 후보를 지명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미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인 대통령이 대체 후보를 지명하면 자기가 확보한 대의원과 함께 자신의 이름으로 모은 선거 자금을 넘겨주는 절차가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다. 반면, 짧게라도 당내 경선을 통해서 유권자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민주당 당규에 의거해 절차적 문제는 없다.) 하지만 미니 경선을 하는 과정에서 당이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이 해리스가 차기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과거에 밝힌 적이 있고, 당규에 따라 바이든이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고 경선에 붙인다면, 그래서 백인, 그것도 남성 후보가 선출될 경우, 민주당이 흑인과 여성을 패스한다는 반발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 (이미지 출처: Axios)

바이든은 아무리 후보가 좋아도 적전분열(敵前分裂)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고, 이는 올바른 판단으로 보인다. 2016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에 패한 이유 중 하나가 흑인 유권자들을 상대로 소셜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진 가짜 뉴스 캠페인 때문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것인데, 해리스 부통령을 놔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할 경우, 총력전을 펴도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은 선거에 실망한 흑인과 여성 유권자들이 불참할 가능성이 커진다. 어떤 이들은 미니 경선을 해서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본인에게도 후보로서의 당위성과 인기몰이를 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즉 얻을 수 있는 이득(=흥행)은 불확실한데, 잃은 것은 분명한 상황에서 바이든이 내린 상식적이고 냉정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멀라 해리스를 지명하는 것보다 짧게라도 다시 경선을 실시해서 후보를 뽑자는 의견이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대선 후보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그가 흑인/인도계 여성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젠더, 인종 정체성이 미국의 어떤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해리스 부통령이 된 후 "해리스는 도대체 뭘 하러 부통령이 된 거냐"는 불만이 민주당 내에서도 꾸준히 나왔다.

물론 부통령이라는 자리는 인기를 끌기 힘들고, 너무 인기를 끌어서도 안 되는 애매한 자리지만, 해리스의 경우 본인이 잘하고 있는데 부통령이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기보다는, 본인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게 무슨 말일까?

카멀라 해리스의 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취재한 기사가 있다. 작년 10월에 애틀랜틱의 일레이나 플롯 칼라브로(Elaina Plott Calabro) 기자가 쓴 'The Kamala Harris Problem (카멀라 해리스 문제)'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처음 나왔을 때도 꽤 관심을 끌었지만, 바이든이 트럼프와 토론회 후로 후보 사퇴 압력을 받으면서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바이든이 사퇴할 경우 그를 대신해서 트럼프와 맞붙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람들이 해리스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기사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몇 안 되는 기사들 (밑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해리스는 인터뷰에 잘 나서지 않는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기사가 칼라브로의 것이었다.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은 똑같은 이유로 자기가 진행하는 '에즈라 클라인 쇼'에 칼라브로 기자를 초대해 대화(그 내용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를 나눴다.

칼라브로 기자(오른쪽)와 그가 쓴 애틀랜틱 기사 (이미지 출처: The Atlantic, X)

아래 내용은 칼라브로가 작년에 발행한 기사와 에즈라 클라인 쇼에 출연해서 나눈 대화, 그리고 관련된 기사들을 모아 요약, 편집한 것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칼라브로 기자는 작년에 쓴 기사를 부정적인 톤으로 끝냈지만 이달 초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좀 더 희망적인 톤으로 말을 맺는다. 그 사이에 카멀라 해리스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작년의 기사는 부통령으로서의 그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고, 이번의 인터뷰는 그가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역할이다. 대통령도 아닌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어설펐던 사람이 대선에서 트럼프를 누를 가능성이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 바로 카멀라 해리스의 정체성의 문제다.

칼라브로 기자가 보기에 해리스는 뼛속까지 검사다. 여기에 문제와 희망이 모두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 사이에는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다. 한때 정∙부통령으로 함께 일한 사람들이고, 국정을 함께 논의하는 동료 이상으로 서로에게 우정을 가진 사람들로 알려져 있지만, 오바마는 2016년에 바이든이 아닌 힐러리 클린턴을 후보로 지지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오바마 본인이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를 꺾고 민주당 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과정에서 미국 역사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기회를 막았다는 부채 의식이 있었다. 물론 오바마는 역사적인 첫 '흑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지지를 받았지만, 다음에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바이든은 2015년 사랑하던 아들 보(Beau)를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 오바마는 그 상황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것보다는 우선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을 권했다고 하지만, 바이든은 부통령인 자기가 아닌 힐러리를 지지한 것을 서운하게 생각했단다. 그런 서운함은 힐러리가 트럼프에 패하면서 더욱 커졌다. 자기가 나섰으면 트럼프의 집권을 막을 수 있었는데—알다시피 바이든은 2020년 선거에서 이를 증명했다—오바마가 힐러리를 지지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물론 바이든이 그런 서운한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고, 오바마는 충실하게 옛 동료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해왔다.)

사람들이 바이든이 후보직을 사퇴할 경우 미니 경선을 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카멀라 해리스를 지목해서 지지할 것으로 생각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거다. 오바마에 서운했던 바이든이 똑같은 일을 해리스에게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맞았다.

(이미지 출처: CNN)

애매한 부통령 해리스

미국 정치에서 부통령은 아주 애매한 존재다. 과거에는 경쟁하는 정당의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삼기도 했고 (가령,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은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해서 부통령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자신과 같은 정당의 후보를 지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다. 근래의 추세는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이 자기가 가져올 수 없는 유권자 그룹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 혹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마이크 펜스가 전자라면, 조지 W. 부시의 러닝메이트 딕 체니, 오바마의 러닝메이트 조 바이든이 후자에 속한다. 바이든은 국방과 외교에 경험이 전무했던 오바마를 충실하게 보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오바마는 회고록에서 자기를 우습게 생각하는 군을 장악하는 데 바이든의 도움과 조언이 중요했다고 털어 놓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부통령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백악관과 의회의 중재자다. 미국 연방 의회의 하원 의장(Speaker)직은 다수당 내에서 경쟁을 통해 선출하지만, 상원 의장은 부통령이 맡는 게 미국의 법이다. 만약 상원에서 표결이 붙어 양당이 동수가 될 경우 의장인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부통령은 의회와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대통령이 의회와 대결하는 상황에서 부통령은 둘 사이를 중재하고 무대 뒤에서 교섭자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그걸 제일 잘했던 부통령이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이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상원의원이 되어 평생을 연방 의회에서 보낸 바이든은 그 누구보다 의회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상원 의원이 된 지 2년 여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의회 경험이 거의 없던 오바마가 어려운 입법을 할 수 있었던 건 바이든이라는 비밀 병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에 상원의원이 된 오바마에게 이야기하는 조 바이든 (이미지 출처: Britannica)

그런데 카멀라 해리스는 2017년에 상원 의원이 되었고,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다. 말하자면 오바마와 바이든의 역할이 바뀐 셈이다. 대통령인 바이든을 대신해서 상원의장 자격으로 의회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상원의장/부통령인 자기보다 바이든이 의회를 훨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친화력과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은 새로운 역할을 빨리 익혔겠지만, 해리스는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 바이든이 직접 해리스를 데리고 의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법을 보여줬지만, 의원들은 의사당에 찾아온 해리스에게 인사만 하고 지나칠 정도로 외부인으로 생각했고, 해리스도 그런 의원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카멀라 해리스는 "대통령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의회를 관리하는 유능한 부통령," 즉 '바이든 모델'을 구사하지 못했다. 물론 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본인과 대통령이 원하면—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해리스의 태도, 혹은 성격이었다.


'카멀라 해리스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