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평화조약에 반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격했다. 그러다가 최악의 참사가 1994년 2월에 발생한다. 바루흐 골드스타인(Baruch Goldstein)이라는 유대계 미국인 의사가 이스라엘군 군복을 입고 군용 공격 소총을 든 채 무슬림과 유대인의 종교 성지인 막흐펠라 동굴(패트리아크 동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둘러싼 건물이 세워져 있다)에 들어가 아랍인들을 향해 총기 난사를 한 거다.

무슬림의 명절인 라마단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곳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가득했던 그날, 골드스타인은 아무런 문제 없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사고에 대비해서 철저한 경비가 이뤄져야 했지만, 군도 경찰도 그의 입장을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느긋하게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기도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동소총을 쏴서 29명을 죽이고, 129명에 부상을 입혔다. 생존자들의 반격으로 그 역시 현장에서 죽었다.

바루흐 골드스타인과 그가 총기를 난사한 막흐펠라 동굴 (이미지 출처: Wikipedia, Bein Harim)

오슬로 평화조약으로 기대에 찼던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누구보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에게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극우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라빈의 평화조약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라빈 총리는 연설을 통해 그런 테러 행위를 하는 사람은 유대인의 일원도, 이스라엘의 일원도 아니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총리가 비난했다고 해서 물러나거나 조용해질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골드스타인의 행위를 찬양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더욱 거세게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바루흐 골드스타인의 시신이 점령지인 요르단 서안 내 헤브론에 묻히는 것을 불허했지만, 골드스타인을 추앙하는 한 극우 청년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기럇 아브바(역시 요르단 서안 지구에 있다)에 시신을 묻고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덤에 골드스타인은 성인이며, 깨끗한 손(죄가 없다는 뜻)과 순전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적었다.

바루흐 골드스타인의 무덤은 지금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극우 청년의 행보

학살범 바루흐 골드스타인의 무덤을 만든 그 극우 청년은 십 대 시절에 극우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해서 아랍인들을 이스라엘에서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으로, 이후 매년 막흐펠라 학살 기념일이 되면 무덤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행진하며 골드스타인의 행동을 찬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그를 특별히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또 다른 행동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게 된다. 1995년 10월, 그러니까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오슬로 평화조약의 두 번째 서명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이 청년은 라빈 총리의 캐딜락 승용차의 장식용 엠블럼을 떼어 훔쳐 와서는 보란 듯 자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차에 접근할 수 있었으니, 그에게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엠블럼을 훔칠 수 있을 정도면 총리를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었고, 그를 죽이자는 부추김이었다. 바루흐 골드스타인의 학살을 찬양하고 라빈 총리를 죽이자고 부추긴 이 극우 청년은 누굴까?

첫 글에서 이야기한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의 당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바로 그 청년이었다. 현재 이스라엘의 국가안보부 장관이다.

1995년 라빈 총리 차량에 붙은 엠블럼을 훔쳐 자랑하는 극우 청년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미지 출처: X)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와의 연정으로 장관이 된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미지 출처: The Cradle)

벤그비르가 암살을 부추긴 지 몇 주 밖에 지나지 않은 11월 5일, 한 남자가 태연히 걸어서 보안 요원들을 모두 통과해 라빈 총리의 바로 앞까지 가서 총을 꺼내 암살한 것이다. 총리의 안전을 담당한 정보기관 신베트는 어쩐 일인지 범인을 막지 못했고, 암살 직후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했다. 이갈 아미르라는 이 20대 남자는 법대생으로, 정착촌 건설을 주장하는 극우 민족주의자 단체의 일원이었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로 오슬로 평화조약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될 운명에 처했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 (이미지 출처: The Guardian)

결국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라빈 총리를 암살한 것은 1967년에 전쟁으로 획득한 점령지를 지키려는 의도였다. 그들은 그 땅을 지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론, 자국의 총리까지 암살할 수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 것이다. 그런 세력을 대표하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즉 학살범을 찬양하고 총리 암살을 부추긴 인물이 현재 이스라엘의 내각에 있을 뿐 아니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생명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이스라엘이 어떤 지경에 와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이 벤그비르 같은 인물의 치밀한 계략만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이스라엘의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정부 각층, 깊숙한 곳에서 눈에 띄지 않게 점령지를 지키는 노력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거지를 침범하면서 테러를 일삼자,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고, 이런 분노의 에너지를 이용하려는 급진 세력이 등장할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바로 하마스의 등장이다.


'극우의 이스라엘 장악 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