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권의 풍경 ①
• 댓글 4개 보기오래 전 일이지만, 한국의 한 출판사가 미국의 유명 보석 회사인 티파니(Tiffany)를 소개하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여러 디자인 기업을 소개하는 시리즈 중 하나였고, 각 기업을 대표하는 고유의 색을 표지에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출판사는 자연스럽게 티파니의 상징인 '티파니 블루(Tiffany Blue)'를 책에 사용했다.
그런데 그 책이 나온 직후 티파니 본사에서 "그 색은 우리가 상표로 등록한 색이니 우리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그걸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인쇄를 마쳤던 출판사는 사과하고 책 전량을 회수해야 했다.
법이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티파니의 색(HEX 코드 #81D8D0)을 쓸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표(trademark)와 저작권(copyright)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전자의 경우 티파니와 전혀 무관한 업종—가령, 금융기업—에서 로고에 그 색을 사용할 경우 티파니가 소송을 걸 수는 있겠지만, 승소 가능성은 적다. 바비의 핑크색, 코카콜라의 빨간색, UPS의 짙은 갈색, 그리고 3M이 포스트잇에 사용하는 옅은 노란색 등이 그렇게 동종, 유사업종에서 사용할 수 없다. (한국의 출판사의 경우 책 제목에 티파니가 들어간 채로 그 색을 사용했으니, 독자들이 티파니에서 발간한 공식 책자로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
상표와 저작권, 그리고 특허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과거에는 지적재산권이라고 불렸다)을 보호해 주는 법적 장치다. 흔히 I.P.라는 약자로 불리는 지식재산권이 부의 창출 수단이라고 하면 인기곡, 인기 시트콤으로 돈을 버는 연예인이나 엔터테인먼트 기업 디즈니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실상은 훨씬 더 엄청나다. 세계 최대 부자 50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재산의 일부, 혹은 전부가 지식재산권으로 벌어들인 것이고, 미국이 수출하는 재화, 서비스 총량의 52%가 지식재산권이다. 그래서 "지식재산권은 새로운 석유"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 뉴요커에서는 지식재산권을 다룬 책, 'Who owns this sentence? (누가 이 문장의 소유자인가?)'를 소개하면서 근래 들어 지식재산권을 향한 경쟁이 얼마나 뜨거워지고 있고, 그 결과로 등장하는 뜻밖의 현상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기사를 발행했다. 아래 내용은 그 기사에서 눈에 띄는 내용에 설명을 붙인 것이다.
누군가의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금지'다. 내가 가진 지식재산권은 나의 허락 없이는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재산권은 경제적 가치인 동시에 사회적 비용이다. 권리의 보호는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걸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기도 한다.
유명 가수 밥 딜런(Bob Dylan)과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은 자신들이 평생 녹음한 곡의 전부를 소니에 팔았다. 두 사람은 그 계약으로 수천억 원의 돈을 벌었다. 미키마우스의 원조인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의 저작권이 최근 풀린 것처럼, 이들 노래의 저작권도 시한이 있다. 그런데 그 시한은 "작곡자의 사망 시점부터 70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소니는 이 가수들이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돈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스프링스틴은 녹음한 음원의 사용권을 판 것이기 때문에 옛날 노래를 다시 불러 녹음해서 판다면 소니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자기 매니저(스쿠터 브라운)가 음원을 팔아버리는 바람에 옛날 노래의 음원으로 돈을 벌 수 없게 된 테일러 스위프트는 옛날 노래의 전곡을 새롭게 녹음했고, 팬들은 가수의 부탁에 따라 스트리밍에서 새로 녹음된 노래를 들음으로써 스위프트에게 수익이 가게 도와준다. 하지만 스위트와 달리 자신이 직접 계약에 관여한 스프링스틴이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다.
위의 책을 쓴 벨로스와 몬터규에 따르면 음악, 영화, 미술, 게임, 학술 논문 등 거의 모든 작품(문화 상품)들이 소수의 거대 기업의 소유가 되는 추세이고, 그렇게 대기업의 손에 들어간 작품들은 오래도록 그들의 재산이 된다. 하지만 그게 소비자에게 반드시 나쁠까?
음원을 사들인 소니는 예술작품을 경매를 통해 사들여 자기 집에 걸어 놓는 수집가와 다르다. 기업은 자기가 소유한 음원을 가능한 한 널리 퍼뜨려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음원을 퍼뜨리는 곳은 스트리밍이다. 음악 팬들은 과거 LP나 CD를 사야만 했던 시절과 달리 아주 저렴한 구독료를 매달 내는 것만으로도 듣고 싶은 음악을 대부분 들을 수 있다. (참고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독점이 아니라는 논리에 관해서는 '플랫폼은 왜 모두 💩이 될까?'와 '수수께끼 대법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한 마디로, 스트리밍 서비스 사용자가 스프링스틴의 노래를 평생 듣는 데 사용하는 돈은 몇 푼에 불과하고, 소니는 수억 명의 사용자를 거느린 스트리밍 기업에게서 큰돈을 벌 수 있다.
그 결과, 이제 지식재산권을 사들인 기업들은 마치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의 강도 남작(robber baron, 강도 귀족)들과 비슷하게 독점을 통해 편안히 돈을 벌게 되었다.
벨로스와 몬터규는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지식재산권을 모으는 기업들의 수익은 날로 커지고 있는데, 정작 창작자들의 수입은—소수의 톱스타들을 제외하면—줄어들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을 기업들이 통제하게 되면서 사회가 공유하는 자산(commons, 공유재)을 훔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은, 가수의 노래, 시인의 시, 화가의 그림, 심지어 틱톡에 올라오는 동영상도 궁극적으로 인류가 누리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이런 창작물을 통해 즐거움을 누리고, 배우고, 영감을 받고,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창작물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창작물을 즐길 수도 있고, 변형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단 하나만 할 수 없다. 우리가 변형한 것을 일정 기간 동안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연방 의회가 1790년 저작권법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저작권 등록을 한 후 14년 동안 권리가 유지되고, 14년이 지나면 이를 한 번 더 (14년 동안) 연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따로 등록할 필요도 없고, 기간도 연장되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창작자가 사망한 후 70년 동안 그 권리가 유지된다. 하지만 저작권자가 기업일 경우, 즉 직원이 창작한 작품을 소유한 기업의 경우, 작품이 발표된 후 95년 동안, 혹은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후 120년 동안 저작권을 갖게 된다.
영국에서는 저작권법이 더 일찍 만들어졌고 (따라서 미국에 저작권법이 존재하기 전까지 영국에서 발행된 책의 해적판이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 제품의 짝퉁, 불법 복제 영상을 만들어 저작권을 훼손한다고 비난하지만, 미국은 훨씬 일찍부터 그랬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쉬운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저작권법은 출판업자와 저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했는데, 지금은 거대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내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법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 벨로스와 몬터규의 주장이다.
'지식재산권의 풍경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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