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에 교수, 학자들이 드물지 않아서 이 사람들의 특징을 좀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물론 이들도 다양한 집단이라 몇 가지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가령 농구선수들 중에 키가 큰 사람이 많고, 정치인들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은 존재한다. 가령, 이들은 대개 쉽게 단정짓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는 걸 경계해서, 다들 한 방향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잠깐만요"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수들과 얘기하면 피곤하다"고 하는 불평이 이래서 나온다. (물론 모든 학자가 교수는 아니고, 모든 교수가 학자인 것도 아니지만, 이건 논의에서 제외하자.)

만약 우리가 최고의 능력을 갖춘 이상적인 학자를 (말하자면 마치 '6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많은 지적 영역이 그렇지만, 일단 좋은 머리를 타고나면 유리하다. 남들보다 빠른 이해와 학습은 많은 지식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정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겠지만, 유명한 학자 중에는 부모나 숙모, 삼촌, 할아버지처럼 집안에 학자들이 수두룩한 경우가 제법 많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들에게서 듣고 배우는 건 물론이고, 학자라는 '직업'이 어떤 건지 어릴 때부터 익히 봐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란 아이에게 학자로서의 "수퍼 파워"를 줄 수 있는 요소가 하나 있다면? 자기가 책에서 배운 게 전부가 아님을 일찍부터 깨닫게 해주는 다양성이 높은 환경이다. 훌륭한 학자들은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분명히 다른 자질이다.

그렇게 학자가 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란 학자가 있다면, 아마도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아닐까?

아마르티아 센이 누구인지 몰랐던 (솔직히 고백하면 이름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어 보시라는 권유를 받아들인 건 표지와 두께, 제목 때문이었다. 600페이지나 되는 회고록인데, 아직 2편은 나오지도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어떤 사람인데 나는 들어본 적도 없지? 하는 도전이었고, 책 표지에 책 읽는 저자의 사진을 넣고, 제목은 잘 보이지도 않게 작게 써넣은 출판사의 배짱에 호기심이 들었다.

무엇보다 제목의 번역이 기가 막혔다. 흔한 번역자라면 'Home in the World'라는 제목을 번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세상 속의 집'이라고 대충 번역했을 게 분명한데, 이 책을 옮긴이(김승진)는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이라는 시적이면서도 저자의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제목을 붙였다. (Home in the world에서 home은 명사가 아니라 "I'm home in the world"처럼 부사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나처럼 아마르티아 센이 누구인지 몰랐던 분들을 위해: 아마르티아 쿠마 센(Amartya Kumar Sen)은 인도 벵골 지역에서 태어난 경제학자, 철학자로 1998년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며 후생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로 경제학계의 테레사 수녀로 불린다." 현재 90세로,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다.

완벽한 학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아마르티아 센은 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보인다. (운명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이 말에 동의하게 될 거다.) 일단 '아마르티아'라는, 인도인의 기준으로도 특이한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한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도 잘 아는 그 타고르. 1913년 아시아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였다. 타고르는 유명한 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의 집안과 그 주변에는 그의 성장기에 인도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가득했고 이들은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센의 아버지도 교수였고, 어머니는 공산주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이었으며, 일가친적 중에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리버럴 민주주의자들이 섞여 있었다.)

아마르티아 센과 그의 책 (이미지 출처: 출간 기념 인터뷰 영상)

게다가 그의 주변에 많았던 훌륭한 어른들이 대부분 자기 사상이 분명하면서도 열린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행복이다. 가령 그는 어린 시절 그의 외할아버지와 타고르가 주재하는 정기 모임에서 그들의 연설을 들었는데, 외할아버지의 연설 속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담론에 동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12살이 되던 해에 솔직한 의견을 말하고 그만 가겠다고 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센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기 전에는 종교적 믿음을 가져서 좋을 이유가 없다"라고 했다.


이렇게 지적으로 허용적인 완벽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가 머리까지 좋다면 아마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이게 이 책이 가진 유일한 단점의 배경이 된다. 가디언이 이 책의 리뷰에서 "digressive(지엽적인 얘기를 많이 한다)"라는 표현을 쓴 건 틀린 말이 아니다. 서문을 끝내고 본문에 도착하자마자 온갖 팩트가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확인해야 할 게 제법 많다. (특히 나처럼 인도의 지리를 모르는 사람은 책의 앞부분은 구글 지도를 펴놓고 읽는 걸 권장한다.)

그런데 회고록의 앞부분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확하게 말하면, 가디언은 책이 어느 지점부터 "덜 산만해진다less digressive"고 한다) 아마르티아 센의 놀라운 이해력과 사고력, 기억력 때문이다. 이 사람이 1933년 생이라는 걸 모르고 읽으면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쓴 책처럼 보이는데, 그건 그가 10살이 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당시에 고민했던 내용들이 마치 다 자란 어른의 고민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억과 고민이 생생한 건 단순히 그의 기억이 좋아서만이 아니다. 그의 성장기는 인도 역사의 격변기였고, 그는 그런 격변의 중심에서 자라며 불의와 모순,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가령 그는 11살 때 자기 집 마당에 찾아와 쓰러져 죽은 일용직 노동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그 사건은 당시 그 지역에 퍼지던 '커뮤널(communal) 폭력'의 일부였다. 이 책은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아이가 역사의 격변을 경험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인 셈이다.

1946년 콜카타 폭동에서 힌두 사원이 습격당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Medium)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쓴 책이지만, 저자가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 책의 후반부에서다. 아마르티아 센의 책에서 "산만한" 부분은 전체의 2/3에 달하는 부분인데, 이 책을 읽는 법을 깨닫고 나면 그 부분이 얼마나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한지 알게 된다. 바로 인도의 근현대사와 지식인들의 이야기다. 자기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일화를 거의 강박적으로 기억하는 센이 들려주는 인도의 사회와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인도에 대해 얼마나 몰랐는지, 혹은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가령, 앞서 언급한 시인 타고르와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의 사이의 논쟁이 그렇다. 간디는 런던에서 법을 공부한 지식인이고, 전 세계에 비폭력 저항을 가르친 사상가였다. 따라서 간디는 지적,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에 반해 "시인 타고르"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든) 신비주의의적인 이미지가 퍼져있다. 그런데 1934년, 인도와 네팔 지역을 강타한 지진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과 논쟁은 이들을 전혀 다르게 보게 해준다.

'네팔-비하르 지진'은 리히터 규모 8.4의 엄청난 지진으로, 사망자만 3만 명에 달하는 비극이었는데, 간디는 이 재난을 두고 '불가촉천민'을 규정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했다. 타고르 역시 카스트 제도를 깨기 위해 싸웠던 사람이지만, 간디가 이런 자연재해를 두고 윤리적이고 비과학적인 해석을 한 것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논쟁이 생겼고, 간디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여론은 정치적 목적이 아무리 옳더라도 그걸 자연재해에 동원한 간디를 비난하는 쪽으로 기울었던 듯하다. 그런데 자와할랄 네루까지 나서서 간디를 비판하면서 간디가 큰 공격을 받게 되자, 타고르는 간디가 위대한 인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여론을 달랬다. 이렇게 타고르를 잘 알고 있는 저자는 타고르의 탁월함을 들려주며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같은 지식인이 타고르를 오해하고 성급하게 비판했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타고르가 서구에 "유럽을 구해줄 메시지"를 가진 현인으로 비춰진 이유—그중에는 본인의 결정도 없지 않다—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이럴 때 보이는 저자의 자세야말로 우리가 학자에게서 기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타고르는 서구에서 성인이나 예언자 같은 이미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 출처: Britannica)

이 책의 전반부에서 타고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가 아마르티아 센의 집안과 가까워서만 아니다. 센은 타고르가 1921년, 산티니케탄에 설립한 학교(Patha Bhavana)에 다녔고, 그는 이곳이 어린 시절 자신의 사고방식을 만들어 주고 학문적 토양을 제공한 곳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지금은 비스바 바라티(Visva-Bharati University) 대학교로 승격한 이 학교는 인도의 암기 교육(rote learning)을 비판했던 타고르가 자기가 가진 이상적인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가령, 교실은 세상과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에 따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야외에서 수업을 했는데, 센은 새소리와 온갖 소음이 가득한 환경에서 수업에 집중하던 어린 시절의 습관 때문에 아무리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집중하는 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풍성한 지적 토양에서 자란 아마르티아 센의 회고록은 격변하는 세계사(그는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침략, 1947년 인도의 독립을 목격했다) 속에서 인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도에 대한 지식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고쳐준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단순히 인도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는 책이 아니다. 책의 많은 내용이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와 고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마르티아 센은 자기가 산티니케탄의 학교에 정착한 이듬해인 1943년 (그가 10살 때) 뱅골 지방에서 수백만 명을 죽인 대기근을 목격한 가족들이 식품 가격이 한 해 전인 1942년에 폭등한 이유를 두고 토론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는 그 사태를 두고 대기근은 (가뭄과 달리) 자연재해가 아니라, 계급에 기반한 재앙이고, 사회적 실패임을 이야기한다. 그의 후생 경제학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이런 경험과 고민의 결과다.

1943년 벵골 대기근을 전 세계에 고발한 사진들 (이미지 출처: Wikipedia, LIFE)

또한 저자는 영국이 인도를 200년 동안 식민 지배한 것을 두고 영국이 주장하는 논리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영국은 인도가 종교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고, 심지어 통일된 나라도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영국인들이 지배하기 전까지 벵골 지역이 얼마나 종교적으로 다원적이고, 서로에 관용적이었는지 설명하면서 영국의 식민 논리를 깨버린다. 더 나아가 '기근에 시달리는 가난한 인도'라는 이미지도 영국의 지배하에서 만들어졌음을 설명하기도 한다. 인도는 영국의 지배하에서 자주 대기근을 겪었을 뿐, 인도가 독립한 후에는 대기근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에 떠도는 "뉴라이트"류의 일본 강점기 해석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더 나아가 "영국이 그 200년 동안 인도를 통치하지 않았더라면 1940년대에 인도가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하면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를 이야기하는 10장 '영국과 인도'는 놓치면 안 될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인도가 영국의 활발한 언론 문화처럼 좋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도는 독립한 이후에나 그 덕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식민주의자들이 식민지에 좋은 것을 허락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마르티아 센이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넘겨짚으면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이고, 그게 이 책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2차 대전에 강제로 "참전"시킨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그런 영국의 결정에 반대하면서도 "일본 및 독일 쪽과 결합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논의를 설명하는데, 이는 미국 민주당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차라리 트럼프에 희망을 거는 한국의 일부 좌파의 태도가 과연 옳은지 생각하게 한다.

젊은 시절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저자 (이미지 출처: WSJ)

저자는 학창 시절 마르크스를 통째로 부정하는 우파 학생들과 러시아에는 압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던 좌파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것을 회상하는데, 영국이 1948년에 전국민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도입할 때 주요한 역할을 한 어나이린 베번(Aneurin Bevan)이 마르크스의 저술을 공부한 사람임에 주목하면서, 마르크스주의가 경제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것과 당장 실현 가능한 정책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친구들과 문학잡지를 창간했던 센은 인도에 정치적, 경제적 변화가 너무 느리게 오고 있다고 걱정했는데 한 선생님이 자기에게 "너무 참을성이 없다"고 지적했던 일을 말하면서, "조급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주장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읽으면서 줄을 칠 곳이 정말 많은 책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서문에서 "2차 대전 이후 인간 사회들은 서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고, 나는 실제로 보고 들은 경험을 통해 그 노력을 피부에 닿도록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어 보면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어서 "그러한 노력이 오늘날 끔찍한 불관용에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고 경고한다. 가장 끔찍한 시기를 살았고, 그걸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고민했던 학자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큰 실수가 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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