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뷰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아동 성폭행범, 살인 용의자, 마약 밀수범을 찾아낸 사례들이고, 당연히 경찰을 비롯한 각종 수사기관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아무나 공급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서비스라고 해도 아무런 연고도 없고, 특이한 이름에 머리를 길게 기른 동양 남성, 그것도 호주 국적을 가진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미국 전역 각급 경찰, 수사기관을 상대로 성공적인 영업을 했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6년 대통령 당선 직후 트럼프가 테크 기업인들을 만났을 때 틸은 바로 옆에 앉았다. 

최근 미국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책 'The Contrarian'은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피터 틸(Peter Thiel)의 전기다. 틸은 흔히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이고, 페이스북과 스페이스 X 같은 성공한 스타트업에 일찍 베팅한 투자의 귀재, 팰런티어의 창업자, 그리고 한국에서도 제법 인기를 끈 책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미지의 피터 틸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사실상 실리콘밸리에서는 유일하게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틸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만 놀란 것이 아니라, 그의 보수적인 기질을 잘 아는 사람들도 그의 트럼프 지지 선언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The Contrarian'은 트럼프 지지를 비롯해 많은 상호모순적으로 보이는 틸의 행동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책에 호안 톤 탯이 몇 차례 등장한다.

Trump & Friends

뉴욕타임즈의 카시미어 힐 기자가 클리어뷰 AI에 대해 취재를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발견한 이름은 창업자 호안 톤 탯이 아니라 피터 틸이었다. 클리어뷰는 초기 투자를 틸에게서 받았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트럼프 시절에 피터 틸의 주가는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의 천재이자 정권과 끈이 닿는 실세 중의 실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의 책에 따르면 여기에는 이론의 여지가 좀 있다).

톤 탯이 이 '중요한'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톤 탯의 버전과 언론의 탐사 취재 버전이다. 먼저 톤 탯에 따르면 그는 2016년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뉴욕으로 갔고, 거기에서 어느 보수 씽크탱크에서 개최한 이벤트에 갔다가 리처드 슈워츠(Richard Schwartz)라는 사람을 만났다. 슈워츠는 뉴욕 시장을 역임하고 지난 몇 년 간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 일해온 루디 줄리아니의 최측근이다. 즉, 트럼프 써클 안에 있는 인물을 만난 것이다. 톤 탯에 따르면 슈워츠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중에 안면 인식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톤 탯이 개발을 주도하고 슈워츠가 자신의 인맥을 통해 마케팅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힐 기자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듣보잡 프로그래머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트럼프에 가까운 인물과 엮이게 된 이야기로는 우연과 비약이 심했기 때문이다. 힐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준 건 허프포스트의 기사였다. (허프포스트의 기사는 4월에 나왔다. 이 기사는 2월에 나온 버즈피드뉴스의 기사와 함께 1월에 나온 뉴욕타임즈 힐 기자의 취재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세 언론사가 직접 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소속이 서로 다른 기자들 사이에 경쟁과 협력이 제대로 작동할 때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허프포스트는 그 기사에서 톤 탯이 흔히 "척 존슨"으로 불리는 악명높은 보수논객 찰스 존슨(Charles Johnson)과 가깝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 기사를 읽은 힐 기자는 존슨을 직접 만났다.

척 존슨(왼쪽)과 만난 호안 톤 탯. 두 사람이 하는 손가락 사인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상징(White Power)이다.

당시 26세의 젊은 블로거였던 척 존슨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트롤링으로 폭발적인 팔로워를 가지고 있었고 보수진영과 든든한 연결점을 갖고 있었다. 톤 탯을 정권의 실세 슈워츠에게 연결해 준 사람이 존슨이었을 뿐 아니라, 큰 돈을 투자할 피터 틸을 만나게 해준 것도 존슨이었다. 틸은 초기에 20만 달러를 투자했고, 슈워츠는 전직 뉴욕시장의 오른팔이 가진 인맥을 사용해 클리어뷰를 뉴욕 경찰이 사용하게 해주었다. 즉, 톤 탯에게 투자자와 마케팅 연결점 둘 다를 데려다준 사람이 트럼프 지지 우익 논객 척 존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클리어뷰 AI (당시에는 Smartcheckr LLC)의 초기에는 톤 탯, 존슨, 슈워츠 세 명이 동일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후에 톤 탯은 존슨을 경영진에서 빼버렸을 뿐 아니라, 아예 공동 창업자에서도 지워버린다. 톤 탯은 클리어뷰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클리어뷰를 보는 중요한 견해차도 존재했다. 적어도 초기에 톤 탯은 경찰과 수사기관에만 서비스를 제공하기 원했지만, 존슨은 (정부 기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진 트럼프 지지자답게) 그런 막강한 힘은 경찰만 갖고 있으면 위험하니 모든 미국인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둘의 견해차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클리어뷰의 투자자인 피터 틸은 정부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공해상에 인공섬을 만들어 어느 나라 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시스테딩seasteading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도 했다) 정작 자신의 본업은 그런 정부에 감시 도구를 제공하는 팰런티어라는 기업이다. 즉, 이들 테크기업은 정부를 불신하는 트럼프의 '유니버스' 안에서 사업을 확장했지만, 실제 돈벌이는 정반대 쪽에서 하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바로 지난 1월 6일에 일어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과 그 수사다. 바이든의 승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의회에서 진행되는 것을 막으려는 트럼프가 백악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 참석한 수천 명의 지지자에게 "의사당으로 가서 절차를 저지하라"고 명령했고, 이를 들은 지지자들이 의회를 습격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지지 폭도의 1월 6일 연방의회 의사당 습격사건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모습을 셀카로 찍거나 폰을 사용해 소셜미디어에 생중계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FBI는 이 수만 장의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증거물로 확보하고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FBI는 어떤 기술을 이용해서 용의자의 신분을 확인하고 있을까? 바로 클리어뷰 AI다. (클리어뷰의 웹사이트에서는 이를 "성공사례"로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척 존슨의 우려는 이렇게 현실화된 셈이지만, 습격 사건을 비판하고 FBI의 철저한 수사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FBI의 클리어뷰 사용을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 이는 안면 인식 기술에 대한 대중의 모순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 기술을 보는 사람들의 견해는 자신이 카메라 뒤에 있느냐 앞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맺음말: A.C.L.U.

최근 호주 정부는 클리어뷰 AI가 허락없이 시민들의 생체정보(biometrics)를 수집한 것이 호주의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클리어뷰가 수집한 호주인들의 안면 인식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주인들이 소셜미디어나 프로페셔널 네트워킹 사이트를 사용할 때는 자신의 얼굴 이미지가 허락없이 수집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온라인 이미지 데이터의 수집이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인 클리어뷰는 이 명령에 불복하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일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미국에서는 별 문제없는 사업이 또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인 호주에서는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호주와 미국의 법체계는 다르고 개인정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가령 한국의 뉴스 영상에서는 길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흐리게 처리하지만, 미국에서는 가리지 않고 보여준다. 또한 유럽연합이 만든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칙)은 미국보다 훨씬 엄격하게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미국에도 클리어뷰의 안면 인식 정보 수집을 막는 법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리노이주의 개인 생체정보 보호법(BIPA, Biometric Information Privacy Act)으로 민간기업이나 단체가 시민의 생체정보(biometrics)를 허락 없이 수집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페이스북도 이 법에 걸려 벌금을 냈고, 클리어뷰는 일리노이 주민들의 사진은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연방 수준에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이 문제가 시민의 권리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 American Civil Liberty Union)이 나섰다. 뛰어난 변호사들이 포진한 이 단체가 클리어뷰를 상대로 소송을 걸자 호안 톤 탯 역시 거물급 변호사 플로이드 에이브럼스를 고용해서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양측은 어떤 법을 근거로 공방을 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미국 수정 헌법 제1조, 즉 '발언의 자유' 조항이다.

클리어뷰를 대표하는 에이브럼스는 허락 없이 생체정보 수집을 금하는 일리노이주의 법이 기업이 가진 발언의 자유(right to free speech)를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클리어뷰는 이미 공개된 정보를 '분석'하기만 할 뿐인데, 이를 막는 것은 발언을 막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이 참신하게 느껴진다면 이에 대한 A.C.L.U.의 반박은 더 흥미롭다. 공개된 사진 이미지를 기업이 긁어가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렇게 가져간 이미지를 기반으로 페이스프린트(faceprint), 즉 개인별 안면 템플릿을 만들어내는 건 발언(speech)이 아닌 행위(conduct)라는 것이다. 행위는 발언과 달리 수정 헌법 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따라서 일리노이주의 법은 합헌이라는 것이 A.C.L.U.의 주장이다.

이 법정 공방은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