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의 역사
• 댓글 68개 보기우리는 미국인들이 프라이버시에 민감하다고 알고 있다. 가령 그들이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고 부르는 게 그렇다. 미국인은 공공장소에서 낯선 사람이 가까이 붙으면 몹시 불안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는 아시아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도 몹시 낯선 개념이다. 아시아, 유럽과 같은 오래된 대륙에서는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나 줄을 설 때 몸이 닿을 정도로 바짝 붙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미국인들은 지하철에서 몸이 붙을 만큼 사람이 많으면 아예 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게 퍼스널 스페이스를 확보하려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이 프라이버시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는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된 건 유학생으로 아파트에서 거주하다가 정착해서 미국식 주택가인 교외(suburban) 지역에 살게 되면서부터다.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미국인들의 주거 방식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고방식을 비로소 엿보게 된 거다.
한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지금 사는 집은 현관문 옆에 가늘고 긴 창문이 있다. 나는 이 집으로 처음 이와서 그 창문을 보고 무척 당황했다. 밖에서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밝은 낮에는 유리에 반사되어 쉽게 보이지 않지만, 저녁이 되고 집 안에 등을 환하게 켜면 길에서 내부가 모두 드러난다. '아니, 어쩌자고 여기에 창문을 냈지?'
그런데 동네의 다른 집들을 보면서 그게 아주 일반적인 관행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다른 창문에라도 커튼과 블라인드를 치는데, 미국 교외 지역에서는 밤에도 커튼을 치지 않는 집이 많다. (아래의 사진이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다.) 더 재미있는 건, 집이 크고 좋을수록, 즉 잘 사는 집일수록 내부가 잘 보이게 밤에도 커튼을 치지 않고 실내를 환하게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거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이 사람들이 집 자랑을 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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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국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 프라이버시를 그렇게 외치면서 집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미국인들의 행동은 모순이 아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역사와 개념이 다른 것이다.
집의 안과 밖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는 아파트 현관문이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성벽이지만,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 가정에서는—적어도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자기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는 일이 드물다. 한국인만 그러는 게 아니라서, 미국에서 자라는 아시아계 아이들은 부모가 자기 방에 불쑥 들어와서 얘기하다가 나가면서 방문을 꼭 닫지 않고 몇 센티미터를 열어둔다고 불평한다. 이 아이들은 어느 틱톡 영상에 나온 것처럼 "왜 아시아계 부모들은 나가면서 문을 안 닫는 거야?"라며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사실 나도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고 잠그는 게 자연스럽지만(=화났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그러지 못한다. 즉, 같은 집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거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사소해 보여도 크게 다른 서양 사람들의 프라이버시 개념이 발생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잘 설명해 주는 책이 데이비드 빈센트(David Vincent)가 쓴 '사생활의 역사(Privacy: A Short Histor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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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는 저자가 "혼자 있을 권리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중세 시대부터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생활, 즉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한다. 모든 것을 다 담으려는 이론서적이 아니라, 사례를 중심으로 개념의 변화를 살핀 책이라 읽다 보면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많다. 위에서 이야기한 미국 가정의 태도를 이해하게 도와주는 개념이 바로 하인의 존재다. 서구적 프라이버시와 하인은 언뜻 별개의 개념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프라이버시가 부자들의 사적인 '공간'이 탄생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처음부터 얽혀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귀족이 사는 저택의 거실은 가족들만의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하인들이 드나들며 시중을 드는 곳이고,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이 주인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장소다. 현대의 호텔 로비를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호텔이 원래 귀족들이 드나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그렇다면 그 공간이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공간의 목적에 부합한다. 미국의 좋은 집들이 거실을 잡지 화보처럼 예쁘게 유지하는 이유가 그거다.
방은 다르다. 가족 구성원의 사생활은 현관을 들어온 거실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머무는 방(침실, 서재 등)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아이들이 집에서 자기 방에 들어갈 때 문을 반드시 닫거나 잠그는 것은 한국의 아파트에서 현관에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문화에서는 현관을 들어서면 프라이버시가 시작되고, 미국 문화에서는 자기 방에서 시작된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영국 상류층에게는 보지 않아야 할 것을 보지 않는 일종의 '의도적 근시'가 요구되었다." 19세기 영국의 건축가가 한 말로, 함께 사는 하인의 사생활이 보여도 보지 않는 것이 예의였고, 에티켓이었다는 얘기다. 19세기가 되면 서구의 프라이버시 개념도 많이 발달하고 복잡해져서, 현대의 에티켓과 비슷해진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우리 집 현관 옆 두 개의 창문으로 돌아가면, 내가 이 집에서 살면서 발견한 미국인의 행동 중 하나가 남의 집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에 커튼과 블라인드를 다 열어두고 있지만, 산책하는 이웃들은 신기할 정도로 남의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동네를 걷거나 차를 운전하면서 다른 집 앞을 지나는데 실내가 환히 들여다 보이게 모든 창을 열어 놓고 있으면—그런 집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테리어를 아주 아름답게 해놓고 있다—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 걸 억제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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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남의 집을 절대 보지 않을까? 그랬다면 "보란 듯" 열어두지 않았을 거다. 그들도 남의 집이 꾸민 거실에 관심이 많지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을 꺼릴 뿐이다.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남들이 볼 수 있게 입고 나왔다는 것이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불법 촬영을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프라이버시는 미묘한 줄다리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미개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걸 피하기 힘들다.
쉽게 말하면 서구의 프라이버시 개념은 무조건 모든 것을 감추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여기에는 정부나 기업도 포함된다)은 그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사생활의 역사'에서 다루는 프라이버시는 크게 공간과 소통 방식으로 구분된다. 사적인 공간은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이 둘이 분리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남들이 듣거나 엿보지 않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건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편제도가 발달하기 전에는 멀리 여행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뜯어서 읽어보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고, 전화가 등장한 후에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 전화를 연결해 주던 시절에는 교환원이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 서신들이 대개 딱딱하고 형식에 맞춰 쓴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거다. 과거에는 완전한 사적이고, 완벽히 비밀스러운 소통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떨까? 누구의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밝혀지면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는 비밀을 폰에 넣고 다닌다." 그 비밀은 기업의 비밀일 수도 있고, 혼외의 관계의 기록일 수도 있고, 불법적으로 주고받은 파일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폰의 비밀번호를 여는 순간 모든 게 끝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렇게 완전히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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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테크놀로지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게 하나고,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과거보다 훨씬 민감한 정보—가령 비밀 대화—를 쉽게, 많이 만들어 낸다는 게 다른 하나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사는 기술 환경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전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지만, 이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건 1710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법을 설명하는 2장이다.
당시 정부가 국가 구성원을 감시하는 것을 두고 저자는 '이중 접근법'이라고 설명한다. "이중 접근법이란, 국가는 낮은 수준의 보안을 선언하고 그 약속을 대부분 이행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감청은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은폐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는 대개 지켜지지만, 그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해지거나, 권력에 위협이 될 경우 그들의 프라이버시는 언제든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폭로한 것만 봐도, 현대의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든 사람들의 사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즉, 프라이버시에 대한 존중은 선택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현관 옆 창문을 들여다보느냐, 마느냐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
'사생활의 역사'의 한국어판을 출간한 더퀘스트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유료 독자 여러분께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가 금요일 오전에 추첨을 통해 발표하겠습니다. (책은 한국 주소로만 배송될 수 있음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