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밴스가 만난 교황
• 댓글 2개 보기어제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들 중에 미국의 부통령 J.D. 밴스가 있었다. 밴스는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임종이 멀지 않았다는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부활절에 바티칸을 찾은 듯하다. (정정: 처음 발행된 버전에서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중에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많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밴스는 어릴 때는 개신교 교회에 다닌 적이 있고,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가 무신론자라고 밝히기도 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자기가 가톨릭 신자라고—정확하게는 2019년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하지만, 교황을 만나서도 "저는 아기 신자(I'm a baby Catholic)"이라고 말했을 만큼 신앙이 오래된 사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그가 부통령직을 이용해서 교황을 만났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것과 무관하게 밴스의 신앙은 이미 구설수에 올랐다. 무슨 이유로 뒤늦게,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가톨릭 신자를 자처하느냐는 것.
트럼프는 자기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왜 기독교(개신교)인들이 자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그의 인생철학대로 기독인 흉내를 내며 트럼프판 성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트럼프의 개신교 끌어안기는 그렇다고 해도 밴스는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까?

물론 종교, 신앙이라는 건 개인적인 문제이니 그가 어떤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작년에 나온 슬레이트(Slate)의 기사는 밴스의 가톨릭 귀의를 아주 흥미롭게 분석해서 눈길을 끌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그냥 아주 오래되었다는 게 참 좋습니다(I really liked that the Catholic Church was just really old)." 그가 2021년에 보수 가톨릭 컨퍼런스에 나와서 한 말이다. 단순히 오래된 종교가 가진 매력을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의 "고색창연함"에 매료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밴스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 보면, 가톨릭이 오래된 종교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역사의 길이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밴스는 자기가 "기독교인은 무식하다는 거짓말에 속아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낭비한" 사람이라며 (반트럼프에서 친트럼프로 돌아설 때도 그랬지만, 밴스는 입장을 바꿀 때 남의 탓을 하는 습관이 있다) 성 어거스틴의 글을 읽으면서 아주 지적인 방식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많은 미국인들이 믿는 보수개신교, 특히 복음주의 기독교는 신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가톨릭은 그런 접근과 거리가 멀다. 밴스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자기가 생각하는 보수, 혹은 극우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자기의 세계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종교로 가톨릭을 선택한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이기도 한 밴스는 트럼프 지지자로 돌아선 ('J.D. 밴스의 전향') 이후로 보수적인 가족관, 사회관, 국가관을 강조해 왔다. 그는 현대 미국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두고 "미국이 문명적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헝가리의 독재자 오르반 빅토르의 정책을 찬양하곤 했다. 트럼프 주위의 미국 우익들이 오르반의 헝가리를 이념적 지향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헝가리 모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밴스는 오르반의 어떤 생각에 끌렸을까? 밴스는 결혼한 커플들에게는 융자를 지원해 주고, 그들 중에서 자녀를 셋 이상 낳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부채를 탕감해 주는 헝가리의 정책을 두고 "미국에서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작년에 발행한 '보수의 인구 집착'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밴스는 아이는 낳지 않고 고양이만 키우는 여자들(childless cat ladies)"이 미국을 이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람들은 남들의 인생도 자기처럼 비참해지기를 원한다"라고 말해서 큰 비난을 받았다. 그가 보기에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고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 나이 든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손주 키우기를 돕기 위함"일 뿐이다. 여성 비하를 넘어, 지적으로 천박한 수준의 말이지만, 그런 생각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면? 밴스는 전통주의자가 되고, 신앙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젊은 남성들의 지지가 아쉬울 그가 포르노를 금지하자는 등의 말을 하는 것도, 투표할 때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표보다 가중치를 두자는 등의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자기를 가족주의와 성경에 기반한 전통주의자로 내세우려는 시도다.
물론 이런 입장을 취하는 건 밴스만이 아니다. 많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여성의 선택권을 축소하고, 성정체성과 관련한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학교와 정부에서 종교 기관(=기독교)의 영향력을 키우려 애쓰고 있다. 슬레이트 기사에 따르면 이런 미국 보수 세력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가톨릭 내의 지적 흐름이 통합주의(Integralism)다. 사회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공공 정책과 시민사회, 그리고 법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밴스의 입장과 가깝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톨릭교회가 밴스의 생각을 지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은 밴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족과 젠더 문제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지켜온 것은 맞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는 대신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말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는 사제들이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의 아이러니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슬레이트 기사는 밴스 같은 사람들과 교황의 차이는 자기가 믿는 바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고 지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가 교회의 공식 입장을 바꿔서가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대신 그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아래 영상이 그런 교황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예다. 한 어린 소년이 교황에게 질문을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머뭇거리자, 교황은 아이에게 "(공개적으로 못 하겠으면) 내게 귓속말로 해도 좋다"고 달랜다. 아이의 질문은 자기 아버지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무신론자라며, 그럼 천국에 못 가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교황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주 좋은 분이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이 그렇게 좋은 사람을 (천국에서) 몰아낼 것 같으냐고 청중에게 묻는다. "하나님이 자녀를 버리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아니라고 대답하자, 아이를 보며 "이게 답이란다"하고 "하나님은 네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거다"라고 달랜다.
교황의 이런 말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모두 천국에 간다고 교리적인 선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는 아이 앞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따지는 것과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지옥에 갔을까 봐 걱정하는 아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공감해 주는 것 중 어느 쪽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걸까?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쉽게 답할 수 있다. 이게 밴스 같은 사람이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천한 신앙의 차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몇 년 동안 트럼프와 밴스 같은 정치인들의 이민자 공격을 단호한 어조로 비판해 왔다. 트럼프 1기 때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것을 두고 "기독교적이지 않은(not Christian)" 행동이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트럼프는 교황을 두고 "아주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싫은 감정을 드러냈다. 생애 마지막 설교가 된 지난 부활절 설교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힘없고 소외된 이민자들에 대한 경멸을 부추기는" 이들을 경계했다. 교황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부활절에 며칠 앞서 바티칸에 도착한 밴스가 교황청과 의견을 교환한 이슈에는 이민자와 재소자 문제도 있었고, 현 미국 행정부와 교황청 간에 분명한 견해 차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부활절 당일 밴스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2월에 방송에 등장한 교황은 트럼프가 이민자들을 체포해 국외 추방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이라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밴스 측에서 한 발표에는 이런 얘기는 빠져 있었다.) 밴스가 교황에게 자기가 아직 "아기 신자"라며 "아직 신앙과 관련해 모르는 게 많다"고 한 것도 그를 만난 자리에서 교황이 잘못을 지적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게 언론의 해석이다.

뉴요커에서 교황청과 관련된 기사를 사실상 혼자 쓰는 폴 일라이(Paul Elie)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독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시대에, 절대권력처럼 여겨지던 교황직에 올라 독재의 안티테제(antithesis)가 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교황청이 2014년에 두 명의 교황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는 작업을 서두르는 바람에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성인으로 만드는 작업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좋은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권위자나 숭배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느낀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간성이야말로 그로 대표되는 믿음에 대한 가장 훌륭한 논거(argument)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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