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는 새해 초부터 충격적인 발언을 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라는 말과 파나마에 파나마 운하를 미국에 넘기라는 말이었다. 물론 엄연한 주권국이 그런 황당한 요구에 순순히 응할 리 없다. 트럼프는 기자 회견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손에 넣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 압력은 물론, 군사력 동원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도대체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걸까? 그는—지금은 사퇴 의사를 밝힌—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만나서 "미국이 캐나다 경제에 보조금을 주다시피 한다"(사실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건 어떠냐?"는 무례한 농담을 해서 캐나다인들을 화나게 했다. 캐나다가 미국의 일부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항상 그러듯, 농담과 진담을 섞어서 쏟아내어 듣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기 때문에 (그는 그게 좋은 협상법이라고 믿는다) 그의 말에서 진심으로 하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캐나다를 미국 영토로 만들겠다는 건 농담이지만, 그린란드는 다르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이미 2019년에도 미국이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주장을 해서 덴마크 총리를 분노하게 했는데, 두 번째 취임을 앞두고 또다시 그 얘기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이 영상에서도 잘 설명하지만, 미국은 19세기부터 그린란드를 손에 넣기 위한 시도를 종종 해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트럼프의 황당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미국이 그동안 해왔던 '그린란드 손에 넣기'를 트럼프식 방법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한 관점일 거다. 그렇다면 미국은 과거에 왜 그린란드를 원했고, 왜 지금 그 관심이 되살아 난 걸까?

그 이유는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The Washington Post)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접한 나라이고, 그걸 바탕으로 아시아와 유럽에 상업적, 군사적 영향력을 펼쳐왔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북극해라는 새로운 바다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꽁꽁 얼어있던 이 지역에서 얼음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상선들이 다니기 시작했고, 슬프지만, 미국을 비롯한 인류 사회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보다 그 결과로 새로 열리게 될 바닷길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위의 지도를 보면 미국은 이미 북극해를 접한 나라에 포함된다. 캐나다 서쪽에 붙은 알래스카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원을 그리며 사실상 북극해를 둘러싼 러시아에 비하면 미국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작은 게 사실이다. 물론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유럽의 국가들과 안보 조약을 맺은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안보의 문제라면 별 어려움이 없이 그린란드에 미군 기지를 만들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미 미군 기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NATO와 끊임없이 다퉜고, 트럼프는 유럽국들이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NATO 회원국들은 방위비를 크게 인상했지만, 그렇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이었다.) 자기에게 분명한 반감을 보이는 유럽국의 지도자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푸틴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트럼프는 NATO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NATO 국가인 덴마크에 의존하는 것보다 아예 그린란드를 자국 영토로 만들면 좀 더 확실하게 북극해의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린란드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반도체, 전기차 제조에 사용되는 각종 희토류가 있다. 이런 자원을 탐내는 그린란드에 트럼프 1기 때 중국이 공항을 지어주겠다며 접근했다가 깜짝 놀란 미국이 덴마크에 압력을 넣어 저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덴마크의 정부는 이런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게 될까?

덴마크 정부 건물로 사용되는 크리스티안보르 궁 (이미지 출처: Hamlet Tours)

결론부터 말하면,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를 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팔지 '않겠다'기 보다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그린란드가 덴마크 왕국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이지만, 자치권을 가진 자치령이기 때문이다. 비록 덴마크 정부가 그린란드의 외교와 군사 문제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기는 해도 자치령인 그린란드가 입법, 사법, 경찰권을 가지고 있는데, 주민의 의지에 반해 다른 나라에 팔겠다고 할 수는 없다.

덴마크 왕국은 우리가 잘 아는 (수도 코펜하겐이 있는) 덴마크 본토와 페로 제도, 그리고 그린란드, 이렇게 크게 세 개의 영토로 나뉜다. 덴마크 왕실 문장(coat of arms)에 등장하는 양이 페로 제도, 북극곰이 그린란드를 상징한다. 현재 국왕인 프레데릭 10세는 작년 1월에 즉위하면서 어머니(마르그레테 2세 여왕) 시대에 사용하던 왕실 문장을 조금 다르게 바꿨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과거 한쪽에 작게 등장했던 이 양과 곰이 확대, 강조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변화가 2019년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팔라고 했던 요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는 덴마크 영토의 중요한 일부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덴마크 왕실 문장의 변화. 오른쪽 새 문장에서 곰(1)이 그린란드, 양(2)이 페로 제도를 상징한다. (이미지 출처: The Telegraph)

만약 트럼프의 바람대로 미국이 그린란드를 손에 넣으려면 덴마크 정부와 그린란드 자치정부 양쪽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그린란드를 갖고 싶어 하는 트럼프에게 유리한 요소가 한 가지 있다. 그린란드 사람들(인구는 57,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사이에 덴마크에서 독립하자는 목소리가 근래 들어 커졌다는 사실이다. 만약 덴마크 정부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면 트럼프는 그린란드 사람들과 직접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그린란드 주민 중에는—덴마크 정부의 생각과 달리—트럼프의 관심을 싫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덴마크 정부가 자치령이라는 이유로 그린란드의 경제를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다. 엄연한 덴마크 왕국의 일부인데도 정부의 관심 밖에 밀려난 땅이라는 느낌을 받아왔는데, 2019년에 트럼프가 군침을 삼키자, 덴마크 정부는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그린란드에 쏠렸기 때문이다.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

하지만 설령 그린란드와 덴마크 정부의 동의를 얻어낸다 해도, 미국의 영토를 넓히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2/3가 동의해서 이를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영토를 넓힌 사례가 있다. 가령 앞서 언급한 알래스카를 매입한 일이 그렇다.  

참고로, 그린란드가 갑자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를 설명한 아래의 영상을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조니 해리스(Johnny Harris)라는 인기 유튜버가 1년 전에 공개한 영상이다. 조니 해리스의 채널은 내용에 깊이가 부족하거나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가끔 비판을 받기 때문에 내용을 특별히 추천하지는 않지만, 영상과 그래픽이 뛰어나고, 특히 아래처럼 직접 현지에 가서 촬영한 영상은 지리적 이해를 넓히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된다.

미국이 재정난에 빠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것은 1867년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 대통령 때다.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의 종식과 함께 1865년에 암살당한 링컨의 후임이지만, 링컨의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H. Seward, 링컨과 함께 암살당할 뻔했다가 목숨을 건진 인물이기도 하다)를 그대로 위임했다.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한 인물이 바로 수어드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팔기로 한 데는 돈 문제를 비롯해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러시아가 사냥하던 해달(sea otters, 🦦)이 알래스카에서 멸종되다시피 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가장 중요한 이유는 캐나다에 있는 영국군이 알래스카를 침입, 점령하려 할 경우 이를 방어할 힘이 러시아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키지 못해 영국에게 뺏기느니,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미국에 팔자는 결정이었다.

서두에 소개한 영상에서도 설명하지만, 당시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에도 몹시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미국은 영국령 캐나다를 손에 넣거나, 적어도 영국이 또 한 번의 침략을 꿈꾸지 못하도록 (영국은 미국 독립 후에도 미국을 침략했다. 그게 1812년 전쟁이다.)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윌리엄 수어드 장관은 캐나다 동쪽의 그린란드를 미국이 손에 넣으면 캐나다를 동서에서 포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수어드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실패했지만, 미국은 건국 이래로 그때까지 영토 확장을 멈춘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황에서 수어드가 알래스카를 매입하고 그린란드 매입 시도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인들에게 영토를 확장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 비슷한 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미국인들은 'Manifest Destiny (명백한 운명)'이라 부른다. 미국이 북아메리카 대륙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개발하고, 사람들을 도우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이 사상은 1800년대 중반에 널리 퍼졌다.

1872년 존 개스트(John Gast)가 그린 '명백한 운명' (이미지 출처: Wikipedia)

그런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서부로 뻗어 나가며 원주민을 몰아낸 미국인들은 프랑스에서 땅을 사기도 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서부를 빼앗기도 하면서 1854년에 우리가 아는 미국 본토 지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미국이 (아래의 광고 속 그림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 모습을 유지한 것은 3년밖에 되지 않는다.그 후로 미국의 영토는 확장을 통해 꾸준히 변화했다.

하지만 미국이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않는 모종의 이유로 미국은 자국 영토의 전체를 지도에서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이 숨겨둔 영토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찾아보면 다 나와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방문하려면 비자가 필요해도 미국이 자국의 지도를 그릴 때 빼놓는 영토가 있다는 거다. 왜 미국은 지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기 영토를 감추려는 걸까?

바로 미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같은 유럽 나라들은 해외로 진출해서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절, 국내 정치적으로 왕정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처음부터 공화국으로 시작한 나라다. 공화정을 가진 나라가 식민지를 갖는다는 게 창피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양심의 가책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미국의 지독하고 뿌리 깊은 인종주의 때문이었다.  

던킨 도너츠의 구호, America Runs on Dunkin' 속의 미국 지도 (이미지 출처: Amazon)

'제국을 숨기는 방법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