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브룩스의 반론 ④
• 댓글 1개 보기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부여한다. 각 개인은 자신만의 가치와 선택을 스스로 정의(결정)해야 한다. '플랜드페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임신중지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의 판결문에서 앤서니 대법관이 했던 말에 따르면, 각 개인은 "존재, 의미, 우주, 그리고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자기만의 개념"을 직접 찾아야 하게 되었다.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그 결과 우리 중 대부분은 도덕적 진공상태에 머무르게 되고, 삶의 의미가 불분명한 세상에서 자기 외부에 존재하는 그 어떤 도덕적 지평과도 분리된 채 살아가게 된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들을 형성해 온 모든 힘(forces), 모든 세월과 단절시킨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홀로 남겨둔다. 개인이 가진 주권을 강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약화된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심지어 진보주의자들로 하여금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현대 영국의 보수주의를 대표했던 영국 총리)가 했던 말–"사회라는 건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을 실천하게 유도한다. 약 200년 전,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아래와 같이 경고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조상을 잊게 할 뿐 아니라, 자기 후손들에 대한 견해조차 흐릿하게 만들고, 동시대 사람들로부터도 고립하게 만든다. 각 개인은 영원히 혼자서 살게 던져지며, 마음속 고독 안에 갇히게 될 위험도 있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이 1897년 그의 '자살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는 자살로 이어지는 완벽한 레시피다. 우리는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결정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사람들을 고립되고 표류하게 하면서 자살하기 쉬운 상태로 몰아넣고, 그 다음에는 애초에 (자율성이 기반한) 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도움을 받는 해결책(=의사조력사)을 제공한다.
반대로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당신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행렬에 참여하는 자격을 준다. 이를 통해 당신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주해 온 당신의 조상, 이런 저런 배우자를 선택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자녀를 양육한 조상들과 연결된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런 긴 역사의 한 표현이다.
이 긴 행렬은 투쟁과 고난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결과로 우리의 삶은 더욱 즐길 만한 것이 되었다. 인류는 노예제도가 삶의 당연한 방식처럼 여겨지고, 사람의 머리를 잘라 죽이거나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오락거리이고, 강간과 약탈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랬던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도도 많았지만 우리는 점차 잔인함을 싫어하고, 우리와 피부색이 달라도 사람은 공정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상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보다. 이 행렬 덕분에 각 세대는 맨 땅에 서서 삶의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류의 축적된 지혜가 담긴 일련의 가치와 제도, 문화적 전통을 물려받았다. 선물에 기반한 세상에서 삶의 목적은 이런 긴 행렬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런 진보(행진)가 적절한 경로를 따라 계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창의력과 재능, 우리의 관심을 선물로 보탤 수 있지만, 사람들이 전하는 선물은 그보다 더 깊은 원천에서 비롯된다.
몇 해 전 역사학자 윌프레드 매클레이(Wilfred McClay)는 '헤지호그 리뷰'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수학자였던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했다. 하루는 그가 어머니에게 H. L. 멘켄(Menken, 미국의 평론가)이 말년에 뇌졸중을 겪은 후 읽거나 쓸 수 없게 되었고, 말도 간신히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만약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고 했다. 특정한 삶의 질이 사라진다면 사는 의미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매클레이의 어머니는 심각한 뇌졸중을 겪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매클레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서럽게 울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매클레이가 목격한 것은 달랐다. "그 반대에 가까웠어요. 어머니의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가 어머니를 제가 본 적이 없을 만큼 더욱 깊고, 따뜻하고, 다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더 많이 감사하는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매클레이는 어머니를 자기 집으로 모셔 와 함께 살게 되었다. "물론 항상 쉬운 건 아니었죠.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일일이 말하지는 않겠지만,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우리 집에 머무는 기간 동안의 기억은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할 기억을 만들어 주었어요. 무엇보다 어머니의 굽힐 줄 모르는 정신을 매일 매일 목격하면서 우리는 감탄했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매클레이의 가족은 어머니와 몸짓과 억양, 그리고 어머니가 아직은 말할 수 있는 몇 단어를 사용해 의사소통하는 법을 고안했다. 어머니는 손뼉과 노래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어머니가 제 두 아이에게 훌륭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제 아이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했고, 아이들도 그렇게 할머니를 사랑했어요." 아이들은 할머니가 가진 장애 너머의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자신들 때문에 할머니가 살아있을 가치를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손주들이 곁에 있는 것으로 매클레이의 어머니는 기쁨을 느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매클레이는 조용해진 집안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는 노화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노화는 삶을 끝까지 살아야 하는 의미입니다."
때로는 노약자와 삶을 통해 상처를 입고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진 사람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때로는 그렇게 선택의 폭이 좁아진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삶이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옵션들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는 헌신의 힘으로 정의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열어놓을 때 사회가 가장 잘 작동한다고 믿지만,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때 사회가 가장 잘 작동한다고 믿는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삶을 끝내게 하는 제도를 고착화하고 있는 반면,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다양한 완화 치료를 제공하고,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돕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의사들을 돕는 이런 지원 구조는 의사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규정함으로써 그들의 선택 폭을 제한한다. 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치료를 하는 사람이다. 환자들이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의사는 생명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의사들 역시 환자를 돌보면서 지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자신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구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들이지, 생명을 끝내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아내 해리엇 테일러는 개인의 자율성을 믿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정의로운 사회는 자유를 향한 비전뿐 아니라 선함과 옳고 그름에 대한 비전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도덕적 캐릭터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치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의 의지(the will of the people)가 아니라, 국민의 선(the good of the people)이다." 밀은 우리가 삶에서 가진 의무–가족과 친구, 국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의무–가 개인이 가진 행동의 자유에 적절한 제동을 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의무가 우리로 하여금 인간성을 충족하도록 이끈다고 믿었다.
인류의 선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인류의 선은 우리가 계승하고, 개혁하고, 개선하고, 다시 물려주는 친밀한 관계와 제도의 연속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이 행렬 속 동료가 절망에 빠져 고통을 받으며 자신의 삶을 끝내려고 생각할 때 독약이 든 주사기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이런 말을 건넨다:
세상은 당신에게 부탁할 것이 많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줄 선물을 갖고 있습니다. 그냥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선물입니다. 당신이 볼 수 있든 없든, 당신의 삶은 물결을 일으키며 넓게 퍼져나갑니다. 가지 마세요. 당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압니다. 우리도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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