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브룩스의 반론 ③
• 댓글 3개 보기먼저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러나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가 전복하려는 네 가지 진리를 이야기해 보자.
오늘 내용에는 읽는 분에 따라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실 만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당시 큰 뉴스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잔인한 사건과 관련한 글을 피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래 이어지는 첫 부분("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만든 게 아니다")을 건너뛰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 글은 이성적이고 차분한 분석을 통해 자살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읽으시는 분께서 근래 들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계실 수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1577-0199로 전화하시거나, 그 밖에도 이 링크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만든 게 아니다
당신의 생명은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 당신에게 주어진 것이지, 당신이 노력을 결과로 얻어낸 게 아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나오면서 삶을 선물로 받았다. 당신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당신이 속한 커뮤니티는 당신에게 수천 종의 새, 다양한 치즈의 맛, 각 사람의 얼굴이 가진 기적과 같은 아름다움 처럼 삶의 풍성함을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가 우리의 친구,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만든다. 생명(삶)은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라서 그렇다.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감사는 인간의 정신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인류 문명에 너무나 핵심적인 요소라서, 이를 완전히 부정하는 충격적인 사례에 직면하기 전에는 특별히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런 사례가 2000년대 초에 발생했다. 아르민 마이베스(Armin Meiwes)라는 이름의 독일 남성은 자신이 사람을 죽인 후에 그 시신을 먹고 싶다며, 그렇게 죽는 데 자원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광고를 온라인에 게재했다. 한 남성이 이런 제안에 동의하고 찾아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동의했고, 네 명이 찾아왔으나 최종적으로 살해당하는 데 동의한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옮긴이) 바이베스는 그 남자의 성기를 잘라내어서 요리한 후 둘이 함께 먹으려 했으나 너무 질겨서 포기했고, 결국 피를 흘리다가 사망한 이 남자의 시신을 해체, 도축해서 먹기 시작했다. 경찰이 찾아와 체포했을 때는 이미 18kg 이상을 먹은 후였다.
이 모든 일은 피해자의 완전한 동의 하에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독일 법원은 마이베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을 뿐 아니라, 그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인류 문명의 근간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즉, 누구도 생명 그 자체를 모욕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혹은 다른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해서 잘라 소비할 수 없다. 생명은 신성한 것이다. 인간성은 (개인의) 선택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당신의 존엄성은 당신이 창조한 게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사는 모든 날은 중요하다. 우리가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존엄은 무한하다. 우리가 가진 존엄성은 우리의 노력으로 더 커지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존엄하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졌다고 더 존엄하지도 않다. 존엄성이 우리에게 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완전히 평등하다. 모든 사람의 생명이 동등한 존엄성을 가졌다는 사실이야말로 민권운동의 굳건한 기반이었다.
그런데 의사조력사(MAID)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각 지원자의 삶의 질을 기준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 어떤 종류의 삶은 다른 삶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소멸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등장했다. 이건 어떤 사람의 삶(생명)은 다른 사람의 삶보다 더 크거나 작은 가치를 가진다는 얘기다. 허약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사람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사람과 동등한 방식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런 변화가 생기면 인간의 존엄성은 더 이상 무한한 선물로 여겨지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없앨 수도 있는 하나의 소유물이 된다. 인간의 삶은 누구나 평등하고 무한한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훼손되면 금기가 깨지고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어느 순간 어떤 삶이 살 가치가 있느냐는 논쟁이 나타난다. 퀘벡 의학교육협회에 소속된 두 명의 의사가 심각한 기형을 갖고 있고 생존의 가능성이 제한된 아기들이 조력사의 자격이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프거나 약한 사람들이 살기를 원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어느 순간 암묵적으로 장려된다. 한때 인간이 타고 난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존엄성은 이제 그 개인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그가 행복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그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기준으로 측정된다.
당신은 당신의 정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현대의 자유주의는 현대 자연과학이 가진 독특한 인지 방법과 큰 관련이 있다"라고 말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비용과 이익을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찬양하는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는 이런 개념에 크게 의존해서 인간의 본성을 본다.
그러나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완전히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고할 때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전해 준 선물이다. 우리 각 개인은 정보가 흐르고 굴절되는 네트워크 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노드(node)다. 우리가 가진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는 태곳적 부터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가 가진 종교와 문명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것이며, 우리의 교육과 가정 배경은 수십 년 전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부분적으로는 의식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인–깊은 강물에 섞여 흐르면서 한 개인으로서는 종종 이해하기 힘든 방법으로 우리가 하는 가정(假定)을 형성하고,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상호의존적인지 이해한다. 한 아이가 자살하면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비슷한 이유로 한 나라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해서 이것이 사회에서 용납되는 옵션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2022년 정신건강윤리저널(Journal of Ethics in Mental Health)에 등장한 연구에 따르면 조력사가 합법화된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여기에는 의사조력자살뿐 아니라 의사의 도움이 수반되지 않는 일반적인 자살도 포함된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을 돕는 의사는 자신이 전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자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개인 이성의 한계를 이해하고, 인간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여러가지 다른 관점들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각 개인은 어느 정도 틀릴 때가 많고, 때로는 완전히 틀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라도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고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지적 자율성은 위험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과장되었다.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생각을 똑바로 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아플 때,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불안할 때, 우울증에 빠졌을 때가 그렇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였던 나의 친구 마이클 거슨(Michael Gerson)은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우울증은 우리가 현실을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가 고장 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우울증에 빠지자 틀린 말을 하는 목소리가 그의 안에 자리를 잡고 그가 자기 주변에서 거의 본 적이 없는 걸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는 네 친구들에게 짐이야, 네게는 미래가 없어, 네가 죽어도 아무도 너를 그리워하지 않을 거야' 같은 말이 그렇다. 이건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정신이 하는 말이 아니다. 정신이 그것이 깃들어 있는 존재(인간)를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거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에서는 인간의 오류 가능성이 단순히 어리석은 게 아니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선물에 기반한 세상에 속한 사회들은 이런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법을 통해 가드레일을 만든다. 즉 이런 사회는 자살은 옵션이 아니며,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자유를 끝낼 자유를 갖고 있지 않고,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할 권리가 없다. 답은 무조건 '노(No)'이니 그런 질문 자체를 생각에서 지우라. 개인의 자율성은 우리의 궁극적 가치가 아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가치는 삶이며, 소속(belonging)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당신이 가진 가장 깊은 연대는 당신이 만든 게 아니다
자유주의적인 기관들은 개인이 선택 여부와 무관하게 주어진 것들에 기초할 때 가장 건강하다. 당신은 당신의 가족을 선택하지 않았고, 당신이 속한 민족과 문화, 당신이 태어난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다. 당신이 나이를 먹으면서 이렇게 주어진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많은 사람이 자기가 선택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브룩스는 이 대목에서 '결혼'이라는 말을 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보수주의자여도 자신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옮긴이) 자신이 태어난 가족을 대신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선택하지 않은 관계가 당신을 형성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며, 당신은 그 관계가 삶을 통해 부여하는 의무에 의해 정의된다.
자율성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를 일련의 사회 계약(contracts), 즉 사람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한 합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가 어린 딸을 사랑하는 것은 계약이 아니다. 선물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사회가 약속(covenants)에 기반했다고 본다. 유대교 랍비인 조너선 색스(Jonathan Sacks)는 이 둘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계약은 거래이고, 약속은 관계다. 조금 달리 표현하면, 계약이 이해(interests)와 관련이 있다면 약속은 정체성(identity)과 관련이 있다. 당신과 내가 만나 '우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선물 기반의 자유주의 위에 세워진 사회는 약속이라는 기초를 강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면 의사조력사(MAID)는 그런 약속을 적극적으로 뒤집는다. (첫 글에 등장한 사례에서 보듯) 어머니가 의사에게 아들의 삶을 끝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게 만들었고, 한 사람이 죽게 되는 과정에서 그의 형과 다른 가족을 결정 과정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단지 자율권을 가진 개인으로만 보는 국가는 가족의 유대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
가족은 전통적으로 상호 부담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짐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형편이 어려울 때는 서로에게 짐이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우리는 또다시 짐이 된다. 서구 문화에서는 이런 유대가 약화하거나 깨졌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선택한 가정에서 또 다른 의무의 그물망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재탄생한 관계에서도 유대를 든든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에게 주어지는) 부담이다.
나는 최근 캐나다에 사는 친구 하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는 자신을 포함한 네 명의 형제자매가 성인이 된 후로는 사이가 별로 가깝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중병에 걸렸고, 자식들이 아버지를 간호하는 부담을 나눠 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렇게 부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들은 다시 가까워졌고,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이들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그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많은 선물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는 게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데이빗 브룩스의 반론 ④'에서 마지막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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