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회에 걸쳐 번역하려는 이 글은 최근 애틀랜틱에 등장한 "자유주의의 한계(The Outer Limits of Liberalism)"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다가 금방 빠져들어 다 읽고 나서야 누가 쓴 글인지 궁금해졌다. 다시 글 맨 앞으로 가서 확인하니 데이빗 브룩스(David Brooks)의 글이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인 브룩스는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존중받는 몇 안 되는 보수 사상가다. 경제와 정치는 물론이고 심지어 뇌과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브룩스는 자신의 보수적인 가치관을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보수적인 시각에 동의하지는 않아도 보수주의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사람만큼 훌륭한 안내자도 드물다.

이 글에서는 그런 브룩스가 요즘 서구의 선진국에서 합법화하고 있는 안락사 문제를 이야기한다.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 (medically assisted suicide)'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딜레마다. 전통적, 종교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자살을 합법화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개인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고 국가/정부의 개입을 거부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브룩스는 안락사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이를–현재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것처럼–완전한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흥미로운 건 그의 논리와 설득력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유명한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1858년 10월 어느 날 아내인 해리엇(Harriet Taylor Mill)과 함께 프랑스의 아비뇽 근처를 여행하고 있었다. 해리엇은 여행 중에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상태가 점점 심각해졌다. 그러다가 고통이 점점 심해져서 잠은 물론이고 눕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밀은 황급히 니스에 있는 의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와 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면서 해리엇의 상태는 크게 나빠졌고, 밀은 불길한 예감에 수양딸에게 편지를 썼다. (1세대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불리는 해리엇 테일러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있었다. 남편과 결혼 생활 중에 존 스튜어트 밀을 만나게 되는 사연은 이 글과는 별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다–옮긴이) 그리고 며칠 후인 11월 3일, 해리엇은 세상을 떠난다. 밀은 하루를 온전히 아내의 시신과 한 방에서 보냈다. 그는 해리엇과의 결혼 생활이 끝났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했다. "7년 반 동안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7년 반 밖에 함께 있지 못하다니!"

밀은 11월이 다 가기 전에 자신이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이 원고는 아내 해리엇에 대한 화려한 헌사(獻辭)로 시작한다. 그는 나중에 쓴 글에서 아내는 이 책의 뮤즈(muse)가 아니라 공동 저자였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이 "내 이름이 붙은 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은 아내와 나의 직접적인 공동 저작"이라면서, "이 책에 적힌 문장 중에 아내와 내가 함께 여러 차례 뜯어고치지 않은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에 사용된 "사고방식 전체"가 "결단코 해리엇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밀의 대표작 '자유론(自由論, On Liberty, 1859)'이다.

밀의 '자유론(On Liberty)' 앞에 등장하는 헌사 (이미지 출처: Twitter)

'자유론'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자유세계의 질서를 기초한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밀 부부는 이 책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설계할 권리, 결혼할 사람과 살 곳을 선택할 권리,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국가는 시민 개인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가진 선택의 자유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런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는 다양한 종류의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거라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다. 당신은 내 삶의 방식에 동의할 필요가 없고, 나 역시 당신의 방식에 동의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가 삶을 최대한 풍성하게 살도록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autonomy)과 선택의 자유는 우리가 번영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은 밀 부부가 지지한 자유주의(liberalism)가 만들어 냈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보게 되는 다양한 의견의 충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자유주의다. 우리가 러시아의 독재와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 정권과 맞서는 것이 자유주의 때문이고, 발언권을 제한하고, 금서(禁書) 목록을 만들고, 선거 결과를 무시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도 이 자유주의를 지키려는 것이다.

밀은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 후, 해리엇이 묻힌 묘지가 내려다보이는 집을 사서 해리엇이 숨을 거둔 방에 있던 가구들로 채웠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년 그곳을 찾았다. 창문 밖으로 해리엇이 묻힌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밀의 모습을 상상하면 쓸쓸하지만, 그 부부는 인류 문명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지적 유산을 남겼다.

해리엇 테일러 밀과 존 스튜어트 밀 (이미지 출처: The Marginalian)

하지만 좋은 사상도 극단적으로 추구할 경우 좋지 않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자들이 찬양하는 선택의 자유도 융통성 없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변하면 부자들이 경제력을 독점하고 취약한 계층은 버려지는 결과를 낳는다. 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자기표현도 사람들이 자기를 숭배하고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자아도취적인 문화로 변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이런 형태로 변할 경우 사람들은 자유주의에 반대하게 되고, 자유주의는 정신적으로 공허하며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나아가 자유주의가 사회적 붕괴를 초래하고 삶의 신성함을 훼손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반자유주의적인(anti-liberal)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현재 자유주의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점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려 한다. 오늘날 자유주의의 극단적인 형태가 자유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인도적인–애초에 밀 부부가 이야기했던 버전에 더 가까운–자유주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글은 안락사의 형태인 의사조력자살(medically assisted suicide)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 자체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분석이고, 이런 형태의 죽음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으시는 분께서 근래 들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계신다면, 그래서 자살을 생각해 보셨다면 읽지 않으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1577-0199로 전화하시거나, 그 밖에도 이 링크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2016년, 캐나다 정부는 의사조력사(Medical Assistance in Dying)를 합법화했다. 줄여서 MAID라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좋은 의도에서 밀 부부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캐나다의 연방대법원은 자살을 돕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 자신의 죽음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고,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끝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캐나다가 MAID 프로그램을 처음 설계했을 때는 누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지 잘 정의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기준에 부합하는 환자들에게만 약물의 치사량을 주사하거나 처방하게 된다. 그 기준은 이렇다: 환자가 심각한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고, 병의 상태가 "많이 진행되어(advanced state)"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참을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고, 자연적인 죽음이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reasonably foreseeable)" 시점에 있는 경우.

그렇게 허용할 경우 오래지 않아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단지 가난하거나 현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죽음을 선택하게 될 거라는 반대 의견이 나오자, 당국은 "이 법이 심리적으로 취약하지만 당장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안심시켰고,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MAID 프로그램은 다르게 진행되었다. 오래지 않아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이 확대되었다. 2021년에는 자연적인 죽음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시점에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되었다. 그후로 국가가 원래 기준에 거의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사들이 꾸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앨런 니콜스(왼쪽)와 그의 형 개리

예를 들어 AP 통신이 보도한 앨런 니콜스의 이야기가 그렇다. 니콜스는 어릴 때 청력을 상실했고, 그 후 뇌졸중을 겪었지만 대체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그랬던 그가 61세가 된 2019년, 자살 충동을 느끼자 입원하게 된다. (서구 국가에서는 자살 충동을 느낄 경우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옮긴이) 하지만 병원에서 있던 앨런은 자기 형 개리에게 연락해 자신을 병원에서 가능한 한 빨리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병원을 나온 지 한 달 만에 앨런은 의사조력사 프로그램을 요청했다. 그가 밝힌 병은 청력 손실 하나뿐이었다. 한 임상간호사(nurse practitioner, 의사가 하는 통상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간호사–옮긴이)는 앨런의 시력 상실, 쇠약, 발작 병력, 그리고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failure to thrive)"라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병원 측에서는 AP 기자에게 앨런의 요구는 적절했기 때문에 생을 끝내게 되었다고 했지만, 앨런의 형은 병원이 동생을 죽게 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더 레이킨은 뉴애틀란티스에 쓴 글에서 로시나 카미스라는 환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는 섬유근육통과 만성백혈병을 앓고 있었고, 그 외에도 정신적, 신체적인 질환들을 앓고 있었다. 그는 이런 증상들을 MAID 평가사에게 보여 주었고, 죽음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카미스는 자신의 변호인으로 임명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시기 바랍니다....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이지, 신체적인 고통이 아닙니다. 제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면 신체적인 질병으로 인한 고통 정도는 견뎌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는 2021년 9월 26일, 41세의 나이로 치사량의 약물 주사를 맞았다.

프리프레스의 루파 수브라마냐 기자는 키아노 바패이언이라는 23살의 남자 이야기를 기사로 소개했다. 바패이언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실직자로, 당뇨를 앓고 있고 한 눈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MAID는 그의 죽음을 승인했고, 실행일은 2022년 9월 22일로 정해졌다. 이 절차를 수행할 의사는 바페이언에게 이메일로 분명하고 건조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도착하십시오. 저는 8시 45분에 간호사를 부를 것이고, 절차는 오전 9시경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절차가 시작되면 마칠 때까지 수 분의 시간이 걸립니다." 바페이언이 원할 경우 반려견과 함께 올 수도 있었다, 끝난 후에 개를 돌볼 사람이 온다는 조건으로.

하지만 병원 약속 약 2주를 앞두고 바패이언의 어머니 마가렛 마실라(46세)가 자기 아들의 조력사를 수행할 의사에게 전화해서 통화 내용을 녹음해 프리프레스에게 전달했다. 마실라는 자신의 이름이 조앤이라 속이고는 그 의사에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죽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의사는 기초적인 MAID 기준을 전달하면서 18세가 넘어야 하고, 보험증이 있어야 하며, "개선하거나 치료할 방법이 없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평가도 줌이나 왓츠앱을 통해서 진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실라는 이 모든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자 의사는 결국 마실라에게 메시지를 보내 아들 키아노 바패이언의 조력사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The Globe and Mail)

나는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죽임이 임박한 사람들이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과 가족이 이미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MAID 프로그램이 애초에 설계된 경계를 너무나 빨리 넘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MAID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나는 죽고 싶다"라고 말할 경우 캐나다 사회는 이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합의된 도덕적 원칙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만약 개인의 자율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서 "내 몸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라고 선언한다면? 죽음이 임박했든 아니든, 병들어 아프든 아니든 상관없게 된다. 개인의 자율성이 최우선이다.  

단 몇 년만에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는 캐나다인의 숫자는 엄청나게 늘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약물주사를 선택한다.) 2021년에 조력사를 선택한 사람은 1만 명을 넘었다. 캐나다에서 30명이 세상을 떠나면 그중 한 명은 조력사로 죽은 것이다. 물론 이렇게 죽은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고령이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던 사람들이지만, 그렇지 않고도 조력자살을 원하는 사람들도 이 프로그램에 끼어든다. 2021년에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자격 미달 판정을 받은 사람은 4%에 불과하다.


'데이빗 브룩스의 반론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