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전쟁 ②
• 댓글 남기기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부터 값싼 레저용 드론을 사용한 것과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그보다 훨씬 비싼 군용 드론을 동원했다. 러시아는 전쟁이 이처럼 길어질 줄 몰랐고, 드론까지 동원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군사 강대국인 만큼 수입하거나 자체 개발한 군용 드론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론의 새로운 사용법을 전투 현장에서 개발하는 동안 러시아는 이미 갖춰진 전투 교리에 따라 드론을 체계적으로 운용했다. 러시아의 드론 사용 통방법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군은 제일 먼저 정찰용 오를란(Orlan)-10 드론을 2~3대 출격시킨다. 한 대는 1,000~1,500미터 상공에서 적의 위치를 탐지하고, 한 대는 우크라이나군의 신호를 추적하고, 다른 한 대는 데이터를 후방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전쟁 초기(2022년 2~3월)에 러시아는 이렇게 정찰용으로만 드론을 사용했다.
하지만 2022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란셋(Lancet) 드론을 선보이며 직접 공격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를란 드론을 먼저 보내어 얻어낸 표적의 위치 정보를 뒤따라 날아오는 란셋 드론에 제공한다. 란셋에도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지만, 이는 실시간 영상을 후방에 보내는 용도가 아니라, 오를란에게서 받은 표적의 위치를 확인하는 용도다.
란셋은 자폭 드론으로, 일종의 크루즈 미사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일단 발사되면 속도를 늦출 수 없는 미사일과 달리, 자폭 드론은 필요할 경우 공중을 선회하면서 대기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의 상황 변화에 훨씬 더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그렇게 우크라이나군의 장비를 타격한 후에는 세 번째 단계로 이란에서 수입한 샤헤드 드론을 보낸다. 샤헤드 드론도 란셋처럼 자폭 드론이지만, 정밀 타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가격이 약 2,600만 원으로 러시아가 란셋 드론(약 4,600만 원)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샤헤드 드론을 사용할 때는 많게는 200대까지 대량으로 한꺼번에 보낸다.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감당할 수 없도록 포화(saturation)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드는 공격이지만, 러시아의 크루즈 미사일의 가격이 단 한 발에 10억 원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 훨씬 더 저렴하고 효과적인 공격법이다.
미사일과 다름없는 샤헤드 드론 수십~수백 대가 일제히 날아오는 것은 가공할 일이다. 소리 없이 날아와 수류탄이나 박격포탄 수준의 소형 폭발물을 떨어뜨리는 우크라이나의 드론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공포다.

샤헤드는 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가 결합된 '관성항법장치'를 사용해서 목표물을 찾아가기 때문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고, 통신 기능이 없어 일단 출격한 후에는 목표물을 수정할 수 없다. 순항 미사일과 특별한 차이가 없는 셈이다. 러시아는 처음에 이란에서 샤헤드 드론을 사서 그대로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개조한 자체 버전인 버전인 제란(Geran)-2 드론을 만들어냈다. 외형은 샤헤드와 거의 동일하지만, (미국의 GPS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도를 크게 높였다.
하지만 러시아 버전 드론에는 취약점이 있다. 글로나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강력한 전파로 신호를 교란할 경우 길을 잃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비슷한 드론을 사용—러시아군도 FPV 드론을 사용하고, 우크라이나도 규모가 큰 자폭 드론을 띄운다—하게 되었지만, 적의 드론을 막기 위한 양 측의 노력을 소개한 기사에 등장한 (아래) 사진들을 보면 각 군대가 두려워하는 적의 드론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샤헤드/제란 드론처럼 상대적으로 크고,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러시아의 정밀유도형 드론을 상대해야 하는 우크라이나군은 다양한 형태의 전파 교란장치(jammer)를 사용하는 반면, 천천히 날아와 병사들이 모인 곳에 작은 폭탄을 떨어뜨리는 우크라이나의 드론을 상대하는 러시아 병사들은 소총을 여러 개 모아 직접 대공포를 만들기도 하고, 연막탄을 터뜨려서 정확한 위치를 숨기려 한다. 물론 기사에서 차이가 두드러질 뿐, 양 측이 모두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드론을 무력화하는 방법이 진화하자, 드론도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러시아군이 한발 앞섰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전파 교란기를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유선 드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교란이 가능한 전파를 사용하는 대신, 조종 신호가 긴 광섬유(fiber optic cable)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선을 끊지 않는 한 무력화하기 어렵다.
실타래처럼 감긴 광섬유가 들어있는 통을 드론 아래에 부착하기 때문에 무게가 늘어나고, 비행거리가 짧아진다는 단점—광섬유의 무게로 인한 전력 소모와 광섬유의 길이까지만 날 수 있다는 한계—이 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적이 전파 교란기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아주 유용하다. 게다가 광섬유는 보기와 달리 인장강도가 높아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작 1km에 불과했던 비행거리도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20km까지 날아갈 수 있는 드론도 등장했다.)
또 다른 장점도 있다. 전파를 사용해 조종하는 일반 드론의 경우, 나무나 건물 같은 장애물이 전파를 방해하므로 일반 드론은 이를 피하려고 더 높이 비행한다. 따라서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다가오는 드론을 발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선 드론은 지형지물의 전파 방해를 받지 않아 낮게 날 수 있고, 필요하면 땅에 착륙시킨 후 적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했다가 띄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새로운 드론의 등장에 우크라이나군은 유선 드론이 피하는 빽빽한 숲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렇게 광섬유 드론이 퍼지기 시작한 게 2024년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아이디어를 빠르게 학습해서 자체 광섬유 드론을 생산, 사용하면서 2025년은 광섬유 드론이 전장의 대세가 되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전쟁터는 양 측에서 사용한 드론이 남긴 광섬유로 뒤덮였다.

러시아군이 고안해 낸 건 광섬유 드론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처럼 러시아군도 DJI의 매빅 드론처럼 값싼 레저용 드론을 보낸다. 그런데 러시아군은 이를 목표물을 탐지하는 정찰용으로 활용하고,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아주 멀리 떨어진 후방에 보낸다.
후방에는 러시아의 전략 폭격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폭격기들은 대규모 공격에 사용하는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막강한 플랫폼이지만, 러시아는 이런 비행기들을 우크라이나에 보내지 못한다. 전투기보다 크고 느린 전략 폭격기를 전선 상공에 보내려면 제공권(air superiority)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공중전이 있었지만 팽팽했고, 이후 서방 국가들이 F-16 전투기를 꾸준히 지원한 결과 현재 85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F-16 전투기들 때문에 러시아의 전략 폭격기들은 우크라이나 상공은 고사하고, 국경 가까이로 접근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전략 폭격기들로부터 안전하다는 게 아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전투기가 접근할 수 없는 후방 깊숙한 곳에서 이 폭격기들을 이륙시켜 파괴력이 강한 크루즈 미사일을 쏘고 돌아가는 전술을 사용한다.
점점 더 거세지는 러시아의 공격에 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전략 폭격기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지만, 그렇게 먼 후방까지 보낼 수 있는 드론도 없었고, 미국에서 제공한 미사일이 있어도 확전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그 사거리를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후방 공격에 미국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막강한 방공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을 시도해 봤자, 아까운 무기만 낭비할 뿐이었다.

여기에서 우크라이나군의 창의력이 다시 한번 발휘된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드론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우크라이나의 묘수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을 공포에 빠트렸다.
마지막 편, '드론 전쟁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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