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과 멍약
• 댓글 남기기최근 온라인에서 전직 아마존 직원들이 구글에서 일하게 되면서 비로소 전 직장이 얼마나 짠돌이인지 알게 되었다는 온라인 대화가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한 팀이 모니터 하나를 나눠쓰기도 하고, 모니터가 두 개 필요한 직원은 회사에서 허가를 받지 못해 인턴을 받아서 모니터를 배정 받은 후 인턴이 나가면 그 모니터를 가져다 사용한다는 말도 있었고, 심지어는 회의 때 나오는 베이글도 두 명이 반쪽씩 나눠 먹는다는 얘기도 등장했다.
이 얘기가 나온 기사를 페이스북에 소개한 후에 흥미로운 댓글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마존에서 일하다 현재는 메타에서 근무하는 분의 증언이었다. 그분은 아마존은 다른 테크 기업들에 비해 짠돌이라기 보다는 유통업에서 출발해 테크 기업이 된 회사라서 문화가 다른 것으로 보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테크기업이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직원이 유통/물류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휴일이 가장 적은 것도 사실은 직원들 사이의 형평성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러면서 아마존의 유명한 LP(Leadership Principle, 리더십 원칙)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 원칙 중에 절약 정신(frugality)가 있는데 이는 무조건 절약하라,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용, 리소스를 쓸 때 꼭 필요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보라"라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칙은 잘 사용할 수도 있고,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기업의 원칙과 문화의 적용 문제는 단순히 아마존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조직이나 동일하게 겪는다.
그런데 이에 관한 기사를 찾아 읽다가 미디엄(Medium)에 관련된 글을 자주 포스팅하는 이선 에반스(Ethan Evans)의 좋은 글을 읽게 되었다. 아마존을 비롯한 테크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을 통해 조직의 원칙과 문화가 적용되는 과정을 설명한 좋은 글이어서 전체를 번역, 소개한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얼마 전에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Leadership Principles, 이하 LP)이 어떻게 종종 무기처럼 사용되는지 설명하는 글을 썼다. 그 글에 이어 이번에는 그와 평행한 다른 문제, 즉 리더십 원칙들이 퇴화된 형태로, 혹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형태로 적용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나는 가장 단순한 생각도 하지 않고 적용되는 LP는 퇴화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종종있지만, 원칙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게을러서 그럴 때도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내가 목격한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해 보려 한다.
내가 아마존의 LP를 좋아한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이 원칙들은 아마존이라는 기업에 단일하고 변함없는 조직 언어(internal language)를 제공한다. 'Good to Great'이라는 책(한국어로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으로 번역되었다–옮긴이)에서 이야기하는 지속가능한 문화의 조건에도 부합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문화가 반드시 완벽해야 작동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문화는 분명하고(clear, 이해하기 쉬운) 일관되기만(consistent)하면 작동한다. 그 문화에 맞는 사람들은 남을 것이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잘 결집된(coherent) 팀이 만들어지게 된다.
'Good to Great'에서는 RJR 나비스코 담배 회사를 예로 들었다. 그 회사는–적어도 그 책이 쓰여질 당시까지는–분명한 흡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흡연자들은 단결해서 RJR 나비스코에 세계에 반대하는 (us vs. the world) 기업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는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물론 이건 상당히 부정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문화가 기업으로 하여금 (담배를 파는) 목표를 향해 달리게 하는 결집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LP는 비록 완벽하지 않게 사용되더라도 그보다는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상대적으로 커리어 초반에 오너십 LP (Ownership LP)를 주장하는 데 힘을 보태고 초안 작성을 도왔다. 원칙에 등장하는 "리더는 '그건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They never say ‘that’s not my job.')"라는 대목은 내가 작성한 것이다.
아마존에서 퇴화된 형태의 LP 중 하나는 비공식적인 명칭을 갖고 있다. 바로 '멍약(frupidity: frugality + stupidity, 절약 정신과 멍청함을 결합한 단어–옮긴이)'이다. 이 이름은 절약 정신의 원칙이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용되는 것을 말하며, "돈을 쓰지 말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지출 요청, 혹은 모든 지출 요청을 거부해서 절약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쉬운(그리고 어쩌면 게으른) 방법이다.
아마존 이전에 멍약의 가장 극단적인 태도를 목격한 것은 라이코스(Lycos)에서 일할 때였다. 인터넷 붐이 일어날 때 잘 나가던 이 회사에는 지출서류를 세 가지로 분류해서 쌓아둠으로써 비용을 "절약"하던 회계 직원이 있었다. 구매 요청서가 들어오면 받아서 1번에 쌓아둔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서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요청해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답답해진 직원이 다시 찾아와서 물어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사정을 하면 서류는 그제서야 2번으로 옮겨진다. 시간이 지나고 이 절차를 한 번 더 하면 그 서류는 3번으로 옮겨간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찾아가서 지출 승인이 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난리를 치면 그 직원은 마지못해 3번에서 서류를 꺼내 주문을 한다.
물론 1990년대 말에 일하던 그 직원이 아직도 살아서 링크드인에 이름이 올라와 있을 (솔직히 나는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른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회사에서 내가 맡은 직책은 구매 요청서를 쓸 일도 거의 없었고, 이 이야기는 사내에서 들은 얘기일 뿐이다. 따라서 어쩌면 그저 그에 대한 무서운 이미지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세스가 잘못될 경우에 대한 좋은 경고다. 접수된 구매 요청의 필요성을 실제로 평가하는 대신 그저 프로세스에 일부러 제동을 걸어 필터(꼭 필요한 요청을 걸러내는 필터–옮긴이)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마존에서는 이런 일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우리 팀장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여러 면에서 존경스러운 보스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부서장이 우리팀에 팀 커피 머그(팀의 상징이 들어간 컵–옮긴이)가 있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우리팀은 2년 넘게 함께 일해왔고 여러 제품을 출시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단결력 있고 유능한 팀이었다는 뜻–옮긴이) 그런데 그 당시 아마존에서는 절약 정신을 "우리는 티셔츠에 돈을 쓰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직원들이 같은 셔츠를 입는다고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우리 팀장은 이런 사내 분위기에 반기를 드는 대신 자신의 돈으로 팀 커피 머그를 사는 쪽을 택했다.
그 팀장의 행동이 '멍약'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기업) 문화에 굴복해 자연스럽지 않은 쪽으로 행동했다. 결속력이 강하고 성과가 좋은 팀이 커피 머그 좀 만들어 가지는 것조차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건 아주 작은, 아니 하찮은 수준의 비용이었다. 그런 팀 머그 때문에 팀원 한 명이 떠나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다면, 팀원 한 명에게 일할 동기를 줄 수 있었다면 머그 컵 제작 비용의 1,000배의 효과가 생겼다고 본다. 이렇게 말하면 "기업이 쓸데없는 자기 홍보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절약 정신을 보여주는 값진 상징" 아니냐고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반론이 설득력있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업을 이끄는 원칙이나 정책, 룰이 별 생각 없이, 혹은 세밀하게 신경쓰지 않고 함부로 적용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리더십 원칙(LP)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이유를 보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것인데 반해, 퇴화된 형태의 LP를 사용하는 이유는 게으름(원칙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대신 지적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쉬운 룰로 바꾸는 것)이거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피하고 싶어서(LP가 아주 물렁물렁하거나 따르기 아주 쉽다면 별 다른 노력이 필요 없으니까)이다.
그 동기가 게으름이든 아니면 회피이든 이런 경우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원칙을 좀 더 철저하고 세밀하게 해석한 의견을 예의를 갖춰 제시하는 것이라고 본다. (퇴화한 형태의 LP를 적용하는) 동기가 결국 노력을 회피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비용을 지출하고, 노력을 기울이고,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보면 담당자에게도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부드럽게 설명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좀 더 넓게 말하면 이렇다. 누군가 지나치게 단순화된 룰이나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증거를 고려해보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보도록 응원하는 작업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또 다른 뛰어난 상사가 내게 가르쳐 준 표현은 "무엇이 사실이어야 하겠느냐(what would need to be true…?)"였다.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 "이 지출을 승인해주시려면 어떤 것이 사실이어야 할까요?" 혹은 "어떤 것이 사실이어야 그 직원의 승진을 지지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가정된 상황에 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은 위협적이지 않다. 그렇게 해서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각자의 위치를 고수하는 논쟁("우리는 그걸 해야 해요" "하면 안 돼요" "해야 해요!")에 묶여있는 것보다 일이 훨씬 쉽게 진행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모든 가이드라인과 원칙은 어떤 생각으로 그것들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잘 사용하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해주지만 인생의 모든 패턴이 그렇듯 우리가 처한 특정한 상황에 적용하기 위한 최종 작업은 우리의 몫이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