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다가 그 지역을 대표하는 바로크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가 살던 집을 방문했다. 화가가 살며 작업했던 공간에 직접 들어가 보는 건 작품과 책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이다. (특히 그의 생애가 잘 기록되어 있고, 집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 집에서 쓰레기 처리용으로 사용하던 뒷마당 구덩이에서 발굴한 그릇들에는 렘브란트가 쓰던 물감의 흔적이 남아있다. 수백 년 전 화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이 집을 구경하는 순서는 입구에서 주는 오디오 가이드의 순서를 따르게 되는데, 그렇다 보니 다들 1층 부엌에서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한다.

부엌에서는 당시 그가 뭘 먹었는지, 당시 부엌에서 사용하던 물건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부엌이 여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렘브란트 본인보다 그의 하녀들, 특히 그가 아내를 여읜 후 내연 관계에 있던 하녀 히어트예(Geertje Dircx)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자세하게 등장한다. 가령 하녀가 자던 침대는 누울 수 없고, 그저 앉아서 발을 뻗을 수 있는 정도의 길이인데, 설명에 따르면 중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많은 유럽인이 누워서 자는 게 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에 앉은 채 기대어 잤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하녀는 몇 번 바뀌었지만 모두 이곳에서 잠을 잤다.

렘브란트 집의 부엌 공간. 오른쪽에 하녀가 자던 벽장처럼 생긴 침대가 있다. (이미지 출처: 글쓴이)

렘브란트의 하녀인 동시에 그의 아들을 돌보는 보모였던 히어트예는 언젠가는 정식으로 그의 아내가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렘브란트가 재혼할 의향이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그와 크게 싸우고,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된다. "약속을 어겼다"는 게 소송의 이유였는데, 이게 한국식으로 말하면 '혼인빙자간음죄'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히어트예는 패소했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행동을 보인다는 이유로 감옥에도 갔다. 이 일은 법정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개인적인 뒷얘기라서 렘브란트와 관련한 영화가 나오면 히어트예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영화에 등장할 경우 히어트예는 항상 정서적으로 불안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묘사된다. 소송의 피고였던 렘브란트가 남긴 기록을 렌즈 삼아 히어트예를 본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21세기에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시의 기록, 즉 텍스트만이 아닌 행간의 의미를 살피게 된다. 17세기 유럽이라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하녀가 돈 많고 유명한 남자 집주인과 분쟁이 생겼다면 세상은 누구의 편을 들어줬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여행 직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The Horrors of Pompeii (폼페이의 무서운 이면)'라는 기사. 약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파괴된 것으로 유명한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에서 발견된 낙서 한 줄을 통해 당시의 사회, 특히 여성 노예의 삶을 추적해 보는 고고학자의 글이다. 내용을 그대로 옮길 경우 완벽하게 전달하기 쉽지 않아, 최대한 원문을 살리는 쪽으로 편집, 번역해서 소개한다.


이 글이 시작되는 낙서 (이미지 출처: Aeon)

"에우티키스, 그리스녀, 잘해줌, 2앗사리온"

이 문구는 서기 79년 8월, 지금의 이탈리아반도 남부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파괴된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에서 발견되었다. (영어 원문도 라틴어의 번역이지만, 참고로 소개하면 'Eutychis, a Greek lass with sweet ways, 2 asses'라고 번역되어 있다. Ass는 엉덩이나 당나귀가 아닌, 로마의 화폐 단위.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앗사리온'이다–옮긴이)

누군가 벽에 쓴 낙서(graffito)이지만, 화산재 속에 잘 보존되어 지금에 이른다. 폼페이는 나폴리만에 위치한 도시로, 에트루리아(고대 이탈리아반도에 살던 민족으로, 고대 로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옮긴이) 문화가 발전했던 곳이고, 기원전 200년 경 오스크어를 사용하던 삼니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도시를 발전시키기 시작한 장소다. 폼페이 주변은 토양이 비옥했고,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폼페이의 위치 (이미지 출처: 구글 지도)

폼페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곳이었지만, 로마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형적인 로마 도시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자유로운 시민과 노예가 섞인 약 1만 2,000명이 살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과 분수대, 술집과 매점, 공방 등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연극을 볼 수 있는 노천극장도 갖추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오스크어와 그리스어, 라틴어(=고대 로마어)가 섞여서 들렸을 것이고, 여느 도시처럼 정치와 상거래, 사랑과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였을 것이다.

폼페이 거리 재현도 (이미지 출처: Getty)

이 도시에서 발견되는 낙서는 화산으로 파괴된 폼페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유적이다. 낙서는 엘리트 계급이나 권력자들이 남긴 게 아니라, 일반인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사회를 더 광범위하게 대표해서 그렇다. 에우티키스를 설명한 위의 낙서는 이 여성의 이름과 민족, 가격, 그리고 이 여성이 제공해 주는 서비스에 대한 암시가 담겨있고, 지금은 호기심 가득한 관광객들이 찾는 이 도시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이 낙서가 있는 곳은 베티(Vettii)라는 성을 가진 두 남자가 소유한 집(이하 '베티 하우스'라 부른다)이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상당한 부잣집이었는데, 이 낙서는 그 집의 현관실(vestibule,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집 내부로 진입하기 전에 있는 공간. 지금도 서양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옮긴이) 벽에 씌어 있다. "에우티키스, 그리스녀, 잘해줌, 2앗사리온"이라는 짧은 문구는 2,000년 전 폼페이 사회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무엇보다 당시 성매매 여성들의 처지를 엿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다.


오늘날 폼페이를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가 당시 이 도시의 성매매 업소, 루파나르다. 현대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온갖 성행위를 보여주는 프레스코 벽화들이다. 그림들은 여기에서 볼 수 있지만, 여덟 개의 벽화 중 5, 6개가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가이드가 하는 성적인 농담의 소재로 관광객들을 웃게 하지만, 이 그림들은 당시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이곳에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알려주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성매매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폼페이의 성매매 주택, 루파나르 (이미지 출처: Wikipedia)

이 성매매 업소 루파나르의 벽에는 이곳에서 일했던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아네이다, 아플로니아, 아티스, 베로니케, 카디아, 크레사, 드라우카, 파비아, 파우스틸라, 펠리클라, 포튜나타, 하벤다, 헬피스, 이아누아리아, 이아스, 몰라, 무르티스, 미르탈레, 미시스, 나이스, 판타, 레스티튜타, 루사티아, 스켑시스, 빅토리아, 그리고 "살비우스의 딸"이 그들이다. (베티 하우스 벽에 적힌) 에우티키스의 이름은 여기에 없지만, 이들 여성의 이름은 도시 곳곳에서 낙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이 아니라도 다른 곳에 적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폼페이 사람들과 당시 이 도시를 찾아온 방문객들은 성매매 업소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글이 네로 시대(1세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문장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사티리콘(Satyricon)이다. 이 책에는 폼페이를 찾아왔다가 길을 잃은 한 젊은 남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남성은 길에서 만난 한 노파에게 속아 사창가에 도달한다.

"벌거벗은 여성들 사이로 남자들 몇몇이 걸어 다니며 가격표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사창가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를 이리로 데려온 노파를 욕하면서 머리를 가리고 사창가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곳을 벗어날 즈음 (내 친구) 아스킬토스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나처럼 지치고, 반쯤 죽은 표정이었다. 그 역시 같은 노파에게 속아서 온 듯했다. 나는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이런 지저분한 곳에는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손으로 자기 얼굴을 쓸어내리며 '아마 상상도 못 할 걸'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도시를 헤매고 있는데, 한 점잖게 보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와 여관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 남자를 따라 이리저리 골목을 돌았는데 여기에 온 거야.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내게 돈을 줄 테니 같이 자자고 하네! 그 순간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방값이라며 내게서 돈을 빼앗았고, 그러는 동안 이 남자는 나를 붙잡더라고. 내가 그 인간보다 힘이 세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어."

폼페이 성매매 업소의 돌침대 (이미지 출처: Pinterest)

위의 글은 페트로니우스가 희극(comedy)으로 쓴 것이지만, 주인공이 겪은 일은 루파나르 같은 업소에서 실제로 일어나던 상황으로 보인다. 페트로니우스의 묘사로 미루어 보면, 이런 업소들은 도시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지역에 숨어 있었고, 대개는 내부가 커튼으로 가려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정체를 알기 힘들었던 것 같다.  

또한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호객 행위에 끌리거나, 속아서 오기도 했고, 그렇게 손님을 데려오는 (노파와 같은) 호객꾼은 업소로부터 돈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매매 여성들은 몸을 노출한 채 서서 가격을 제시했고, 손님들은 이들을 보고 상대를 골랐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작은 방 역시 돈을 내고 빌렸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어디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에우티키스를 찾아서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