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의 탄생 ①
• 댓글 4개 보기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그의 계엄령을 옹호하는 기독교 세력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다. 2005년에 했다고 알려진 소위 '빤스 발언'으로 악명이 높지만, 그 외에도 많은 문제 발언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그가 제대로 된 학위를 취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사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난 몇 년 동안의 한국 기독교—정확하게는 개신교—의 움직임을 보면, 전광훈 목사를 문제 있는 인물로 징계하거나 떼어내기보다는 그가 하는 극우적 주장을 하는 개신교 목사와 신도가 증가하는 양상이다.
가령,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개신교 모임인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는 등록된 교인이 14만 명이나 되는 세계 최대 감리교회 금란교회 김정민 목사도 참여하고, 많은 교회가 버스를 대절해서 교인들을 이 집회에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신교 교회들의 이런 행동이 눈에 띄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이슈가 기독교, 혹은 "성경의 가르침"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목사와 신자도 엄연한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톨릭 사제들도 1970년대에 '인권'과 '민주화'라는 문제에 관해 강하게 의견을 펼쳤고, 1980년대에는 통일운동에도 참여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탄핵이나 통일이라는 이슈가 기독교와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이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그런 발언을 하기로 했다면 그건 그들의 자유다. 우리는 나치에 반대해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가 처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를 알고 있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자기 양심에 따라 정치적인 결정을 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다.
그래도 남는 궁금증이 있다. 왜 한국의 개신교는 갈수록 보수적인 입장을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질까? 한국의 개신교 교회들이 나서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개신교가 나서서 반대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에는 무속신앙 연루 의혹이 있었고, (이단으로 취급되는) 신천지 교회와의 유착설도 있었지만, 많은 목사들이 나서서 지지를 선언했고, 계엄령을 옹호하는 목사 중에는 평소 극우적 발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다. 개신교는 왜, 언제부터 이렇게 보수 정치 세력과 가까워진 걸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개신교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Protestantism)는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분리된 다양한 종파를 망라하는 이름이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서 유입된 신앙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크게 두 차례다.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 있던 프랑스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고 조선으로 돌아와 신자들의 모임이 생기면서 가톨릭(천주교)이 들어왔고, 그로부터 100년 후인 1884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로버트 새뮤얼 매클레이(Robert Samuel Maclay)가 조선에서 선교사업을 허가받으면서 흔히 말하는 개신교가 들어왔다.

하지만 '미국식 기독교'는 한국에 전달되고 끝난 게 아니다. '제국을 숨기는 방법'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시기는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던 때다. (이걸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이 식민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었고, 해외에 식민지를 만들 때 선교사가 함께 들어가 종교와 문화를 전파하는 건 유럽의 열강이 해오던 일이다.)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유학을 가지 않아도 선교사를 통해 새로운 학문을 배우면서 한반도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은 서서히 커졌고, 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6.25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에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이 시기는 한국에서 개신교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다.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외국어가 (미국식) 영어였던 것처럼 제일 중요한 외래종교는 개신교였다. 1960~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교회에서 가장 똑똑한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신학교로 유학을 떠나는 일이 흔했던 것을 기억할 거다. 유학을 마치고 신학자가 되어 돌아온 이들은 한국에서 신학교를 세워 가르치거나, 큰 교회의 목사가 되어 미국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장 앞선" 기독교 사상과 방법론을 한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목사들이 미국에서 자기가 다니던 신학교의 교수나 동료를 한국에 초대해 강단에 세워 설교하게 하고 옆에서 통역하는 일도 흔했다.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신자들로서는 "본토 기독교"의 설교를 직접 들어 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동아시아의 낯선 나라에서 그토록 열렬하게 기독교를 받아들이니 미국의 목사들로서는 그런 초대가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을 거다.
한국 개신교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1973년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한국 교회에서는 "빌리 그래함"이라는 표기가 일반적이다) 목사 초청 부흥집회도 그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여겨지는 남침례회(Southern Baptist) 목사인 그레이엄이 당시 5.16 광장으로 불리던 여의도 광장에서 연인원 300만 명이 참석하는 엄청난 규모의 집회를 열었고, 이 집회는 한국에서 개신교의 규모와 동원력을 보여준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당시 집회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 빌리 그레이엄 옆에서 통역하는 한국인 목사가 보인다. 지금은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원로인 김장환 목사로, 1951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 미국 유학을 마치고 2) 한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 3) 미국 목사를 초청해서 집회를 열어 미국 개신교를 한국에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전형을 보여주지만, 여기에서 김장환 목사가 공부한 '밥 존스 대학교'라는 학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밥 존스 대학교는 1927년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세워진 밥 존스 칼리지의 후신으로, 여의도 집회에서 설교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졸업한 학교다. 그러니까 빌리 그레이엄은 김장환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닌 동문이다. 더 중요한 건 밥 존스 대학교와 빌리 그레이엄이 미국 복음주의(Evangelicalism)의 대표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다소 긴 서론을 끌어온 이유는 우리가 아는 "보수 개신교"를 정의하는 가장 유용한 틀이 바로 복음주의이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세상의 많은 기독교 종파 중에서 유독 한국과 미국의 개신교가 극도로 보수적인 발언을 많이 하면서 정치 세력화하는지 궁금하다면, 그 답은 복음주의에 있다.

복음주의가 뭘까? 사실 기독교인 중에서도 복음주의가 정확하게 뭘 가리키는 말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처럼 독립된 교단(denomination, 교파)이 아니라, 초교파(超敎派敎會, non-denominational) 운동이라서 그렇고, 사실상 개신교 교회 대다수가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전통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여 교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개신교가 곧 복음주의처럼 느껴져서 그렇다. 물고기에게 물의 존재를, 육지 동물에게 공기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개신교 신자보다 가톨릭 신자가 복음주의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신교 신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많은 신앙 행위—가령 혼자서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묵상하고, 혼자서 기도하고, 기도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을 기다리는 일—가 복음주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중세 기독교 사상가들이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신자들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신자들이 목사나 사제 같은 중재자를 거치지 않고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그 구조도 다르다. 가톨릭에서 독립한 개신교라고 해도 영국 성공회는 한국의 개신교 신자가 보기에는 가톨릭과 별로 다르지 않게 철저한 위계 서열을 갖고 있고, 미국에서도 오래된 동부의 장로교의 경우 가톨릭과 흡사한 교구(敎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이런 전통을 거부했다.
그런 복음주의자들은 무슨 이유로 세상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을까? 1800년대 아일랜드와 영국을 비롯해 유럽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성경 해석을 퍼뜨리던 남자,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에게서 빌리 그레이엄과 그 이후의 미국과 한국 개신교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보수 개신교의 탄생 ②'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