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엡스틴과 그 주변 인물들은 미성년자를 조직적으로 유인·착취한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운영하거나 이용했다. 이게 가장 지탄을 받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범죄만으로 '엡스틴 계급'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엡스틴 계급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엡스틴은 그들을 하나로 묶는, 일종의 브로커였다. 국경을 초월하는—대부분 백인 남성들로 구성된—엘리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유지했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서 돈과 정보가 흐르게 했다.

인신매매에 가담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엡스틴의 성범죄를 눈감아 준 이유는 그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으면 돈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엡스틴은 자신의 '평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라는 딱지가 붙은 후에도 그의 네트워크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그의 이름값이 여전히 통했다는 뜻이다.

돈과 정보가 어떻게 흘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를 두 가지 들어보자. 먼저 앤드루 마운트배튼 윈저의 경우를 보자. 엡스틴과 공범 길레인 맥스웰을 제외하면, 앤드루는 엡스틴 파일과 관련해서 체포된 첫 번째 사례이고, 두 번째 사례는 영국 노동당 정치인이자 미국 주재 영국 대사 피터 만델슨이다. (그나마 이 문제로 관련자를 수사를 하는 건 미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 정부다.) 두 사람 모두 공직자 비위(misconduct in public office)로 조사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국 정부와 관련된 기밀을 넘겼다는 의혹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