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의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는 미국의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의 역사를 수정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노예 제도 폐지 이후로도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인종을 분리하는 정책을 묵인해온 미국은 흑인들의 인권 요구에 밀려 적극적인 평등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그 핵심에는 교육 기회의 평등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교육의 경우는 단순히 모든 인종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워낙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한 환경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성적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한다면 명목상의 평등일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불평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앨런 바키

이를 수정하기 위해 각 대학들은 적극적인 우대 조치를 통해 비백인 학생들을 입학시키려고 노력했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U.C. Davis) 의대에서는 신입생 100명 중 16명을 소수인종 학생에게 할당했다. 그 결과 '소수자 특별 전형'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백인 학생(평균 3.49) 보다 낮은 학점(평균 2.88)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백인 학생이면서 3.46 학점으로 탈락한 앨런 바키(Allan Bakke)는 자신이 수정헌법 14조에 보장된 "동등한 보호"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뿐 아니라, 1964년에 제정된 민권법이 보장한 권리("인종, 피부색을 근거로 차별받지 않는다")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바키의 소송은 항소를 거듭해서 1978년에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