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성공한 부동산업자'라는 이미지로 10년 넘게 인기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고 있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기로 한 때가 2015년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평생 사업을 하던 트럼프는 특별한 정치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면서 "방 안의 온도"를 읽는 법을 배웠고, 이건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무기가 된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2008년에 "미국을 통합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당선되었지만, 실제로 미국의 농촌에서는 여전히 '진보'와 '흑인/비백인'에 대한 반감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바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지점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트럼프는 트럼프는 오바마의 대표적인 업적들을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하나가 '오바마 케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의료보험개혁법(ACA)이었고, 다른 하나가 오바마가 임기 내내 심혈을 기울여 이란과 맺은 포괄적 핵협정(JCPOA)이다.

2008년 선거 운동 내내 트럼프는 오바마 케어와 JCPOA를 공격했다. 특히 자신의 대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2009~13)으로,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기초 작업을 했기 때문에 JCPOA를 공격하는 건 오바마와 클린턴, 두 사람을 동시에 공격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란과 미국 사이의 핵협정(JCPOA)을 도출하기 위한 제네바 협상. 미국 대표는 당시 국무부 장관 존 케리였다.

트럼프는 정책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이 가진 불만을 읽고, 그걸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오바마의 업적을 대신할 만한 대안을 만들어 낼 실력도, 끈기도 없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해서 토론회에 나섰을 때 진행자가 "후보께서는 2016년 대선에서 오바마 케어를 대신할 더 좋은 의료보험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임기 4년 동안 법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갖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대략의 아이디어는 있다"는 말을 해서 빈축을 샀다.)

하지만 오바마가 남긴 업적에 대한 대안이 없어도 일단 무너뜨리고 보겠다고 작정한 트럼프는 먼저 오바마 케어를 없애기로 작정했다가 실패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암 치료를 받던 중 등원해서 반대표를 던진—그래서 미국 의회 역사에 길이 남게 된—사건 때문이다. 매케인의 한 표가 아니었으면 오바마 케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이란과 맺은 핵협정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오바마 케어를 없애려는 트럼프의 시도를 무력화한 매케인의 한 표

트럼프는 2018년 5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다시 시작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오바마가 맺은 핵협정이 터무니없이 이란에 유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었다. 이란이 여전히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게 허락했을 뿐 아니라, 그 대가로 큰돈을 주었다는—한국인에게도 익숙한—이른바 '퍼주기 논란'이었다.

이란 전문가나 핵무기 전문가 중에서 트럼프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양국이 JCPOA에 합의하기 전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20% 수준이었다. (보통 90%가 넘어야 핵폭탄 제조가 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은 JCPOA를 통해 이를 3.67%에 묶어놨다. 게다가 협정 이전에는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의 비축분이 10,000kg이었는데, 협정에 따라 이를 300kg으로 대폭 줄였고, 원심분리기도 20,000개에서 5,000개로 줄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24시간 감시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협정을 깬 후로 IAEA의 감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주요 시설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제거되었다. 이제 이란은 아무런 방해 없이 우라늄 농축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거다. 그 결과, 2021년 초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20%로 회복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60%까지 올라갔고, 2023년에는 84%에 달했던 적도 있다.

농축된 우라늄의 비축분은 5,000kg을 넘었다. (이렇게 비축해 둔 우라늄의 행방은 이번 폭격 이후로 중요한 쟁점이 된다.) 이 모든 일은 "나는 오바마보다 더 좋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으로 벌어진 결과였다.

참고로, 트럼프가 "오바마가 이란에 줬다"고 주장한 돈은 애초 이란의 것이었고, 경제 제재의 하나로 미국이 동결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이유가 결국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이었고, 오바마 행정부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곧바로 이란과의 협상을 시작해야 했지만—쉽게 진행되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는 그의 다른 많은 프로젝트들처럼—이란의 핵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뿐 아니라, 트럼프가 이란이 미국 외교관과 해외의 미군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이유로 2020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인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딱 60일 준다"

여기에서 미국과 이란이 JCPOA 합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노력이 필요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주권 국가가 자신을 보호해 줄 방패막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단순히 합의서 한 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양측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2003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약속했고, 이를 이행했지만, 2011년 '아랍의 봄' 시위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반군을 지원했고, 카다피는 달아나다 잡혀 죽임을 당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이 약속을 깬 것은 아니지만, 카다피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까? 리비아보다 10년 전에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당한 것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란을 설득해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기 위해 2003년부터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오다가,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2년 중반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카다피가 죽는 것을 본 이란의 집권 세력은 단순히 미국의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결국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해 유엔(UN)까지 참여한 끝에 비로소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JCPOA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핵 협상을 하던 당시 이란의 대통령이었던 하산 로하니는 그보다 10년 전 이란의 핵 협상 전문가였다. 온건파였을 뿐 아니라, 핵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던 로하니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강경노선이 미국과의 협상을 막지 않게 해주는 균형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래 준비한 전문가들이 매달렸는데도 협상에만 20개월이 걸린, 엄청난 작품이었다. 합리적인 결론이었을 뿐 아니라, 양측이 약속 이행을 검증할 수 있는 좋은 협정이었다. 적대적인 두 국가가 이런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외교적인 승리였지만, 그걸 모르는 유권자들에게 트럼프는 "오바마가 독재자에 굴복했다"고 주장하며 아무런 대안도 없이 합의서를 찢어버린 것이다. 미국이 먼저 합의를 깼으니, 이란으로서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트럼프를 이어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망가진 JCPOA를 복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 번 깨진 협정은 되살리기 힘들었다. 그 사이에 양측의 상황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에 앞서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했지만, 이란은 경제 제재의 해제가 먼저라고 버텼다. 미국의 의회는 기존의 합의에는 없던 미사일도 물고 늘어졌고, 이란에서 일어나는 시위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란은 우라늄을 농축하며 미국을 불안하게 했고, 트럼프는 자기가 뿌린 씨앗이 자라 위협이 되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이란과의 재협상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트럼프는 자기가 10년 전부터 주장한 "오바마의 핵 합의보다 더 나은 합의"를 만들어 내야 했다. 하지만 합의를 깬 쪽이 다시 합의하자고 할 때는 처음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서 출발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고, 이는 바이든이 JCPOA를 되살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란과 새로운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오바마의 JCPOA보다 미국이 더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지 못한다고 예상한다.) 무엇보다 깨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란 내 핵 관련 시설의 종류와 위치

이런 모든 불리한 상황에도 트럼프는 지난 4월, 새로운 협상 시한을 60일로 못을 박고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개월 걸린 작업을 2개월 이내에 끝내라는 것이다. 왜 60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가 아니다—트럼프는 참을성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한 언론인은 트럼프의 인내심이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참을성 없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는데도 성격을 바꾸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이야기한 오바마 케어를 없애려던 2018년의 시도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목표에 찬성하면서도, 공화당 의원 중에도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설득해서 표를 확보하자고 했지만, 트럼프는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표결에 부치도록 일정을 강행했다. 당시 공화당은 상원에서 전체 100석 중 52석으로 우위에 있었음에도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지 못한 것은 트럼프가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북한과의 핵 협상, 중국과의 무역 분쟁도 참을성 없는 트럼프가 자신의 발목을 잡은 사례들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성급하게 기한을 짧게 잡아 스스로 선택지를 좁혀버렸다. 협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의 성급함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마지막 편 '손쉬운 선택 ④'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