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애플바움은 헝가리를 이렇게 소개한다. "한 때 중부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고, 소련의 영향권 아래 있던 국가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유럽연합(EU) 안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헝가리의 생산성은 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실업률도 오르고 있다. 정부는 전통적인 가치를 외치지만,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애플바움은 헝가리 인구 감소를 두고 국민의 2/3가 교육 시스템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나라에서, 그리고 의사들이 줄줄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병원이 문을 닫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싶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한다.

그런데 트럼프와 MAGA 세력은 왜 이런 나라를 미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처럼 이야기하는 걸까? 바로 권위주의 정치인이 정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미국의 보수 인사들이 헝가리에서 열린 CPAC 행사에 참여해 오르반 빅토르를 찬양했다고 했지만, 현재 트럼프가 추진하는 대부분의 정책이 오르반 총리의 정책을 베낀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트럼프는 500만 달러(약 72억 6,000만 원)를 내면 누구나 미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골드 카드(Gold Card)'를 공개했는데, 이는 오르반이 도입한 30만 유로(약 4억 8,800만 원)의 헝가리 국채를 사면 비자를 주는 제도를 빼닮았다.

트럼프가 자랑하는 "골드 카드" 영주권
이미지 출처: People

이렇게 부자들에게 돈만 내면 비자와 영주권을 주지만, 트럼프와 오르반 모두 이민자를 공격하면서 집권한 사람들이다. 모든 사회 문제가 불법 이민의 증가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전 세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쉽게 사용하는 인종주의적 주장이지만, 오르반은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정치인 중 하나다. '패러소셜미디어'에서 소개한 뉴요커의 앤드류 마란츠 기자는 2022년에 발행한 기사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럽이 난민 대량 유입 사태를 겪던 2015년, 오르반은 EU의 법과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고 헝가리 남부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을 내쫓았다. 사실 헝가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난민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고, 오히려 헝가리에서 인구가 빠져나가는 게 더 자주 지적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들어오는 난민들은 오르반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기에 적절한 표적이었다." 물론 오르반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난민/이민자들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계와 "글로벌리스트(세계화주의자)," 로마(집시) 등을 공격했고, 최근에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며 보수표를 끌어모으고 있다.

마란츠는 오르반이 즐겨 사용하는 "기독교 민주주의"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헝가리는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이기는 해도 (오르반 본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헝가리인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그가 말하는 "기독교"는 사실은 다른 의미—즉, 백인 국가—를 내포한 일종의 코드라는 것이다. 그는 2017년에 한 연설에서 "헝가리가 민족적 동질성과 문화적 통일성을 지켜낼 수 있다면, 더 발전한 나라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슬람 국가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들과 "진보의 압제"로부터 헝가리를 지키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 같은 민주주의의 원칙은 접어두고 행정부에 막강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인 중심의 보수 기독교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당선된 후 의회와 법원을 무시하고 행정명령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럼프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다.

CPAC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오르반 총리
이미지 출처: NPR

트럼프가 한때 민주당 당원이었던 것처럼, 오르반도 과거에는 진보주의 지도자로 분류되었던 사람이다. 1998년에 총리가 된 후 그를 백악관에 초청한 당시 빌 클린턴은 오르반의 "젊고, 역동적인 진보적 리더십"을 이야기했을 정도다. 그랬던 그가 방향을 전환하게 된 계기는 2002년의 재선 실패다. 당시 헝가리의 사회주의 연합에 패배한 후 오르반은 "게임의 룰을 바꿔서라도" 다시는 선거에 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 오르반이 다시 권력을 쥐게 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을 도왔던 유명한 정치 컨설턴트인 아서 핑클스틴(Arthur Finkelstein)이다. 핑클스틴은 1970년대 닉슨 대통령 때 선거 전략으로 "마약, 범죄, 인종 등의 유리한 이슈로 선거를 양극화(polarize)하라"는 메모를 작성했던 인물이었고, 같은 전략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에게 제공해 선거에서 시몬 페레스에 크게 뒤지던 네타냐후가 이기게 도와준 전력을 갖고 있다.

2008년, 다시 총리직 도전을 준비하는 오르반에게 핑클스틴을 소개시켜 준 사람이 바로 네타냐후 총리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은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을 때마다 빛을 발했고, 최근 네타냐후의 부다페스트 방문을 앞두고 헝가리가 국제형사재판소(ICC)를 탈퇴한 것도 네타냐후가 전쟁 범죄로 ICC의 수사를 받게 된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다. 트럼프, 네타냐후, 오르반으로 이어지는 돈독한 관계를 보면 트럼프의 미국이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서구의 진보주의를 적으로 여긴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를 국빈방문한 네타냐후와 함께 선 오르반
이미지 출처: Reuters

오르반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구호로 내세웠던 레이건,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헝가리를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외치지만, 그가 부자로 만들어 준 건 자기 가족과 그에게 충성하는 소수의 갑부들, 즉 올리가르히들이다. 애플바움은 기사에서 헝가리에 남은 소수의 독립 언론 중 하나인 디렉트36(Direkt36)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The Dynasty(왕조)'를 소개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례 중에는 오르반이 국책 사업이나 EU가 지원하는 사업을 자기 사위가 운영하는 업체에 주도록 수주 조건을 교묘하게 설계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큐멘터리는 또한 우리 돈으로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정부의 관광산업 지원금의 대부분이 사위에 끈이 닿는 기업들에 돌아갔다고 고발한다.

한 사업가에 따르면 "헝가리 기업 중 누가 오르반과 끈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어느 기업이 성장하는지를 보면 된다. 끈이 있으면 성장하고, 없으면 쪼그라드는데, 2년이면 판가름이 난다." 이렇게 오르반과 연결된 올리가르히는 헝가리 경제의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리 말하면, 헝가리 경제의 20%는 기업의 실력이나, 자유시장의 원칙이 아닌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작동한다는 것이고, 이런 기업들은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지 않고 단지 국가의 부를 가져가는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도둑정치) 시스템 안에서만 작동한다.

미국이 과연 오르반의 헝가리처럼 될까 궁금하다면 어제 일어난 일을 보면 된다. 트럼프는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던 계획을 돌연 90일 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트럼프가 발표하기 15~20분 전에 내부자 거래로 보이는 매수가 갑자기 증가했음이 드러났다. 이런 종류의 내부자 거래는 이렇게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는 법인데, 이들은 들켜도 괜찮다는 태도로 노골적으로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별 주식 거래량. 트럼프가 발표하기 15~20분 전에 내부자 거래로 보이는 매수가 보인다.
이미지 출처: Reddit

설마 대통령이 내부자 거래를 주도했을까? 아래 영상을 보자. 트럼프는 90일 유예 발표 후 주가 폭등한 후 이를 자랑하면서 찰스 슈왑(Charles Schwab, 동명의 미국 최대의 증권사 설립자)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찰스 슈왑인데, 어제 25억 달러(약 3.6조 원)를 벌었다"고 했고,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9억 달러를 벌었다"고 내놓고 얘기한다.

트럼프의 이런 뻔뻔스러운 행동은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는 시그널링이고, 미국이 이미 올리가르히의 세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다른 나라들에 존재하는 이런 부패를 지적하며 민주주의 시스템과 경제적 투명성이 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오르반의 통치 기간 동안 헝가리의 경제가 꾸준히 후퇴한 것이 그 증거다. 물론 오르반은 이런 부패가 가져온 부작용을 인정하기는커녕, 헝가리에 올리가르히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럼, 오르반은 현재의 경제적 난국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국민들에게 "밝은 미래가 앞에 있으며,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성공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오르반은 2023년 초에 "우리를 믿어달라"면서 "내기해도 좋다. 올해 말까지 인플레를 한 자리 숫자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해 헝가리의 인플레는 17%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4% 경제 성장을 장담했지만, 0.6% 성장에 그쳤다.

재산이 늘어난 건 오르반의 가족과 극소수의 올리가르히들 뿐이었다. 🦦

이미지 출처: The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