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그러니까 트럼프 1기 때 있었던 일이다. 언론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기가 한 말에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 폭스뉴스만 좋아했던 트럼프는 간판 프로그램인 'Fox and Friends'에 종종 출연해서 긴 인터뷰를 하곤 했다. 그때 우연히 찍힌 영상이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진행자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인데, 트럼프가 마이크가 켜진("hot mic") 줄 모르고 진행자에게 편안하게 하던 말이 고스란히 녹음된 것이다.

진행자가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청할 거냐고 물었는데, 트럼프는 "가능하다"고 대답한 후에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어이, 김정은은 국가의 수반이잖아. 그것도 강력한 수반이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 김정은이 말을 할 때는 모두가 똑바로 앉아서 경청해.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Hey, he is the head of the country. And I mean he’s the strong head. Don’t let anyone think anything different. He speaks and his people sit up at attention. I want my people to do the same.)" 이 말이 공개되자 트럼프는 농담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영상을 직접 보면 농담으로 들리지도 않고, 그 말을 듣는 진행자도 웃지 않는다.

김정은이 말하면 사람들이 똑바로 앉아서 듣는다며, 그 모습을 손으로 표현하는 트럼프

트럼프는 필터가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바라는 게 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뽑고 나서 "속았다"고 말하는 건, 그가 한 말이 문제가 되면 그냥 농담이었다고 둘러대기 때문이다. 그를 오래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트럼프가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변명하게 되는 말들은 그의 진심일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일단 던져보고 청중이나 유권자의 반응을 살피는 일종의 척후병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그가 세 번째 임기를 고려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는 처음에 그 말을 웃으면서 농담처럼 했다. 미국의 헌법이 그걸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를 파악한 언론은 그게 진심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자들 사이에서 세 번째 임기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트럼프와 보좌관들은 이를 진지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미국 국민도 자기가 말할 때는 모두 일어서서 차렷자세로 경청했으면 한다고 말한 것은 그의 진심이다.

러시아에 대한 트럼프의 애정도 그런 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 출처: Reuters

사람들은 트럼프가 왜 그토록 푸틴을 일방적으로 좋아하는지 의아해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거래(deal)로 이해하는 트럼프가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외교 정책을 유지하고, 우방국의 정상들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말을 하면서도 푸틴에 대해서는 절대로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자산(asset)"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가 그거다.

민주당에서 트럼프가 2016년 선거 때 러시아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특별 검사를 임명해 조사한 것도 바로 그런 거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거다. 2년에 가까운 걸친 조사를 마친 로버트 멀러(Robert Mueller) 검사는 2016년에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해서 트럼프를 도왔음을 확인했지만, 트럼프가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 물론 트럼프가 푸틴의 명령을 받거나 공모하지 않았다는 것이 러시아의 '자산'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지만—본인이 자발적으로 행동해도 다른 나라에 유리하면 자산으로 취급된다—적어도 트럼프가 대가를 염두에 두고 러시아에 유리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러시아—좀 더 정확하게 푸틴의 러시아—를 좋아할까?

2015년 이후로 트럼프를 꾸준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트럼프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를 좋아하고,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다. 그가 비난하고 조롱하는 리더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들인 반면, 그가 좋아하고 찬사를 늘어놓는 리더들은 독재국가, 권위주의 혹은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의 지도자들인데, 이들의 면면을 보면서 트럼프가 지향하는 지도자의 모델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푸틴과 김정은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마드 빈 살만,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도 트럼프의 애정을 받았고, 심지어 중국의 시진핑도 팬데믹 이전까지는 "뛰어난(brilliant)" "아주 똑똑한(very smart)" 지도자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Orbán Viktor Mihály) 총리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권위주의자, 독재자들 중에서도 오르반은 유독 트럼프와 가깝고, 자주 만난다.  

오르반 빅토르와 트럼프
이미지 출처: BBC

오르반 총리는 지난 2024년 대선 기간에도 트럼프를 여러 차례 만났을 뿐 아니라, 2022년에는 친오르반 성향의 씽크탱크가 미국 우익 정치단체인 미국 보수연합(American Conservative Union)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컨퍼런스를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석 달 후에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CPAC 컨퍼런스에 오르반이 연사로 등장했고, 2024년에 헝가리에서 다시 열린 CPAC 컨퍼런스에는 트럼프와 가까운 미국의 우익 정치인들 등장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틀랜틱의 기사는 미국 정치인들이 이 컨퍼런스에서 한 발언에 주목한다. 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헝가리가 "보수의 원칙과 거버넌스의 리더이며, 가장 성공한 모델 중 하나"라고 했고, 트럼프의 책사로 잘 알려진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은 헝가리를 "세계에 영감을 주는" 나라로 추켜세웠고, 트럼프 2기의 설계도라고 불리는 '프로젝트 2025'를 발간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 이사장은 헝가리가 "현대 국정운영(statecraft)의 한 모범(a model)이 아니라, 최고의 모범(the model)"이라고 극찬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거다. '헝가리가 그렇게 훌륭한 나라였나?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하고많은 나라들 중에 왜 굳이 헝가리와 오르반 총리를 모범적인 국가, 모범적인 지도자로 생각하는 거지?' 그도 그럴 것이, 헝가리는 유럽연합 내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헝가리는 더 이상 완전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헝가리에서 열린 CPAC 컨퍼런스에서 발언하는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오르반은 엄밀하게 말해 독재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19년째 총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첫 번째 임기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이었지만, 2010년에 다시 총리로 취임한 후로 지금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대통령직으로 복귀한 트럼프가 탐낼 만한 경력이지만, 오르반의 헝가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주는 "영감"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앞서 말한 애틀랜틱의 기사에 따르면, 오르반은 2010년에 총리직에 복귀한 후로 공무원들을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 교체했고, 경제적 압력과 규제를 사용해 언론의 자유를 억압했을 뿐 아니라, 대학교의 독립성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중 한 곳은 아예 폐쇄했고, 법원의 중립성을 훼손해 정치화했고, 자기가 당선되는 데 유리하도록 거듭해서 헌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긴급 권한을 스스로 부여한 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러시아, 중국과 가깝게 지내며 유럽연합 내에서 푸틴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눈치챘겠지만, 깜짝 놀랄 만큼 2025년의 미국과 닮았다. 물론, 이건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의 공화당과 오르반의 오랜 애정의 이유이자, 결과라고 보는 게 맞다. 애틀랜틱 기사를 쓴 앤 애플바움(Anne Applebaum)은 트럼프의 미국이 헝가리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미래는 헝가리"라고 주장한다. 다음 편에서는 애플바움의 주장을 자세하게 소개해 보려 한다.

참고로, 러시아와 동구권 사회를 집중적으로 연구, 취재해 온 애플바움은 이코노미스트와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2004년에는 'Gulag: A History'라는 책(한국어로는 'GULAG 굴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현재는 애틀랜틱의 기자이자,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시니어 펠로우로, 트럼프 1기 때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구권의 정치를 설명하는 일련의 기사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앤 애플바움과 그의 책 'Gulag: A History'
이미지 출처: Penguin Random House

특히 오랜 동구권 거주 경험으로 (그의 남편은 폴란드의 정치인으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구소련 지역의 정치와 문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쉽게 설명하는데, 그런 지식과 경험으로 트럼프의 행보를 보며 "전형적인 권위주의 정권의 특징"이라고 가장 먼저 경고했던 지식인 중 하나였다.  

다음 편에서 그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자.


'헝가리 모델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