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감정, 노스탤지어
• 댓글 65개 보기독일의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은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브랜드 스카우트(Scout)의 프로토타입 차량을 공개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 새로운 브랜드의 이름이 아니라, 미국에서 단종된 지 오래된 오프로더 차량의 이름이다. 그 차를 생산하던 회사는 인터내셔널 하베스터(International Harvester)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농기계를 만들던 기업이다. 농기계로 인기를 끌다가 1950년대부터 약 30년 정도 자동차를 만들었던 이 회사가 1961년부터 생산했던 SUV의 이름이 스카우트였다. 스카우트는 약 20년 정도 팔리다가 단종되었고,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는 대부분의 자산을 팔아버리고 지금은 대형 트럭을 생산하는 기업(나비스타 인터내셔널)이 되었다.
2017년 나비스타를 인수한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전기차 SUV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하고, 그 이름을 스카우트라고 정했다. 1960년대 스카우트의 기술을 가져온 게 아니라, 그저 이름과 흉내 낼 수 있는 디자인 아이디어만 가져온 것이다. 미국인 중에도 스카우트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억하는 나이든 사람들도 새로 나올 차가 이름만 미국 브랜드일 뿐, 독일 자동차라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런다면 폭스바겐은 왜 굳이 옛날 이름을 가져오려 했을까?
여기에 브랜딩의 마법이 있다.
위의 왼쪽 사진에서 차량 전면에 폭스바겐(VW)이라는 로고가 박혀있다고 상상해 보면 그저 요즘 유행하는 레트도 디자인(차량의 레트로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 영상에서 잘 설명한다)을 적용한 새로운 SUV라는 정도의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반세기 전에 팔리던 차량의 사진을 그 옆에 놓고 같은 브랜드 이름을 붙여 놓으면? 사람들은 묘한 감정을 느끼며 그 차를 다시 보게 된다. 그 "묘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 폭스바겐은 좀 더 높은 가격으로 이 차를 팔 수 있다. (적어도 그게 폭스바겐의 기대다.)
세상의 온갖 기업들이 사용하려고 안달하는 그 "묘한 감정"의 정체는 노스탤지어(nostalgia)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은 지금도 영화를 만들지만 1937년에 태어난 옛날 사람이다. 작년 11월 뉴요커에서 스콧의 일생을 다룬 프로필 기사를 게재했는데, 나는 그걸 읽고 그가 젊은 시절 광고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만든 영국의 대표적인 식빵 브랜드 호비스(Hovis)의 광고는 지금도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광고"라고 불릴 만큼 전설적이다. (아래 영상)
역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Agnes Arnold-Forster)는 이 광고를 유튜브(다른 채널)에서 본 사람들의 반응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낸다. 한 댓글을 보면 "이 광고는 마력이 있다.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가 내 안에 노스탤지어와 위로 같은 따스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하고, 다른 댓글은 "추억 그 자체네요. 너무 아름답고, 너무 평화롭고... 지금 쉰셋인데 딱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네요"라고 한다.
아널드포스터는 그 댓글의 작성 시점과 나이를 계산하면 그 작성자는 1960년대 말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광고 속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이 광고가 묘사하는 시대는 에드워드 7세 재임기(1901~1910)다. 댓글 작성자는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저 광고 속 장면이 자기의 어린 시절이라고 믿고 있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떠올리며 향수에 빠지는 걸까?
사람들이 왜 레트로 유행에 빠지는지,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며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그런 노스탤지어는 향수병(homesickness)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면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의 책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를 읽어 봐야 한다.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의 기원—정확하게 말하면 노스탤지어라는 '질병'의 기원—에 관해서는 2022년 오터레터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글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노스탤지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게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7세기 스위스 의사 요하네스 호퍼(Johannes Hofer)였다. 호퍼는 당시 유럽 전역에 파견되어 일하던 스위스 용병들이 겪고 있는 증상을 연구하다가 노스탤지어라는 병명을 만들어냈다.
아널드포스터의 책도 스위스 용병과 요하네스 호퍼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A History of A Dangerous Emotion)"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새로운 병으로 시작된 노스탤지어가 사회에 따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그때는 질병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따스하고 야릇한 '감정'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뭘까? 저자는 그 이유를 아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가령, 서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미국으로 온 노예들은 향수병을 심각하게 앓다가 죽기도 했는데, 같은 미국에 도착했어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의 증상은 훨씬 덜했다. 아널드포스터는 견디다 못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자발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 힌트가 있다. 향수병의 가장 심각한 고통이 바로 귀향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같은 거리를 이동했어도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능력과 자원이 있다면 향수는 가벼운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시대, 그것도 자기가 경험한 적 없는—그러나 경험했다고 착각하는—시대가 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리들리 스콧이 만든 광고처럼 본 사람의 말처럼 "딱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면? 이 감정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 힘을 폭스바겐 같은 기업이 이용할 수 있으면 같은 제품이라도 수천 달러를 더 받아낼 수 있고, 레이건이나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 이용할 경우 사회의 진보를 거부하고 많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었던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8장 '트럼프와 브렉시트의 정치학'은 노스탤지어가 가진 부정적 힘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사회사(social history)라기보다는 감정 자체의 역사다.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쓴 암의 역사에 비하면 훨씬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노스탤지어로 죽은 사람은 암으로 죽은 사람보다 훨씬 적으니까) 책이지만, '도대체 이 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작가의 책이다.
노스탤지어의 정체가 궁금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노스탤지어의 힘을 이용하는 정치인과 기업들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책이다.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 열 분에게 책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평소와 같이 댓글로 알려주시면 제가 월요일(11월 4일) 오전에 추첨을 통해 발표하겠습니다. 이메일 확인하시는 거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