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쿠데타
• 댓글 2개 보기지난 글, '트럼프 폭풍 ②'에서 설명한 것처럼 트럼프의 허락을 받아 정부 효율부라는 임시 기관을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미국의 해외 원조를 담당해 온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지했다. 머스크가 "범죄 조직"이라고 부른 USAID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이었을까?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라는 공식 명칭에는 없지만 그 이름의 약자(USAID)는 영리하게 '해외 원조'라는 역할을 암시한다. 미국(US)이 세계에 원조(aid)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설립한 이 기관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한국이 6.25 전쟁이 끝난 후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서울과 부산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에이아이디"라는 이름이 낯익을 거다. 부산의 해운대, 서울의 반포동에는 1970년대 USAID에서 빌려준 돈으로 세워진 아파트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에이아이디 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했고, 그냥 "차관 아파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애틀랜틱에서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정치 문제를 취재하다가 그 분석 틀로 트럼프 1기 정부를 설명해서 큰 관심을 모았던 앤 애플바움(Anne Applebaum)기자는 USAID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USAID 한 곳에서 전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들에 지원하는 인도주의적 원조의 40%를 담당한다. USAID 수준의 대규모 원조를 집행할 수 있는 리더십과 노하우를 가진 곳은 세계에 없다. 이런 기관이 사라지면 아프리카에 대한 식량 원조, 세계 난민을 위한 원조가 무너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USAID는 전 세계에 백신도 지원한다. 한 전직 USAID 직원은 내게 'USAID가 직접 제공하는 식량 패키지를 매일 받아서 연명하는 아이들이 있다. USAID가 사라지면 그 아이들은 죽는다'고 얘기했다."
투표로 선출되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개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굶주리는 아이들에게서 식량을 뺏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가 겨냥하고 있는 해체 대상은 정부기관은 USAID에 그치지 않는다. 언론은—아니, 머스크 자신도—USAID는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정부 기관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돈줄을 끊는 것이다. DOGE라는 장난스러운 약자로 불리는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는 정부의 자금 집행에 사용되는 미 재정부(U.S. Treasury)의 전산망에 들어갈 수 있는 접근권을 받아냈다. 처음에는 신임 스캇 베센트 재무장관도 허락하지 않고 버텼지만, 결국 굴복하고 읽기 전용 모드로 접근권을 내어줬다고 한다.
아래에 인용한 티머시 스나이더의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정부의 전산망에 머스크 같은 개인이 들어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서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 예산 집행은 대통령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회가 결정하는 거다. 여기에 개입하는 게 머스크가 아니라 트럼프라고 해도 그는 편법을 동원해 예산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뿐이다.
트럼프의 문제를 정책적인 측면에서 날카롭게 지적해 온 조너선 스완(Jonathan Swan) 뉴욕타임즈 기자는 이 시스템은 원래 미국 정부 내에서도 소수의 경험 많은 공무원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통령이 임명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거다. 트럼프는 이런 전례를 완전히 무시하고 머스크에게 접근권을 주라고 재무부를 압박했다.
이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행위라는 것을 트럼프와 행정부가 모를까? 이들은 명백한 월권행위를 하면서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중이다. 행정명령을 남발해 무리한 행위를 하고, 여기에 반발한 야당과 시민들이 법원에 정지 명령을 요청하면 소송을 통해 대통령이 어디까지 권력을 확대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는 태도다.
이번 문제의 경우, 트럼프는 의회가 승인한 예산의 집행을 대통령이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이미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별명이 붙어있지만, 그런 미국의 대통령이 가진 힘을 의회를 억누를 만큼 키우겠다는 '단일행정부론(unitary executive theory)'이 트럼프의 권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논리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낸 접근권으로 미국 정부와 시민들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정부가 신원 확인과 임명 절차를 거친 공무원이 아니라, 일론 머스크가 데려온 19~25세의 젊은 엔지니어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중 한 사람(25세, 남성)은 지난 해 소셜미디어에 쓴 포스트에서 "(미국이) 우생학에 기반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게 그렇게 힘든 요구냐고. (I just want a eugenic immigration policy, is that too much to ask.)"라는 글을 남기는 등, 인종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고, 또 한 사람(19세, 남성)은 과거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정보를 함부로 유출한 것이 드러나 해고된 전력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인종주의 발언을 했던 엔지니어는 여론의 비난을 받고 물러났지만, 트럼프와 부통령 J.D. 밴스의 도움으로 다시 정부효율부에 돌아와 일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렇게 말 그대로 "철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정부의 정보를 휘젓고 다니는 중이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이 상황은 엄연한 쿠데타라는 지적이 나왔다. '폭정(On Tyranny)'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The Road to Unfreedom)'과 같은 책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익은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 예일 대학교 역사학 교수가 자신의 서브스택에 쓴 글에서다.
길지 않은 전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지만, 핵심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군용 위장 무늬를 한 테슬라 사이버트럭 열 대가 워싱턴 DC의 거리를 요란스럽게 질주해서 정부 건물 앞에 도착하고, 안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젊은 남자들이 나와서 나치 경례를 한 후 총을 들고 각 정부 부처의 건물을 차례로 접수하고 있다면 미국인들은 큰 충격에 빠질 거다.
왜냐하면 그게 쿠데타가 일어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심에는 물리적인 공간이 있었다. 그곳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거기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몰아내면 권력을 갖게 되는 게 쿠데타의 작동 방식이었다. 만약 2025년에 그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쿠데타는 실패했을 거다. 너무나 분명한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워싱턴 DC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민간인 복장을 한 채 컴퓨터 저장장치만을 들고 정부 건물에 들어간다. 그리고 "상부의 명령"이라는 애매한 말과 복잡한 기술적 전문용어를 내뱉으며 연방정부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투한다. 그렇게 해서 정부의 자금 집행과 관련한 정보, 그리고 정부의 자금을 집행하거나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위대한 수령(Supreme Leader)"에게 제공한다.
현재 워싱턴 DC에서 일어나는 쿠데타가 이거다. 이게 쿠데타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면, 그들의 쿠데타는 성공할 것이다.

2025년의 권력은 물리적인 권력이 아니라 디지털 권력이다. 연방 정부에는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컴퓨터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보호하는 시스템은—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민주주의 정부가 작동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일론 머스크와 그의 추종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 불법인 이유는, 그들이 권력(power)을 차지할 권리(right)가 없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아무런 공직에 출마하지도, 당선되지도 않았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한 기관이 없다. 이건 불법 행위다. 이 쿠데타가 의도하는 결과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머스크는 정부의 데이터에 접근권을 얻으면서 국민의 프라이버시와 존엄을 짓밟았고, 우리가 세금을 내고, 학자금 융자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와 맺은 합의를 깨뜨렸다.
머스크가 연방 재정부의 자금 집행을 정지할 수 있게 되면서 민주주의가 무의미해졌다. 우리는 대표자(의원)를 선출해서 의회에 보내고,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집행될지를 결정하게 한다. 만약 머스크가 이 절차를 막고 집행을 멈추게 할 권리를 갖게 된다면 그는 법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게 된다. 그렇다면 의회는 의미를 상실하고, 우리의 표는 의미를 상실하며, 우리의 시민권은 의미를 상실한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쿠데타에 저항하는 것은 디지털에 맞서 인권을 지키는 일이고, 올리가르히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만약 머스크가 디지털 시스템을 통제하게 되면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의원들도 힘을 잃는다. 그들이 투표를 통해 만든 시스템은—일론 머스크가 표현한 대로—"삭제"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는 머스크가 원하는대로 하게 된다. 연방 정부의 컴퓨터가 없으면 대통령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트럼프나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이걸 설명해 줄 사람은 없다.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 인권과 존엄성을 가진 미국 국민을 상대로 진행되는 쿠데타이고, 민주주의 공화국 국민을 상대로 진행되는 쿠데타다. 이게 쿠데타인 줄을 깨닫지 못한 채 한 시간, 두 시간 지날수록 이 쿠데타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