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오하이오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J.D. 밴스가 경쟁자인 민주당의 팀 라이언(Tim Ryan)과 토론하는 영상이 있다. (아래) 이 영상에서 라이언은 밴스에게 워싱턴에 있는 당 지도부의 압력에 어떻게 맞설 거냐고 묻는다. 라이언은 공화당 우세인 오하이오에서 활동하는 민주당 정치인이기 때문에 온건/중도 성향을 갖고 있고, 민주당 중진 낸시 펠로시(Nancy Pelosi)가 차지하고 있던 하원의장 직에 도전하기도 했다.

팀 라이언은 정치에 막 입문하려는 밴스에게 "나는 당 지도부에 도전했던 사람"이라면서, "워싱턴 DC에 있는 당 리더들은 (우리같은 정치인 정도는) 개가 장난감을 씹는 것처럼 씹어 버립니다"라고 말한 뒤, "당신은 트럼프가 미국의 히틀러라고 해놓고 그의 엉덩이에 입을 맞췄죠. 그러니까 트럼프가 당신을 공식적으로 지지했고, 그 지지선언을 들은 당신은 트럼프가 미국 역사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라고 공격했다.

그리고는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이 당신에게 선거자금으로 4,000만 달러를 줬죠. 그리고 피터 틸(Peter Thiel)이 또 1,500만 달러를 줬죠. 그 둘을 합쳐 5,500만 달러(약 760억 원)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큰돈을 당신에게 주면서 뭘 바랄 거 같아요? 당신의 충성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 사람들의 엉덩이에도 입을 맞출 사람인 걸 증명했어요.

개인적으로 하는 말이 아녜요. 저는 정치 경험이 있습니다. 정치라는 거, 쉬운 게 아닙니다. 당신은 오하이오주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지금 오하이오를 돕고 있지 않습니다. (당 중진들에 맞서) 당신의 생각을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오하이오 주민들을 위해 싸울 수 있습니까? 미국인의 일자리를 해외로 보낸 기업인들에게서 돈을 받았는데 어떻게 기업의 이익과 싸울 겁니까?"

공격은 성공적이었지만, 오하이오주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밴스를 상원의원으로 선출했다.

2022년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연방 상원의원 토론회. 밴스는 라이언의 발언 중간에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낮은 목소리로 짧게 반박했지만, 그의 바디랭귀지는 라이언이 말하는 게 사실임을 인정하고 있다. (적어도 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읽었다.) 

팀 라이언이 한 말에 등장하는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 마피아"를 대표하는 인물로, 팰런티어(Palantir, 이 회사에 대해서는 오터레터의 '돌아온 유령' 편을 읽어보시기 바란다)를 설립해서 운영하는 실리콘밸리의 사업가이자 투자자다. J.D. 밴스가 예일 법대생이던 시절 그를 처음 만난 틸은 사실상 밴스의 경력을 키워주다시피 했다. 밴스가 '힐빌리의 노래'로 인기를 끌었을 때 틸은 그에게 테크 기업 투자 업무를 맡겼고, 둘은 보수진영의 유튜브라고 불리는 럼블(Rumble)에 함께 투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 약간의 경력을 쌓은 밴스의 상원의원 도전을 후원했다.

하지만 피터 틸이 밴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트럼프를 소개해준 일이다. 전형적인 리버태리언으로 트럼프를 일찍부터 지지해 온 틸은 J.D. 밴스에게서 트럼프의 레거시를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봤고, 그를 직접 트럼프에게 데려가 일종의 사과와 화해를 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대통령 당선 후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피터 틸은 트럼프의 옆 자리에 앉았다. (이미지 출처: CNBC)

J.D. 밴스가 트럼프와 가까워져야 할 이유, 그리고 피터 틸이 자기가 키운 밴스를 트럼프에게 소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없지만, 트럼프는 도대체 왜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을까? 트럼프가 J.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후 언론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해석이 다양하다는 건 전략이 분명하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의 대선은 전략의 싸움이고, 그 전략은 여론 조사에 기반한다. 따라서 대선후보가 부통령이 될 러닝메이트를 발표하는 순간, 누구나 왜 그를 골랐는지 이유가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 논리적인 선택이라면 큰 그림 속에서 러닝메이트가 하는 역할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는 얘기는 선거 전략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트럼프의 PTSD

지금 민주당에서는 카멀라 해리스의 러닝메이트를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 물망에 오른 후보들(아래)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전부 백인 남성들이다. 경합주, 혹은 공화당 우세주의 주지사, 상원의원들이거나, 적어도 보수 백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지나치게 진보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중도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멀라 해리스의 보완재 역할을 할 사람들이다.

이건 카멀라 해리스의 능력과 무관하다. 바이든이 경선에서 이긴 후 카멀라 해리스를 선택한 이유가 정확히 그거다. 미래를 지향하는 민주당에서 나이든 백인 남성 후보인 바이든의 대척점에 있는 젊은 유색인종 여성인 해리스를 선택해서 균형을 잡았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대통령 후보가 된 해리스가 나이든 백인 남성 부통령 후보를 골라서 균형을 잡는 거다. 참고로, 여기에서 말하는 '균형'이란, 대통령-부통령 콤보가 특정 유권자 집단에만 어필하는 티켓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지역 역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미지 출처: FoxNews)

그렇게 봤을 때 J.D. 밴스를 선택한 트럼프는 오만한 결정을 내렸다는 게 중론이다. 밴스는 극단적으로 치우친 후보인 트럼프를 보완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트럼프와 똑같은 메시지를 쏟아내는 사람이라서 트럼프 티켓에 '외연'을 넓혀주기 힘들다. 지역도 그렇다. 오하이오주는 트럼프의 등장 이후로 중서부에서 가장 지독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몰린 곳으로 유명하다. 트럼프는 오하이오 출신의 러닝메이트가 없어도 오하이오를 가져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상식적인 전략을 무시하고 J.D. 밴스를 선택했을까? 우선 트럼프는 '상식을 뒤엎는 정치인, 정치인 같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그는 2016년에 기존의 정치 전략을 뒤집어서 승리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전략가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다른 글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트럼프의 지지율은 높은 하한선과 낮은 상한선을 갖고 있다. 문제가 생겨도 지지율이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과반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다. 2016년의 대선 승리는 다양한 사건과 요소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가능했지만, 그 이후에 있었던 각종 선거에서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은 모조리 패했다. 트럼프가 전략이 아니라 자기의 감을 믿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더 중요한 이유는 트럼프가 과거 부통령 후보로 선택한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펜스를 선택한 건 전통적인 대선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대표적인 해안의 대도시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던 트럼프는 중서부의 기독교인들을 끌어올 만한 사람을 필요로 했고, '펜스룰'로 유명한 기독교인 펜스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결과, 트럼프는 2016년에 승리했다. 하지만 2020년 재선에서 실패한 직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트럼프는 펜스(부통령은 상원의 의장이기도 하다)에게 선거 결과를 인준하지 말라고 했지만, 펜스는 자기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며(이건 사실이다) 상원에서 결과를 인준했다.

2021년 1월 6일 의회 침입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의회 침입 전 트럼프 지지자들은 펜스를 사형시켜야 한다며 교수대를 세웠다. (이미지 출처: Quora)

지금도 펜스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믿는 트럼프는 두 번째 임기 때는 끝까지 자기에게 충성을 다할 사람을 부통령으로 세우겠다고 결심한 것 같다. 전략적으로는 히스패닉 표를 가져다 줄 플로리다주 출신 상원 의원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가 훨씬 더 좋은 선택이라고들 했지만, 트럼프는 과거 경선에서 자기와 험한 말을 주고 받았던 루비오가 원하면 자기를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트럼프에게 부통령의 충성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4년 임기 중에 탄핵을 두 번이나 당했던 사람이다. 공화당의 반대로 두 번 다 해임은 면했지만, 두 번째 임기에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기가 탄핵당했을 때 공화당 내에서 자기를 싫어하는 의원들이 민주당과 손을 잡고 자기를 배신할 가능성(없지 않다)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에 상원의장, 즉 부통령 자리에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충성파를 앉혀야 한다고 믿는다. 이게 그가 전통적인 러닝메이트 선택 전략을 무시한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기억 때문에 충성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도 선거에 이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러닝메이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통령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 줄 수 있느냐인데, J.D. 밴스는 승리를 가져다 줄 지지기반이 전혀 없이, 피터 틸의 돈과 트럼프의 지지로 상원 의원이 된 사람이다. 그런 밴스를 선택한 트럼프는 상황을 완전히 잘못 판단했다.

아니, 상황이 뜻하지 않게 바뀌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카멀라 해리스 (이미지 출처: Politico4 days ago)

마지막 편, 'J.D. 밴스의 전향 ④'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