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벤 샤피로와 했던 인터뷰에서 J.D. 밴스는 "트럼프가 하는 말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이민자 문제나 인종 문제,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일반 미국인들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사는 대학교수가 말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제발 모든 얘기를 "대학교에서 사회학 세미나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밴스나 그걸 듣고 맞장구를 치는 벤 샤피로는 각각 예일과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사람이지만, 두 사람은 '미국의 엘리트를 공격하는 엘리트'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비슷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던 J.D. 밴스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중에 "워크(woke)"라고 불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PC, political-correctness)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어휘"를 사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며, 보통 사람들은 혐오표현으로 지적받을 만한 말을 항상 하는데,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J.D. 밴스의 이 논리에는 큰 구멍이 있다. 혐오표현을 없애자는 취지를 이해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에티켓을 익혀서 사용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겠지만, 그는 일상에서 그런 혐오표현을 듣고, 차별적 대우를 받는 사람들에 공감하는 대신, 그런 혐오표현을 사용해온 사람들에 공감하고 그들이 차별적 언행을 할 자유를 옹호하고 있다. 밴스는 그들이 경제적 약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이 사회적 주류/강자라는 점을 빼놓는다. 밴스는 지역, 인종적으로 그들과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가 누리는 이익은 작아 보이고, 불이익은 커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나쁘다는 것을 아직도 "배우지 못한" 백인들이 정말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들의 언행이 옳다며 힘을 실어주고, 그들보다 더 심한 말로 조롱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따라서 J.D. 밴스의 변화가 그의 말처럼 자기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더라도, 트럼프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그와 동일한 수준의 언행을 하는 것은 일종의 '퀀텀점프'에 가깝다.

기자가 가진 장애를 흉내내며 조롱하는 트럼프와 그걸 보며 웃는 지지자들의 모습

트럼프에 반대하다가 그의 힘에 굴복하고 복종하게 된 많은 공화당 의원 중에서도 J.D. 밴스만큼의 충성도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2022년에 나온 인터뷰에서 밴스는 트럼프에 마지못해 동의하게 된 공화당 정치인들은 자기의 태도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길고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지만, 자기는 자기가 "6년 전에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예전에 한 말을 숨기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거다.

친트럼프, 반반트럼프

J.D. 밴스의 전향을 이해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하나를 고르라면 앞의 글에서 잠깐 언급한,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의 설명이다.

"(밴스처럼 트럼프 지지자로 전향하는 사람들은) 대개 곧바로 트럼프주의자가 되지 않아요. 그들은 먼저 자기의 적을 미워하는 쪽으로 전향합니다. 즉, 친트럼프(pro-Trump)로 변하기 전에 먼저 반트럼프(anti-Trump) 진영에 분노하게 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반반트럼프(anti-anti-Trump)인 거죠. J.D. 밴스가 그렇게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 여기 트럼프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런데 밴스가 자기 책에서 이야기한 사람들, 즉 자기가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사람들, 자기가 정치적으로 동의하던 사람들이 모두 트럼프를 좋아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미디어에서는 트럼프를 미워하는 거예요.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좋은 점을 전혀 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경멸과 조롱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끔찍한 사람들(the deplorables, 2016년에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 주변 인물을 공격할 때 사용했다가 트럼프 선거운동에서 밈으로 사용해서 역공격에 성공했다—옮긴이)인 거죠. 이렇게 되면 미디어와 사이가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할까요? 그 기로에서 자기가 잘 아는 사람들의 편을 들게 되면 '그래, 트럼프에게 단점이 없다는 게 아냐. 하지만 이 사람들이 트럼프를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일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납니다. 많은 테크 갑부들, 벤처투자자들도 이유는 밴스와 달라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일단 그렇게 방향을 바꿔서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다른 얘기를 듣게 되면 전향에 속도가 붙게 됩니다."

J.D. 밴스, 에즈라 클라인 (이미지 출처: AZCentral, The New York Times)

에즈라 클라인의 설명은 우리가 한국의 정치 평론가들 중에서 종종 목격하는 전향 사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그 뒤에 하는 말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나이가 40을 넘은 사람이라면) 주변에서도 흔히 목격했을 이야기다.

"사람들이 전향하는 걸 보면, 많은 경우에 먼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멀리 가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제 친구들 중에는 공화당 지지자였지만 트럼프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은 골수 공화당원이었어요. 그들에 비하면 저는 평생을 리버럴로 살아왔고, 오래도록 민주당 지지자였죠.

그런데 공화당 지지자였던 친구들이 공화당이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망가지는 걸 보면서 정치적인 견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의료보험, 세금, 외교정책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서 이제는 바이든과 생각의 결이 똑같게 되었어요. 저는 똑같은 일이 밴스에게도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인은 J.D. 밴스가 트럼프에게서 정치적인 기회를 발견했을 거고, 정치적인 야심도 있기 때문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다수인) 오하이오주에서는 트럼프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고려하더라도 밴스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이미지 출처: Connecticut Public)

트럼프가 발견한 기회

에즈라 클라인의 해석은 J.D. 밴스의 전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전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그들의 생각 변화에 관한 것이다. 밴스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보다 먼저 트럼프로 돌아섰고, 밴스는 그런 "그들을 인종주의자로 취급하는 주류 미디어"에 반발한 결과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블루칼라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는 밴스가 했던 전향의 선행조건이다. 그들의 변화를 설명하지 않는 한, 밴스의 전향에 대한 설명은 완벽하지 않다.

J.D. 밴스가 책과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의 성장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의 할머니는 원래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그의 할머니는 왜 단순히 당을 바꾸기만 한 게 아니라, 더욱 더 극단적인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걸까?

미국의 민주당과 (트럼프 이전의) 공화당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는 20세기 후반에 두 당이 보여준 정책방향에 기반한 것이다. 그 견해에 따르면 공화당은 친기업과 부자들의 편에 있었고, 지지자들 중에는 인종적으로 백인이 더 우세했고,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민주당은 동부와 서부 해안에 위치한 대도시 지역 유권자와 노동자들을 더 많이 대변한다고 알려졌고, 지지자들의 인종 구성도 다양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다가 20세기 말에 중요한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이 1990년대에 체결한 북미 자유 무역 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NAFTA)으로 미국의 제조업 공장들이 캐나다, 멕시코로 떠나면서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게 되었다. 이는 미국 사회가 레이건 대통령 시절(1981~1989) 동안 보수화하면서 일어난 결과로, 레이건의 후임인 조지 H.W. 부시가 NAFTA 조약을 체결한 주체였다. 공화당의 전형적인 친기업적 정책이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은 예전처럼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민주당의 친기업화였다. 2008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가 실리콘밸리와 사이가 좋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의 진보적인 메시지가 고임금, 고학력 테크 노동자들에 어필하기도 했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은 테크와 환경 분야가 미국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고, 정책도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전통적인 산업에서 일하던 블루컬러 노동자들의 눈에는 그동안 노동자 편에 있던 민주당도 공화당과 다름없이 부자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오하이오주의 쇠락한 공업지대를 여행하는 유튜브 채널

민주당이 경제적 진보, 혹은 포퓰리즘으로 끌어 안고 있었던 노동자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에게 미 동북부 지역 민주당 정치인들이 내놓는 사회적 진보 메시지는 어색했지만, 적어도 자기 주 민주당 정치인은 그런 말을 자제하면서 노조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민주당의 빅텐트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던 거다. 그런데 민주당이 21세기에 들어와서 갈수록 부자들, 그것도 실리콘밸리의 부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J.D. 밴스의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지지할 정당을 잃은 이들이 소수였다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만, 이들의 숫자는 (당시 다른 정치인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았다. 그 사실을 우연하게 발견한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리고 그 유권자 집단을 끌어오는 방법에서 트럼프가 다른 공화당 정치인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기존의 정치 논리대로라면, 혹은 블루칼라 백인들을 돕기 원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들을 상대로 노동자를 위한 경제적 포퓰리즘을 제시하는 게 맞다. 하지만 트럼프는 부자로 태어나서 평생 부자로 살았고, 부자와 권력자들만 친구로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노동자를 위한 포퓰리스트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민주당이 부자들과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부자 감세에는 머뭇거리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기존의 공화당과 트럼프의 관심이 일치한다.

트럼프 집권 첫해 세금 감면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상위 1% 사람들이다. (출처: 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

그런 트럼프가 블루칼라 백인들을 지지자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경제적 진보/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보수 정책이었다. 그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참고 있었던 불만, 즉 여성, 인종, 성소수자 문제에서 민주당이 꾸준하게 내세웠던 진보적인 정책에 대한 반감을 인정해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유지하면서 직업을 잃은 애팔래치아 사람들의 표를 가져올 수 있었던 거다. 이를 J.D. 밴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트럼프는 애팔래치아 사람들의 화법을 사용한 것이지,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한 게 아니다.  

여기에 J.D. 밴스의 전향이 품고 있는 모순이 있다. 그는 자기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의 편에서 이야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정치적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인 후원은 실리콘밸리 갑부 한 명에게 의존한 거나 다름 없다. 그는 애팔래치아를 대변한다고 말하지만, 애팔래치아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애팔래치아에 립서비스를 제공하고 표를 가져오는 트럼프의 충실한 대변인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트럼프에게 J.D. 밴스가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J.D. 밴스의 전향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