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켄터키주에 사는 한 사람이 그 주의 한 자동차 경주장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 위치한 포드의 트럭 생산공장에서 만들어진 픽업트럭들이 그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 차량들은 포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니 미국에서 지난 수십 년 간 가장 인기 있는 F-150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2020년 초중반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데, 이 트럭들은 왜 딜러와 소비자에게 넘어가지 않고 이런 외진 곳에 주차되어 있을까?

Pat Brindley Roeder의 페이스북 

아직 완성되지 않은 차량들이기 때문이다. 저 트럭들에는 요즘 자동차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컴퓨터 칩이 일부 빠져있다. 포드의 공장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데, 컴퓨터 칩을 공급받지 못해 "칩 빼고는" 다 완성된 차가 계속 생산되는 중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러나 아직 팔 수 없는 트럭들이 넘쳐나 공장에서 수용하지 못하자 근처 자동차 경주장을 임대해서 세워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도 주차공간이 모자라게 되자 아예 전국의 딜러들에게 미완성 차량을 넘겨서 딜러 주차장에 보관하게 하고 컴퓨터 칩이 들어오는 대로 딜러들에게 전달해서 부착해서 팔도록 할 계획을 세웠다.

빗나간 예측

포드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고, 한국의 자동차 회사도 컴퓨터 칩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제까지 별문제 없이 돌아가던 컴퓨터 칩 공급에 왜 갑자기 차질이 생겼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팬데믹이다. 2020년 봄을 떠올려보면 기억하겠지만, 세계는 최악의 불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계 각국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돌입하면서 사람들이 이동을 멈추자 여행업을 필두로 많은 산업들이 불황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산업이 불황을 겪은 건 아니다. 사람들이 집안에만 갇혀있게 되자 디지털 콘텐츠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고, 온라인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테크, 특히 인터넷 테크기업들은 큰 호황을 누리게 된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출퇴근을 하지 않으면서 집 여기저기를 리모델링하면서 목재 가격이 상승하는 일도 벌어졌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동하지 않으면서 휘발유 수요가 떨어지면서 휘발유 가격도 하락했다. 그렇다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단기 전망을 어떻게 잡아야 했을까? 당장 이동을 하지 않으니 자동차가 많이 팔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그렇게 판단했다고 한다.

자동차가 팔리지 않을 것 같으면 재고를 줄여야 한다. 모델 연도가 바뀌면 할인해서 팔아야 하니까 빨리 팔리지 않을 차를 미리 생산하는 건 부담이다. 그런데 재고를 줄이려면 생산을 줄여야 하고,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면 부품 주문을 취소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게 아래에서 설명할, 이 글의 핵심이다). 그래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주문을 취소한 부품 중 하나가 컴퓨터 칩이다.

자동차에 컴퓨터 칩이 처음 사용한 건 1968년 폭스바겐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가 전자제어 연료 분사 방식을 사용하기 위해 칩을 부착한 이래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칩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요즘 자동차에는 평균 수천 개의 컴퓨터 칩이 들어간다. 엔진과 브레이크, 앞유리를 닦는 와이퍼와 헤드라이트, 깜빡이등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자동차의 거의 모든 기능이 컴퓨터로 제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기 회복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불황을 염려한 정부가 강력한 경기부양에 나섰고,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이 여행과 외식을 못하는 대신 그 돈으로 물건을 구매하면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요가 빨리 회복된 제품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였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를 "집 다음으로 큰 액수의 구매"라고 부르지만, 낯선 사람들과 좁은 공간에 함께 있어야 하는 항공 여행을 포기한 사람들이 자동차 여행을 택하면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차를 산 사람들은 바빠서 가지 못했던 국립공원을 찾는 바람에 미국의 국립공원들이 방문객들로 넘쳐났다. 대부분의 국립공원들이 자동차로 가야 하는 위치에 있고, 애초에 자동차로 공원 안을 돌아다니도록 설계된, 자동차 친화적인 공간이다).

글로벌 공급망

수요 증가에 놀란 기업들이 다시 칩 주문을 늘렸지만, 이미 줄어든 자동차용 반도체 칩 주문에 맞춰 생산 일정을 변경한 반도체 생산업체들이 새로운 주문에 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는 사이에 포드 같은 기업들의 공장에서는 칩이 군데군데 빠진 차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칩에 목말라 있는 건 자동차 기업들 만도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재택 근무가 보편화하면 사람들이 (줌 통화도 해야 하고, 업무를 위해서는 높은 사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으니) 집에 있는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니 게임 콘솔의 구매도 크게 증가했다. 이런 제품들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칩 부족으로 생산을 줄여야 했고, 이 상황은 어쩌면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인텔의 CEO는 이번에 분기 실적을 보고하면서 칩 부족이 올 하반기에 더 악화되고,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1, 2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자동차 기업들은 부족한 칩을 두고 경쟁할 때 아무래도 불리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자동차에 들어가는 컴퓨터 칩은 그 수가 많기는 해도 최첨단의 고성능 칩은 아니다. 신형 자동차에 부착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왜 항상 최신형 스마트폰보다 속도가 떨어지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이 있을 거다. 매년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폰과 달리 자동차는 한 모델의 개발 기간이 짧아야 2, 3년이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설계 단계에서 적용했던 기기는 아무리 최신형이어도 자동차가 쇼룸에 들어설 때면 이미 '옛날 제품'이 된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성능이 최우선인 스마트폰과 달리, 자동차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성능은 조금 떨어져도 안전이 검증된, 튼튼한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컴퓨터 칩은 연식이 좀 된 '레거시 칩'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에는 이윤의 폭이 크지 않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제품이다. 따라서 생산라인이 제한적일 때는 고가의 최신형 반도체 칩에 우선순위를 두는 건 당연하다. 이런 이유로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에서는 팬데믹 이전에 이미 자동차용 칩 제조공장을 독일 드레스덴에 세우기도 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는 인텔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었다).

보쉬가 독일 드레스덴에 세운 자동차용 칩 생산 공장

물론 반도체 제조업체가 고성능 칩 생산을 선호하는 것은 팬데믹과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작업이 멈추고 생산 일정이 삐끗한 상황에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니 공급을 늘릴 수 없었고 (반도체 생산라인은 건설부터 정상 가동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기로 악명 높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