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합니다: '트럼프, 흔들리다 ①'에서 소개한 카멀라 해리스 선거운동 소셜미디어 계정이 비교한 트럼프와 해리스의 집회 사진 중에서 트럼프 쪽 사진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 청중이 입장하던 시점에 찍힌 것으로 두 사진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즈와 시에나 칼리지의 여론조사(미국 선거와 관련해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여론 조사 중 하나)에 따르면 11월 대선을 결정짓게 되는 주요 격전지에서 카멀라 해리스가 도널드 트럼프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눈길을 끈 세 주—위스컨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는 원래 민주당의 아성으로 여겨져 "푸른 장벽(Blue Wall)"으로 불렸지만, 2012년에 오바마를, 2016년에 트럼프를, 그리고 2020년에 바이든을 지지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경합주로 떠올랐다. 바이든이 후보이던 때만 해도 트럼프가 앞서고 있던 이 세 주에서 카멀라 해리스는 50퍼센트 대 46퍼센트로 트럼프를 따돌렸다.

이 자체만으로 깜짝 놀랄 변화이지만, 흥미로운 건 그 내용이다. 뉴욕타임즈의 네이트 콘(Nate Cohn) 기자에 따르면 이 세 주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즉,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거의 늘어나지 않았는데, 바이든이 후보일 때는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이 카멀라 핼리스와 팀 월즈가 등장하자 지지를 보내기 시작한 거다.

민주당을 지지해 온 푸른 장벽 중에서 위스컨신(WI), 미시건(MI), 펜실베이니아(PA)는 트럼프가 2016년에 빼앗은 곳이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이런 변화는 바이든이 후보직을 사퇴한 직후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는데, 카멀라 해리스가 후보가 된 지 2주 후 팀 월즈를 러닝메이트로 발표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욱 열광하고 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두 진영의 선거 유세다. 지난 글에서도 소개했지만, 해리스 선거운동 본부가 공유한 유세장의 비교 이미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트럼프의 유세장은 상대적으로 작은데도 좌석을 다 채우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반면, 해리스-월즈의 유세장은 꽉꽉 들어차고 열기가 느껴진다는 보도가 나온다.

물론 사실상 지난 4년 동안 선거운동을 해온 트럼프와 이제 막 등장한 해리스-월즈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2024년에 트럼프의 유세장에 간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를 듣거나, 후보를 잘 알기 위해 가는 게 아니다. 반면 유권자들은 비록 민주당 지지자라고 해도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후자의 선거 유세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해리스가 유세장에서 자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트럼프는 기분이 상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이럴 때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지만, 트럼프는 자기가 지고 있을 때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트럼프는 2017년 1월에 열린 취임식에 미국 역사상 최대의 환영 인파가 몰렸다는 주장을 했는데, 뉴욕타임즈가 이를 팩트체크하기 위해 (트럼프가 그토록 싫어하는) 오바마의 취임식 때의 인파와 비교하는 사진을 게재하자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 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많은 사람이 몰린 사진을 두고 조작된 사진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의 주장은 팩트체크를 통해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오바마의 취임식(왼쪽)과 트럼프의 취임식 인파를 비교하는 뉴욕타임즈 기사
트럼프 측에서는 기체에 군중의 이미지가 반사되지 않았다며 조작이라고 했지만, BBC, 폭스뉴스 등의 언론에서 팩트체크한 결과 트럼프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미지 출처: The Telegraph)

트럼프의 자존심

지난 7월 13일, 트럼프가 암살 시도를 피해 목숨을 건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는 끝났다"고 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순교자(martyr)로 추켜세우고, 다른 유권자들은 총격 후 트럼프가 주먹을 치켜드는 사진을 노쇠한 바이든과 비교하며 차라리 트럼프가 낫지 않겠냐고 했다. 6월 말 토론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패색이 짙었던 바이든은 이제 지지율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 게 그 시점이다. 지금은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며 옛날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때가 트럼프 지지율의 정점이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미디어의 관심 집중이다.

광고, 홍보(PR)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미디어 분류법이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를 오운드(owned) 미디어, 페이드(paid) 미디어, 언드(earned) 미디어로 나누는 거다. 하나의 미디어라도 누가 그 채널에 올라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튜버에게 자기 유튜브 채널은 자기가 소유한(owned) 미디어다. 이 채널에서 유튜버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채널이라도 그 채널에 광고를 내보내고 싶은 기업에게는 돈을 내야 등장할 수 있는 유료(paid) 미디어가 된다.

그런데 만약 그 유튜버가 화제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인물에게 이 채널은 언드(earned) 미디어다. 홍보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가장 탐내는 게 바로 언드 미디어다. 굳이 미디어를 소유하지 않아도, 광고/홍보비를 내지 않아도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언드 미디어의 효과와 중요성이 더 커졌다. 트럼프가 바로 이런 언드 미디어의 제왕이었다.

트럼프는 2015년에 공화당 경선에 참여하면서 홍보비에 큰돈을 쓰지 않았다. 언론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져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정치 신인이어서 미디어의 관심을 모았고, 그 후에는 그가 거칠게 내뱉는 말이 충격적이어서, 혹은 그가 쏟아내는 가짜 뉴스를 팩트 체크하기 위해 보도의 양이 늘어났다. 그야말로 한 푼도 내지 않고 뉴스와 신문에 매일 그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다른 정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2016년 공화당 경선에서 상대 후보의 흉내를 내며 조롱하는 트럼프 (이미지 출처: Vox)

그게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군중의 크기 비교에 집착하는 이유다.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군중이야말로 인기의 증명이고, 언드 미디어를 탈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최고의 엔터테이너라고 믿는 트럼프는 민주당의 갑작스런 후보 교체로 등장해서 언드 미디어를 빨아들이고 있는 카멀라 해리스가 눈에 거슬린다.

트럼프의 군중 크기 집착을 다룬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여전히 행사장을 가득 채우지만 (길고 두서없기로 악명 높은) 그의 연설이 한 시간을 넘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빠져나가서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고 한다. 예정한 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게 시작하고, 90분을 넘는 긴 연설을 하는 트럼프의 습관 때문에 서둘러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트럼프는 또한 자기의 경쟁자들은 유명 가수를 초대해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고 주장하는데, 현재 미국 연예계에서 트럼프의 브랜드와 엮이고 싶은 사람을 찾기 힘든 게 트럼프 유세장에서 인기 가수를 볼 수 없는 속사정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격 시도 사건 이후 트럼프의 선거유세 집회가 눈에 띄게 줄었다. 원래 트럼프가 뜨거운 여름에 집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고, 야외 집회를 하다가 총격을 받는 바람에 후보를 보호하는 경호국에서 절차를 강화한 탓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트럼프가 직접 참석하는 유세가 줄어들면서 러닝메이트인 J.D. 밴스가 진행하는 유세가 더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문제는 '꿩 대신 닭'으로 언론의 관심을 받는 밴스의 집회는 규모가 훨씬 작고, 열기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정치 경력이 짧은 밴스가 청중과 소통하는 법을 몰라 어색한 장면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과거에 했던 말들이 꾸준히 드러나면서 홍보 재난을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이 안 낳고 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들" 발언을 했던 게 드러나서 젊은 여성들의 분노를 샀는데, 어제는 "폐경기를 지난 여성들의 존재 목적은 손주를 키우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등장해서 중년 이상의 여성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중이다.)

당연한 결과로 J.D. 밴스에 대한 호감도는 급락하고 있고, 트럼프가 러닝메이트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공화당 당규에 따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점이 지났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기보다 인기 있는 러닝메이트보다는 인기가 없어도 자기만큼 지독한 말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J.D. 밴스를 교체할 의향도 없을 거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의 미시건주 유세 (이미지 출처: Newsweek)

그렇다고 해서 카멀라 해리스가 트럼프에 분명하게 앞서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패할 게 분명해 보였던 상황이 대등한 상황으로 바뀌었고, 해리스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트럼프와 밴스는 언제든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해리스는 들춰 낼 과거가 얼마든지 있다"는 트럼프측의 주장은 거짓말이 아니다.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은 누구나 밝히기 부담스러운 과거가 있고, 특히 해리스처럼 검사 출신이었다가 민주당의 분위기가 진보적으로 기울면서 살아남기 위해 진보적 어젠다를 끌어안은 정치인의 경우 공화당에서 공격할 수 있는 게 많다.

해리스의 언론 관계도 일종의 지뢰처럼 남아있다. '카멀라 해리스 ③'에서도 소개했지만, 해리스는 부통령 시절 국경 문제로 인터뷰를 하다가 망친 적이 있고, 그게 해리스가 이후로 언론을 피하게 된 이유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진영에서는 해리스가 텔레프롬프터를 사용한 연설만 할 뿐, 즉흥적으로 대답해야 할 기자회견을 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자리만 마련되면 해리스의 현재 이미지는 허상이었음이 드러날 거고, 여론은 돌아설 거라고 주장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다.

게다가 러닝메이트 선정 과정에서도 불거졌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이슈도 꺼지지 않은 불씨다. 민주당 내 진보세력은 바이든-해리스 정권이 이스라엘에 무기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들은 해리스의 선거 유세장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리스는 지난주 디트로이트 유세장에서 연설을 방해하는 시위대를 향해 "트럼프가 이기는 게 좋겠다면 계속 그렇게 얘기하라"는 말로 그들을 일축했다.

공화당이면 모를까, 민주당에서는, 그것도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Z세대를 투표소에 데려와야 하는 카멀라 해리스로서는 좋은 대응이 아니었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후로 해리스는 이런 시위대를 대하는 방법을 바꿔, "정전 협상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지만, 사그라든 문제는 아니다. 다음 주 시카고에서 열릴 민주당 전당대회 때도 반이스라엘 시위대가 등장해서 공화당에 "분열된 민주당"이라는 카드를 쓸 수 있게 도와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카멀라 해리스의 앞에 놓인 이런 지뢰들에도 불구하고 '해리스-월즈의 바람'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게 트럼프가 걱정하는 이유다.


마지막 편, '트럼프, 흔들리다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