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그래서 미국과 중국이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면, 궁극적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다자주의(pluralism)와 다양성이다.

저자는 가장 쉬운 답을 자신의 부모에게서 찾는다. 저자의 부모는 중국 윈난성 출신으로 저자가 일곱 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이후 직장을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근교로 다시 이주했다. 이들은 윈난성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인 중산층이었지만, 천안문 사태 이후 경직된 중국의 사회 분위기에 실망하여 이민을 결심했다.

중국이 개혁 개방의 문을 연 지 40년이 지났지만, 세계 문화에 대한 중국의 기여는 대부분 예술적 변두리에 국한되어 있다. 저자는 “공돌이들은 설득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는 언제나 자신들이 옳다고 믿으며, 모든 오류의 원인은 반동분자나 외국인에게서 찾는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건 당시 탱크를 피해 숨은 시위대의 모습

과학, 특히 자연 과학에서 중국이 눈부신 발전을 보인 데에는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과학은 자유로운 사고가 꼭 전제되어야 하는 분야는 아니라는 것이다. 화학, 물리, 수학, 공학 분야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의외로 역사상 수많은 독재 정권하에서 놀라운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 과학 발전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풍부한 자금이 훨씬 중요하며, 독재 정권은 언제든지 풍부한 지원을 무기 삼아 과학자들을 자기편으로 묶어둘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은 다르다. 자유로운 사고가 필수적이다.

2023년 중국의 인기 스탠드업 코미디언 리하오시가 인민해방군을 자기 반려견들이 다람쥐를 쫓는 모습에 빗댄 농담을 하자 중국 정부는 코미디 산업에 대한 전면 탄압에 나섰다. 시진핑이 군부대 연설에서 했던 말을 활용한 리하오시는 구금되었고, 소속사는 한화 27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을 뿐만 아니라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공연을 금지당했다. 이는 중국에서 인기 문화 산업으로 성장 중이었던 스탠드업 코미디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관객들은 검열관에게 공연 몇 주 전에 대본을 제출해서 승인받은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들의 통제 강박은 위안화의 위상도 제한한다. 위안화가 전 세계 결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안팎으로 10년 넘게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베이징은 자본 유출을 엄격하게 막고 있으며, 특히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뒤이은 글로벌 금융 위기는 중국이 “미국처럼 되면 안 된다”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정”에 집착하는 중국 지도자들에게 미국의 시스템이 최선이 아니라는 자각이 새삼스럽게 찾아온 듯하다.

2024년에는 15,000명 이상의 백만장자가 중국을 떠나 이민자의 삶을 택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증가세다. 시진핑의 중국을 탈출하려는 이들은 크게 두 종류다. 부유층과 뛰어난 창의력을 보유한 계층. 2024년 중국 과학기술부는 공식 논평에서 “(미-중 갈등은) 본질적으로 과학 기술을 놓고 벌어지는 패권 경쟁이며, 이 경쟁에서 누가 승리하는지는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 체제가 우월한지를 증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 기술 패권 경쟁이 반드시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는 않는다. 당장 냉전 시대 소련만 보아도, 과학 기술 경쟁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한때는 앞서나가기까지 했지만, 한 국가의 번영이라는 측면에서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뉴욕시는 중국 밖에서 중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바로 여기가 미국과 중국의 정치 체제가 극적으로 마주 보는 지점이다. 미국의 정치는 의회(입법)와 대법원(사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즉 정책 결정에만 모두의 관심이 쏠릴 뿐 정작 정책 실행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연방대법원은 정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최전방이며, 다른 국가들은 유권자나 규제 기관(행정)에 맡기는 문제를 판사들에게 맡긴다. 백악관이 선을 넘으면 미국인들은 연방대법원을 바라본다.

반대로 중국은 정책 결정 과정이 상당 부분 비밀리에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결과(실행)를 국민에게 떠넘긴다. 중국은 입헌주의를 내다버린 지 오래이다. 시진핑의 3연임을 허용하기 위해 헌법을 고쳤고, 중국 최고인민법원장이 앞장 서서 사법 독립이라는 개념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시진핑의 지위는 법보다 위에 있음이 명백해졌는데, 이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더욱 문제가 복잡해진다. 고령의 독재자들은 쉽게 짜증을 내는데, 시진핑은 이제 80대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 여기까지는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 정치에 관심이 높은 독자라면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다. 중국의 약점이자 미국의 장점은 다자주의와 다양성,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2기의 미국은 이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중국의 약점들을, 트럼프의 미국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 분야를 억압하고, 정부 보조금을 무기 삼아 학문의 최전선인 대학을 길들인다. 자신을 풍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폐지하도록 방송국을 협박한다. 미국의 통화정책, 나아가 전 세계 자본시장을 조율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뒤흔들고 압력을 가한다.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같은 테크노크라트—중국식으로 말하면 ‘공돌이 엘리트’들—이 정권의 뒷배를 자처한다. 대법원을 자기 입맛에 맞는 판사들로 채워 넣는다. 2번 이상의 임기를 금지한 헌법을 무시하고 지지자들에게 공공연하게 3선 출마를 언급한다. 1953년생인 시진핑은 70대 초반이지만, 1946년생인 트럼프는 이미 내년이면 80세가 된다. 중국이 가장 무서워하고 부러워하는 미국의 힘—동맹을 무역 전쟁으로 산산조각내고 우방국들에게서 깡패처럼 돈을 뜯어낸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150여 개국에 1조 달러 규모의 차관을 공급하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대형 인프라 건설을 주도하고 있지만, 해당 국가들이 과연 중국의 '동맹'이냐고 질문한다면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기 쉽지 않다. 일대일로를 통해 현지 인력에게 고용과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프로젝트에 필요한 전체 노동력을 중국에서 조달하여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여러 국가들이 이탈하거나 사업을 축소했다.
2017년 일대일로 포럼에서 시진핑은 120명이 넘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불과 6년 후인 2023년 같은 포럼에서는 26명만이 포즈를 취했다. 중국은 서방의 선진국들 대신 개발도상국들과 연대하는 판을 짜려 했지만, 제조업 수출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을 자기편으로 볼까? 국가 보조와 덤핑 수출로 중국이 개발도상국들의 사다리를 걷어차면서 이미 수많은 국가들이 항의하고 있다.
2017년과 2023년의 일대일로 포럼 기념 사진

이 책은 2025년 여름 출간되었다. 저자가 원고를 집필한 시기는 바이든 정권 후반부였고,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권을 각각 다른 이유(무분별하게 때려 부수는 우파와 절차에 집착해서 뭐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를 못하는 좌파)로 비판하기는 했지만, 트럼프의 재선은 물론 2기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빛의 속도로 미국을 망가뜨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거의 작두 타는 수준으로 적중한 예언(?)이 있다. 현재 미국 정부의 어마어마한 비효율의 원인은 산더미 같은 절차인데, 미국 우파들은 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지하거나 눈을 감고 “공무원들의 게으름”에 화살을 돌린다고 비판한 것이다. 원인을 완전히 잘못 짚는데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리가 없다. 이 책이 한창 인쇄소에서 찍혀 나오고 있는 중이었던 2025년 상반기 일론 머스크(처칠이 그렇게도 경고했던, 정책 결정권자 지위에 오른 또 다른 공돌이)와 그의 별동대라 할 수 있는 DOGE가 연방 정부에 대규모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며 어떤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상기해 보자.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일단 정치는 제쳐두고, 정말로 미국에 희망은 없는 걸까.

저자는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AI 데이터 센터가 아니라 연방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목공사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 일자리가 있고 생활 편의가 좋은) 도심에서 가까운 위치에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고, 이 신도시와 구도심을 잇는 지하철, 고속철도를 "덮어놓고 짓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에서 지하철 1킬로미터 구간 공사하는 데 드는 비용이 파리의 5배다. 베이징도, 서울도, 도쿄도 아니고, 파리(!)의 5배다. (1년에 휴일이 40일이 넘는 프랑스인들보다 생산성이 5배나 떨어진다면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는 2배면 스캔들이 되지만 5배면 그냥 숫자가 되어버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자조한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원인은 공기(工期) 지연이다. 왜 공기가 늘어날까. 첫 번째로 미국은 변호사들이 정치와 행정을 장악한, '절차주의(proceduralism)'에 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자기네 별장이 모여있는 뉴잉글랜드 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망친다며 환경 파괴를 이유로 풍력 발전 시설 건설에 반대한다. 이렇게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10년씩 이어진다. 그 사이에 미국의 탈탄소정책은 망테크를 탄다.)

심각한 상태에 빠진 뉴욕의 대중교통을 다룬 기사 속 이미지

두 번째 이유는 몸 쓰는 일에 숙련된 노동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노가다”를 무시하면 안 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하루아침에 배워서 흉내 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 숙련된 노동자들이 없으면 길러야 한다. 그러려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공교육이다.

유럽과 일본, 한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선진국 저성장 경제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공교육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교육이 무너졌다고들 난리지만, 여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질 좋은 공립학교들이 있고,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도 어떻게든 장학금과 알바를 병행하며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미국은 이게 완전히 불가능해진 나라다.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 졸업도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문법에 맞는 언어 구사 능력과 기초적인 연산 능력,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갖춰야 숙련 노동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정권은 연방 교육부를 없애고, 반지성주의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백신음모론자를 국민 보건정책의 최고 결정권자로 임명했다. 하지만 화이트칼라 중산층과 고소득층은 여전히 전부 백신을 맞는다. 트럼프의 말을 믿고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은 블루칼라 저소득층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일하는 현장은 이번 겨울 어떻게 될까? 미국은 트럼프 1기 정권 말이던 2019-2020년 역사상 최악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경험했다. 그리고 2기 첫해인 올해는 이를 뛰어넘는 또 다른 최악의 시즌이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숙련 노동자들을 수입하는 것이다. 높은 급여를 주고, 숙련 노동자들을 수출해 주는 나라들—모두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이다—에는 비자와 무역 혜택을 주어야 한다. 이 숙련 노동자들이 현장의 시스템을 짜고 비숙련 미국인 노동자들에게 실무지식을 과외 선생님처럼 하나하나 전수해 줘야 한다. 물론 지금의 미국은 그 과외선생님들에게 수갑 채우고 사슬로 묶어서 내쫓고 있다. 답이 있다는 것이 미국의 희망이지만, 그 답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2025년 미국의 비극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2019)는 문을 닫은 미국의 공장을 인수한 중국 기업이 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해 훈련 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여기에 또 다른 태풍의 눈으로 AI를 지목한다. 미국은 1990년대 케이블 TV, 2000년대 인터넷, 2010년대 소셜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일반 대중과 엘리트의 격차를 확대하며 불만을 증폭시켜 온 미디어의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 AI의 파급 효과는 과거의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희망은 소셜 미디어와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내 평범한 미국인들의 내부 분열을 극도로 심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 중국의 AI 기업들은 자사가 개발한 AI 엔진들을 모두 오픈소스로 외부에 개방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은, 여전히 중국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 우위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미국은 천재들이 별처럼 빛나는 순간에 열광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미국의 천재들이 만든 혁신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결국 또다시 중국 기업들, 그리고 그 뒤에서 웃고 있는 중국 지도부일 것이다. 🦦


이 책의 한국어 판을 출간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오터레터 독자님들께 5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세요. 오는 월요일(9일) 오전에 당첨자를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