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엔지니어 ①
• 댓글 2개 보기오늘은 외부 저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쓰신 박누리(Angela Park)님은 업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시며 틈틈이 뉴스레터 커피팟에서 '안젤라의 매크로 시선'을 연재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2023년에는 저와 함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연설을 모은 책 '우크라이나에서 온 메시지'를 번역하셨고, 작년에는 '중국필패'를 번역하기도 하셨죠. 누리님이 오터레터에 기고하신 '재판대에 선 역사'를 소개하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한국에 아직 번역되지 않았거나, 번역되기 힘들 것 같은 책을 많이 읽으시기 때문에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흡수하셔서 함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제게 큰 도움이 되는 분입니다.
오늘 소개해주실 책은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의 후버연구소에서 리서치 펠로우로 있는 댄 왕(Dan Wang)이 쓴 'Breakneck: The Rise of China’s Techno-Industrial Leviathan'입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이민해서 캐나다 시민이 되었고, 미국에서 교육받은 저자가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일하면서 이해하게 된 두 나라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고, 박누리님의 글을 직접 읽어보시죠.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발행인 박상현

나는 작년에 '중국필패'를 번역하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미-중 관계를 다룬 책들 중에 의외로 알맹이 있는 책을 건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의외로 한국인들의 지적 소양이 평균적으로 상당히 높아서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중국을 잘 모른다. 아니, 아시아 자체를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 저자가 미국인 독자를 상대로 중국이나 미-중 관계에 대해서 쓰는 책은 아예 학술서, 전문 서적이 되거나, 한국인 기준으로는 '아니 뭐 이렇게 다 아는 이야기를 또 책으로 쓰고 있어?' 싶은, 그저 그런 대중서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중국필패'가 한국에서 대중서로 나왔지만 좀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던 것은 미국에서는 전문서에 가까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일단 펴낸 곳이 아무개 University Press, 즉 대학교 출판국이라면 평범한 미국인 독자가 사서 읽는 책은 아니다.)
캐나다 이민 1.5세로 십 대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성장한 중국계 저자 댄 왕의 <Breakneck>은 대중서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다는 느낌 없이 상당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꽤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책 후보작에 올랐고, 현재 국내에서 번역 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쯤에는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90%는 중국을, 나머지 10%는 바로 그 중국의 정확한 미러 이미지(mirror image)인 미국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아직 30대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2010년대를 베이징에서 서방 고객들을 위한 리서치 컨설턴트로 일했다. 당시 그의 업무는 중국 정부의 행보를 보고 향후 중국의 정책 방향성을 예측 분석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법돌이(변호사)-공돌이(엔지니어)"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한다. 보통 이런 방식은 과도한 단순화와 끼워 맞추기로 흐르기 쉽지만, 저자는 이분법을 쓰면서도 비교적 균형잡힌 서술을 유지한다. 변호사-엔지니어의 특성은 궁극적으로는 '아규어'(arguer, 태클을 거는 사람)와 '빌더'(builder,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빌더인 중국은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 '만들기'에 대한 집착은 작게는 아이폰 부품부터, 크게는 중국에서도 가장 시골 중의 시골인 구이저우성의 쓸데없이 거대한 교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발현한다. 중국, 더 정확하게는 중국의 지도부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산업을 경멸한다. 중국에서 금융업, 서비스업이 성장하지 못하거나, 성장하는 순간 바로 정부가 찍어 누르는 이유이다. “하드”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프트” 산업들은 인민들을 게으르고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이 암호화폐와 메타버스에 열광하며 인재와 자금을 쏟아붓는 것이, 중국의 눈에는 국가 경제의 최전선을 국가의 이익이 아닌 투자자들의 변덕에 던져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반면, 미국에서 사회 지도층에 진입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코스는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부통령인 J.D. 밴스만 해도 그렇다. 출신 배경이 아무리 하찮아도 어찌 됐든 이 트랙만 타면 사회 지도층으로의 문이 열린다. 법조계 경력을 계속 추구하든, 정계나 산업계로 나가든 변호사들에 대한 수요는 무한하고, 그만큼 공급도 어마어마하다.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변호사 수가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다.
미국 의회 의원의 최소 절반은 로스쿨 출신이고, 1984년부터 2020년까지 민주당의 대통령-부통령 후보 전원이 변호사였다. 이공계 출신은 소수에 불과하다–지난 세기에 미국이 배출한 이공계 출신 대통령은 딱 2명이었다. 대학에서 광산지질학을 전공하고—원래는 기계공학도였으나 전공을 바꿨다—광산 산업으로 큰돈을 번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와 조지아 공대와 미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핵잠수함에서 기술 장교로 복무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정치적 재앙급의 임기를 보냈다는 것 정도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에서 사회 지도층이 되려면 공대를 나와야 한다. 지금 중국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의 상위 요직은 모조리 엔지니어 출신이다. (얼마 전에 “공대로 쏠리는 중국, 의대로 쏠리는 한국”이라는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었는데, 내가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성급한 이분법이다.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이 공대를 선호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이유와 정확하게 같다. 중국에서 의사는 박봉에 업무량은 많은 사실상의 공무원으로, 금전적, 사회적 메리트가 없는 직업이다.)

하지만 공대 출신이 가진 문제가 있다. 세상만사를 숫자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과학은 정책 결정자들이 찾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하지만 절대로 정책 결정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science should be on tap, not on top)”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말이 가장 극적인 형태로 증명된 사례가 바로 중국이다. 엔지니어들이 국가 대계를 “숫자로만” 짤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를 보여주는 가장 악명높은 사례가 바로 1980년대 한 자녀 정책이다.
한 자녀 정책을 주도한 이는 요즘 핫한 인공지능의 전신격인 학문이라 할 수 있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를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군사물리학자 쑹젠이었다. 쑹젠은 미사일 로켓 로켓 궤적을 계산하는 선형 모델을 중국의 인구 예측에 그대로 적용했고, 중국이 30억 인구를 먹여 살리느라 허덕이다 주저앉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쑹젠이 고안해 낸 한자녀 정책은 그 발상만큼이나 실행 역시 '숫자 중심'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지방 공무원들에게 낙태, 불임수술 건수를 성과지표로 활용하면서 수많은 중국 여성이 강제로 끌려가 낙태 수술과 자궁절제술을 받았다. 심지어 6개월 이후 후기 임산부들조차 이러한 “성과지표”를 채우기 위해 낙태를 강요당했고 특히 시골에서는 낙후한 의료 인프라로 인해 수많은 임산부가 태아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당시 중국 내에서도 강력한 한 자녀 정책에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경제학자들과 인구학자들, 사회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나라들의 선례를 볼 때 도시화, 산업화가 빨라지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면 출생률은 자연히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중국이 본격적으로 한자녀 정책을 도입할 당시 중국의 출생률은 2명대 초반에 불과했고, 도시 출생률은 이보다 더 낮았다.) 이들은 이런 과격한 한 자녀 정책이 향후 소비 인구 감소와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심지어 군부조차 향후 신병 모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의 주장은 “나약한 문돌이들의 불평불만” 내지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막연한 예상”으로 치부되어 입막음 당했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여아 낙태가 극성을 부렸고 한 자녀 정책이 가장 가열차게 실행되었던 1983년~1992년생들의 성비는 무려 120에 육박한다. 이 기간 동안 최소 4천만 명의 여아 낙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후 중국의 출생률이 급감하면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데, 아무리 출생률을 높이려고 해도 가임기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여전히 공대 출신들로 가득한) 중국 지도부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을까?
이번엔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닦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임산부들을 잡아 강제로 낙태 수술대 위로 올려놓던 지역 공무원들이 이제는 전화를 해서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 언제 첫아이를 낳을 거냐, 둘째는 왜 안 낳느냐 괴롭힌다. 많으면 줄인다, 부족하면 낳는다. 이러한 마인드 속에 그 숫자 하나하나가, 낳는 이도, 태어나는 이도, 한 명의 '인간'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철학은 코비드19 대책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바로 제로 코로나(Zero-COVID) 정책이다. 바이러스 감염자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누가 보아도 황당한 정책이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수년간 지속되며 중국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다. 중국 정부는 인구 2천5백만의 상하이시 전체를 아무런 사전 예고나 대책도 없이 무려 2개월간 봉쇄했다.
'바이러스는 사람이 옮기는 것이니,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 하려면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과학적인(?) 논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도 정책의 대상이 '인간'의 생각은 없었다.

봉쇄 전날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상하이 시민들은 봉쇄 기간에 대비한 식품과 생필품을 미리 구입할 수 없었고, 특히 어린아이와 병자가 있는 집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아끼기 위해 부모들은 굶주렸다. 코로나19와는 관계없는 기존의 다른 질환(심장, 뇌혈관, 암 등)으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들조차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망한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사례들은 외부에 공개되지도, 통계가 발표되지도 않았다. 시민들이 한밤중에 불이 꺼진 아파트 발코니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의 소극적인 저항 행위를 하자 중국 정부는 드론을 보내 통제했다.
자, 그렇다면 중국의 정확한 대척점에 있는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변호사와 엔지니어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