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소식을 들으셨겠지만 저의 두 번째 책,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이 나왔습니다. 이 책을 홍보하는 인터뷰 형식의 글을 대형 서점의 채널에 게재하기로 했는데, 출판사에게 받은 질문이 좋아서 꽤 열심히 답을 써봤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라고 두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먼저 예스24의 채널예스 인터뷰입니다.

그리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오터레터 독자들께 책 10권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한국 시간으로 6월 26일 자정까지 댓글을 적어주신 분들 중에서 추첨을 하겠습니다. 물론 사서 보셔도 좋습니다 :^) 오터레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 장담합니다 :^)

이 사진은 이 책의 첫 독자이신 장성환 디자이너께서 찍어주셨습니다.

'페이스북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표현을 듣고 계시는데요.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얼마나 많이 다르던가요? 이 책은 그동안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한 권을 쓰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형태로 나온다는 사실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한 페이스북에 쓰는 글과 종이로 나오면 수정이 불가능한 책은 다르니까요. '이제 원고를 넘기고 나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기록이 된다'는 건 독자와 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죠. 그런 점에서 소셜미디어에서의 글쓰기가 전통적인 글쓰기에 비해 얼마나 많이 다른지 실감하게 되었어요.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냥 아는 것과 그 부담을 경험해보는 일은 다릅니다.

반면에 글을 쓰고 난 후에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소셜미디어에 비해 종이책은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듣거나 온라인에서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의 반응을 걱정해야 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 책을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읽게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어요. 어느 누가 읽고 나서 책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소셜미디어의 댓글에서처럼 제가 설명, 해명을 할 수 없으니까요.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이라는 제목이 독특하고 매력적입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저자 소개에 따르면, '따스하면서도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듣고 계시는데 ‘다정함’과 연결 지어 생각되네요. 그 제목은 사실 ‘다정한'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어요. 출판사에서 제안해주신 제목 중에 이 제목이 있어서 “제 글이 솔직히 다정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지 않나요?”라고 답장을 보냈어요. 그런데 편집자님께서 “그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페이스북이나 다른 곳에 제가 쓰는 글에서 독자들은 그렇게 따스함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 그렇게 느끼신다면 제가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가 있기는 합니다. 이제까지 써놓은 글들을 돌아보면 그런 태도가 드러나는데, 저는 약자에 대해서는 평등을 넘어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자는 이미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기준을 제시하면 편견을 이어 나가는 거니까요. 반면 강자에 대해서는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저의 태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온라인에서 종종 만납니다. 이들의 반대 의견에 어떻게 대응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동의도 얻으려면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훈련하는 곳이 제게는 소셜미디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글에 ‘객관적'이라는 설명이 붙을 수 있다면 아마 그 때문 아닐까요?

부제는 ‘일상에서 발견한 31가지 미술사의 풍경들’입니다. 역사가 한 나라를 아는 지름길이라면, 미술의 역사인 미술사의 쓸모는 무엇인가요? 미술사는 미술작품의 역사라기보다는 시각적 표현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시각적 표현이라는 건 인간이 외부 세계, 혹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자신이 느낀 방식, 생각한 방식으로 해석해낸 것이죠. 따라서 미술의 역사는 인류가 해온 '생각'의 역사입니다. 다만 글이나 말(구전)로 표현된 역사와 달리 훨씬 더 직관적으로 표현되고 이해되죠.

물론 이런 직관적인 표현을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언어로 표현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되면 수백,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5백년 전에 기록된 문서에 당시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림이나 조각을 보는 순간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사는 우리의 과거를, 혹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책에는 미술관의 작품도 나오지만, 길거리의 건축물도 나오고 홍콩 시위의 조각상도 나와서 독특했어요. 이런 다양한 소재들을 어떻게 찾으셨나요? 직업 때문에 글을 꾸준히 써야 하는 사람들은 사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글을 쓰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지는 않아도 항상 소재를 찾고 있고, 그렇게 떠오른 소재를 어떻게 발전시키는 게 좋을지를 항상 생각합니다.

제가 원래 뉴스를 좋아하지만 글을 꾸준히 쓰면서부터는 수동적인 뉴스 읽기, 듣기가 아니라 능동적인 뉴스 섭취를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흥미로운 소식, 글로 발전시킬 만한 뉴스를 들으면 뉴스에서 언급한 발표 자료나 연구를 찾아보고, 관련한 다른 글을 찾아서 처음 들었던 소재(뉴스)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죠. 물론 그렇게 확인해본 후 버려지는 소재도 많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기억 어딘가에 남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전혀 다른 글을 준비하다가 다시 떠오를 때가 있어요. 글의 주제로 사용되지 않아도 흥미로운 사례나 비유 등으로 이용하는 거죠.

디지털이 실물을 모사하는 ‘스큐어모픽’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메모 앱의 경우, 실물 노트의 이미지를 따라 하고 있네요.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엄밀하게 디자인사와 미술사는 다른 영역이지만, 미술사에는 디자인의 역사가 종종 들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과 별개로 저의 개인적인 관심사입니다. 좋은 디자인은 그 자체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지만, 제게는 그 디자인을 만들어낸 디자이너가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거기에 도달했는지를 추론하는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아주 오래된 얘기지만 공중전화 카드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카드에는 한쪽 모서리가 살짝 잘려있었죠. 왜 그런 디자인을 했는지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지만 그냥 보기 좋으라고 만들었을 리는 없었습니다. 비용이 드는 쓸데없는 공정을 추가되는 일이니까요. 그걸 사용하다가 어느 날 깨달았는데 그건 시각 장애인을 위한 거였어요. 신용카드처럼 한쪽에 마그네틱 라인이 있기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만 넣어야 하는데 그 잘린 모서리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고 공중전화기에 넣으면 제대로 넣게 되니까요.

이건 하나의 예이지만, 좋은 디자인은 그렇게 디자이너의 사고 과정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언어로 기록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로서 거꾸로 그들의 사고를 추적해보는 재미가 큽니다.

책 속 QR 코드를 찍어보니, 하얀 게 아니라 원래대로 화려하게 채색된 그리스 조각상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실제로 광화문 동상들이 채색된 것을 상상해보셨나요? 네, 그냥 모습만 상상만 해본 게 아니라 이순신 장군상을 절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처럼 칠해놓았을 때 언론이,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도 상상해봤습니다. 그런데 후자가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한 상상이었어요. 채색된 동상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죠. 사천왕이 원래 갑옷을 입고 칼을 든 모습이니까 이순신 장군상이 그렇게 칠해진 모습은 누구나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절에서 보면서 별생각 없이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도 이순신 장군을 그렇게 칠해놓으면 보나 마나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했을 게 분명합니다. 그건 수영복을 입고 해변에 앉아 있는 사람과 똑같은 차림으로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에 대한 반응의 차이와 다르지 않겠죠. 수영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입을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채색을 해야 할 동상과 하면 안 되는 동상을 구분할 겁니다. 그런데 그런 구분(절과 광장, 가상의 인물과 실존 인물)은 어떻게 내려진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해보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끝으로, 특히 어떤 독자분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라시나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시각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 모두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시각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당연히 관심을 갖고 읽으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 시각적인 분석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부담감 없이 글을 따라가면서 흥미가 생길 수 있도록 각 글의 도입부를 신경 썼습니다.

시각문화를 꼭 알아야 하느냐,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뭐 어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저분한 간판, 멋진 관광지에 지방자치단체가 세우는 원색의 유치한 마스코트처럼 우리가 매일매일 접하는 시각 공해는 이런 쪽의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죠. 이건 마치 환경 법규를 모르는 사람이 공장을 세우고 공해물질을 배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많은 사람이 시각문화에 좀 더 익숙해지고 민감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이미지를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