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팀 쿡이 인터뷰이로 등장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세계 최고 기업의 CEO가 30분이라는 시간을 내게 하는 건 보통 진행자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카라 스위셔는 보통 진행자가 아니다).

애플은 요즘 페이스북과 전쟁, 정확히 말하면 홍보전쟁을 치르고 있다. 애플의 모바일 기기에 도입될 ATT(App Tracking Transparency)가 페이스북의 심장, 즉 수익모델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고, 그래서 페이스북이 격렬하게 반대하며 작년 말부터 두 기업 사이에는 사나운 말이 오가고 있다. 게다가 애플은 앱스토어의 문제로 에픽 게임즈와의 재판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쿡은 일런 머스크처럼 미디어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쇼맨 스타일의 경영인이 아니다. 따라서 팀 쿡의 팟캐스트 출연은 애플의 필요 때문이다. (바쁜 사람들은 이유가 없이 미디어에 출연하는 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명인이 미디어에 출연했을 때는 팔 책이나 물건, 퍼뜨려야 할 내러티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팀 쿡은 아주 말을 잘했다. 피해야 할 말은 잘 피했지만 무조건 방어적으로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페이스북, 에픽 게임즈, 그리고 미국 정부와 관련해서 민감한 이슈가 나왔을 때 애플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면서도 모든 주장을 '견해(opinion)'가 아닌 '원칙(principle)'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그 원칙이라는 건 애플에 유리한 원칙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게 전달하는 논리를 잘 갖추고 나왔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통해 개발자들에게서 폭리를 취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앱스토어에 올라온 앱들 중 85%는 전혀 돈(커미션)을 내지 않으며, 돈을 내는 앱 개발사들도 다양한 할인을 적용하고 있고, 애플의 가격정책은 일관되게 한 방향, 즉 내려가는 방향으로만 진행되고 설명하는 식이다. 개인정보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모든 것을 원칙과 정책(policy)로 설명하고 정치(politics)가 아님을 설득력있게 전달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나 일런 머스크 처럼 듣는 사람들의 현혹시키는 재주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애플의 CEO를 맡은 후 10년 동안 기업 가치를 7배 가까이 키워놓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말은 실적이 뒷받침될 때 힘을 얻는다. 이건희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경청했던 게 아니라, 삼성의 실적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의 말을 한 단어도 빼놓지 않고 듣고 분석했던 거다.

게다가 쿡은 자신이 이뤄놓은 실적을 바탕으로 원칙을 논할 수 있는 느긋한 위치에 와 있다. 기업이 위기에 처한 다급한 경영자가 누릴 수 없는 럭셔리이지만, 쿡은 마치 애플이 원칙을 따랐기 때문에 좋은 실적이 날 수 있었던 처럼 포장해낸다. 실리콘밸리에서 이걸 할 수 있는 CEO는 아마 팀 쿡 한 사람 뿐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