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해석 ①
• 댓글 1개 보기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는 패했다. 2016년의 힐러리 클린턴은 선거인단의 수에서 패했어도, 전국 유권자들에게서는 더 많은 표(popular votes)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지만, 2024년의 해리스는 유권자들에게서 받은 표도 도널드 트럼프에 뒤졌다. 명백한 패배다.
패배가 분명할 때 반응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기가 패한 현실과 선거 제도를 부정하고 끝까지 자기가 이겼다고 거짓말을 하는 트럼프식 반응이 있고, 졌지만 국민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인정하는 정상적인 반응이 있다. 해리스는 후자에 해당한다. 전자의 경우 자기반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만, 후자라면 우리가 왜 패했는지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민주당과 지지자들은 선거에 패한 다음 날 아침부터 그 작업을 시작했다.
선거에 패한 진영에서 원인을 찾을 때는 아름다운 장면을 기대하기 힘들다.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된 부분에는 애초에 그걸 옹호하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자기의 판단 착오였음을 인정할 수도 있지만,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서로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비난전(blame game)이 시작된다. (지금 구글에서 "blame game"을 검색하면 온통 민주당 뉴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아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의 성장통이다.
그렇게 지적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바이든이 취임 때 했던 말을 번복하고 재선에 나섰다가 토론회에서 무너진 사실은 변명할 수 없는 실책이다. 뒤늦게 후보가 된 해리스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최대한 트럼프를 추적했지만 가장 성공적인 시점에서도 박빙의 승부 이상을 예상할 수 없었다. 해리스와 민주당이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 그리고 민주주의의 수호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대다수 유권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놓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리스가 경제를 이야기하지 않은 건 아니다.)
후보가 바꿀 수 없는 외적인 요인들도 지적된다. 가령 바이든이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그렇고, 높은 인플레이션은 현 정권에 항상 불리하다는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오터레터의 뉴스레터 Daily Catch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앨런 릭트먼은 "단기 및 장기 경제 상황이 좋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에 자기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경제 상황은 좋아도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집권당에 불리하다'는 부가 조항이 있어야 할까? 그렇게 예측 알고리듬을 만드는 작업은 누군가는 하고 있겠지만, 릭트먼처럼 수십 년 동안 사용해 온 방법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이번 선거가 블랙 스완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측 알고리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멀라 해리스가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도 후보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소다. 이유야 어쨌든 미국 유권자들은 여성 대통령 후보를 두 번이나 거부했다. 많은 여성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 그것도 여성의 권리가 달린 선거에서 그 권리를 빼앗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통해 '미국은 여성 대통령을 뽑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다. 두 번의 시도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여기에 선거 민주주의의 한계가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나오는 데이터로 가설을 검증하는 데는 제약이 많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후보들은 여론 조사 데이터를 통해 도출한 가정을 바탕으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의 착각
선거에 임하는 민주당에는 2016년에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여러 복잡한 원인이 뒤섞여 일어난 아웃라이어(outlier)라는 가설이 있었다. 이 가설이 틀렸다는 건 선거 이전에 이미 밝혀졌다.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이 아무리 민주주의 수호와 여성의 권리를 강조해도 해리스의 승률은 50%를 끝까지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2016년 승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닌 셈이다.
민주당이 가졌던 두 번째 가설은 이번 선거는 여성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선거이고, 적어도 과반수의 유권자가 이를 위해 해리스를 찍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거 결과를 보면 이 가설도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유권자들에게는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것보다, 트럼프가 망가뜨릴 민주주의 제도를 수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 게 과연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살펴 보지 않고 유권자가 틀렸다고 하는 건, 큰 변화의 흐름을 놓치는 것일 수 있다.
선거 결과를 놓고 쏟아지는 대동소이한 주장들 중에서 눈에 띄는 주장을 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뉴욕타임즈의 애스테드 헌돈(Astead W. Herndon)과 'Notes from the Middleground'라는 뉴스레터를 쓰는 데이먼 링커(Damon Linker), 더네이션(The Nation)의 지트 히어(Jeet Heer), 세 사람이다. 이들의 분석은 디테일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이번 패배가 2016년의 패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민주당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일치한다.
애스테드 헌돈은 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당이 갖게 된 중요한 착각을 지적한다. 미국의 인종 구성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당은 계속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착각이다. 히스패닉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흑인과 다른 인종 그룹의 성장을 고려하면 미국 유권자들 중 백인의 비중은 절반 이하로 내려가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인구학적 팩트다) 보수 백인을 주요 지지자로 데리고 있는 공화당은 결국 힘을 잃을 것이고, 비백인 및 진보적인 백인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은 앞으로 영원히 승리할 거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물론 민주당의 교만이었지만, 공화당도 한때 비슷한 착각을 했었다. 2000년에 조지 W. 부시가 승리한 후, 공화당은 사실상 영구 집권을 노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칼 로브 같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정치적 전망은 항상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하고 읽어야 한다. 기자들의 진단과 전망을 설명하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고에서 나온 유명한 주장이 "민주당은 전체 득표수(popular votes)에서는 지지 않는다. 공화당 후보는 그저 선거인단에서 앞설 뿐"이라는 것이고, 직접 선거가 아닌 선거인단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백인 유권자들이 과다 대표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백인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하는, 사실상의 인종 차별이라는 주장이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 주장의 유효기간은 지난 수요일 오전까지였다. 서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트럼프는 전체 득표수에서도 해리스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쪼그라들 거라는 민주당의 전망은 어떤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 시절의 공화당과 그 정당을 지지하던 "백인 유권자들"은 이제 존재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등장해서 공화당을 트럼프당으로 바꾸리라는 기대는—심지어 트럼프 본인도—하지 못했다.
흑인인 헌돈 기자는 더 나아가 비백인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계속해서 지지할 거라는 가정은 인종주의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인종에 기반한 편견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그의 말이 맞다. 흑인 중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히스패닉 유권자들 중 트럼프 지지는 빠르게 증가해 민주당에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경우 다음번 선거에서는 공화당을 더 많이 지지하는 유권자 그룹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2016년의 결과가 충격이었다면, 2024년의 결과는 좌절에 가깝다. 트럼프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몰랐기 때문에 기대와 착각 속에서 그를 뽑았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미국 유권자들은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낱낱이 알고도 그를 뽑았다. 뉴욕타임즈의 지적처럼 트럼프에 대한 미국 유권자의 호감도(2016년에는 낮았다)는 과거에 비해 크게 좋아졌다.
유권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트럼프의 거짓말에 속았다거나, 팟캐스트를 통한 프로파간다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민주당에 좋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도, 공화당의 이번 승리는 그런 유권자들만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세운 가설이 틀린 것으로 민주당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트럼프가 두 번 당선되는 것을 보고도 그게 유권자들이 속은 결과라고 판단한다면, 민주당은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실 헌돈 기자는 민주당에 훨씬 더 비판적이다. 그의 비판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가 되는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터레터의 독자 중에는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 소개할 기자들의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분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전지한 신이 아니라면, 다양한 시각을 들어 보는 게 중요하다.
'패배의 해석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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