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수 없는 제안
• 댓글 남기기요즘 아마존에 불리한 소식들이 줄을 잇는다. 뉴욕타임즈에서는 아마존의 인사관리(HR)에 대한 탐사 취재 기사를 냈고 (여기에 대해서는 이번 주말에 오터레터에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예정이니 기대하시길) 뒤이어 아마존 독점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해온 "아마존 저격수" 콜럼비아 대학교의 교수 리나 칸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수장이 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FTC의 위원이 된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32세의 나이에 위원장이 될 줄은 몰랐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발표였다. 그리고 아마존의 '성평등 포장' 노력을 비판한 글부터 아마존의 독점을 막으라는 칼럼까지 다양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어제(화요일)에 나온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또 다른 차원의 폭로였다. 뉴욕타임즈가 아마존의 노동문제를 다뤘다면,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아마존의 비즈니스 관행에 관한 내용으로, 아마존이 막강한 규모와 구매력을 이용해 작은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는, 독점혐의가 짙게 밴 폭로 기사다.
너무 잘 팔면 안 되는 장사
위의 기사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마존의 기업 사들이기 관행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온라인 장터(marketplace)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인 미국인들을 쥐고 있는 아마존은 모든 상인이 진출하고 싶은, 아니 진출해야만 하는 거대한 장터다. 여기에서 물건을 팔지 못하면 큰 시장을 놓치는 거다.
가령 나는 최근에 내 자전거에 부착할 물병 거치대를 샀다. 가격도 두 개에 13달러로 저렴했지만, 이건 실패하기 힘든 종류의 구매다. 비슷하게 생긴 제품들이 언뜻 보기에도 수십 종이 되는데, 리뷰는 다들 좋다.
나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제품이지만, 솔직히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의 제품을 만들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니 많은 기업이 쉽게 만들어서 팔려는 제품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별 제품이 특별히 차별화되지 않는 제품군에서는 (품질에 문제가 없고 구매한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한다고 가정하면) 결국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 소비자의 눈에 띄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아마존의 이 제품군에서 별점이 낮은 제품을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자 리뷰 상단에 올라오려면 결국 리뷰 수가 많아야 한다. 똑같이 4.7개의 별점을 받았어도 200개의 리뷰와 2,000개의 리뷰는 무게가 다르다. 물론 리뷰 수가 많아지려면 많이 팔려야 하고, 많이 팔리려면? 상단에 올라와야 한다. 이건 취직을 하려면 직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직장 경험이 있으려면 취직을 해야 한다는 얘기와 비슷한 '캐치-22 모순'이다.
바로 이때 아마존이 도움의 손을 내민다. 아마존에 돈을 주면 눈에 잘 띄는 상단에 올려준다. 한국의 온라인 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스폰서(sponsored) 제품'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에서 자동차 트렁크에 넣는 접이식 물건 보관함(아래 사진)을 파는 포템이라는 기업은 이 품목에서 검색 1위가 될 때까지 아마존에 매월 6만 달러(약 6천 7백 만원)의 광고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광고비는 아마존이 떼어가는 수수료와 별개다. 약 25달러 가격의 이 제품이 하나 팔릴 때마다 아마존은 4달러에 가까운 돈을 가져간다. 판매 액수의 6분의 1이 매장을 제공한 플랫폼에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돈벌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월마트의 '그레이트밸류'나 '이퀘이트'처럼 아마존은 '아마존 베이식스Amazon Basics'라는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아마존은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특정 제품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 그 제품의 장점을 모은 자체 상품을 만들어 판다. 첨단 제품도 아니고 결국 전부 중국의 공장에서 위탁생산을 하는 이런 제품들은 결국 원가와 이윤의 싸움, 마케팅의 싸움이기 때문에 아마존 베이식스가 경쟁 제품을 내놓는 순간, 판매율이 급감한다.
그래서 아마존 입점 상인들 사이에서는 물건은 잘 팔아야 하지만, 너무 잘 팔면 안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아마존이 돈 냄새를 맡으면 그 제품을 카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예와 같은 제품들은 많은 기업이 인기 제품을 카피하고 경쟁한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이름 없는 없체인 경우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인 경우는 다르다.
계약조건: 거래처 주식 인수
이렇듯 자신의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로부터 이윤을 짜내는 갖은 방법을 다 연구하는 아마존은 온라인 매장 상인이 아닌 일반 거래처와의 계약에서도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발한 방법을 만들어냈는데, 그게 바로 거래처의 주식 인수다.
두말할 필요 없이 아마존은 엄청난 구매력을 가진 기업이다. 무슨 계약을 해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아마존에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려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아마존과의 계약은 그야말로 '팔자를 고치는' 수준의 횡재다. 그러니 힘있는 구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기울어진 관계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게 당연하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구매 단가를 낮추는 것이고, 가장 나쁜 관행은 구매하는 기업이나 담당자에게 뇌물을 주는 킥백kickback이다. (한국에서는 킥백을 리베이트rebate라는 합법적인 돈으로 위장해온 역사가 길다).
그런데 아마존이 불법이 아니면서 단순히 구매 단가를 낮추는 것보다 더 큰 이득을 챙길 방법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거래처의 주식을 시장가보다 낮게 구매할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warrant)'다.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의 식료품 배달부문인 아마존 프레쉬가 2016년에 공급업체인 스파르탄내쉬와 계약을 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7년 동안 스파르탄내쉬로 부터 80억 달러의 식료품을 구매할 경우 스파르탄내쉬 주식의 15%를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살 권리(=워런트)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자기네가 주식을 인수하기 전에 다른 기업이 스파트탄내쉬를 인수하려고 시도할 경우 아마존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도록 10일의 유예를 허용해야 한다는 조건도 꼼꼼하게 챙겼다.
스파르탄내쉬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인 아마존의 심기를 건드리면 공급계약이 날아갈 수도 있었고, 아마존이 기업의 대주주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기업의 이미지와 함께 주가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아마존은 스파르탄내쉬의 주식을 살 권리를 가져갔고, 앞으로 이를 최대한 행사할 경우 (블랙록BlackRock에 이어) 이 기업의 두 번째 대주주가 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아마존은 자기네가 사용하는 연료공급회사, 운송회사 등과도 이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거나 추진하고 있다.
이 기사의 많은 문단이 해당 거래처 기업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했다(declined to comment)"라는 말로 끝나는 것은 이들 계약의 성격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준다. 불법은 아니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가령 아틀라스에어라는 기업의 경우, 아마존으로부터 기업 지분의 20%, 원할 경우 10%의 추가 지분을 살 권리와 함께 아틀라스에어의 이사를 한 명 선임할 권리를 요구받았다. 아마존은 주당 $37.50에 주식을 살 권리를 보장받았고, 후에 아틀라스에어의 주식이 오른 후에 그 권리를 이용해 9%를 인수한 후 되팔아서 이익을 남겼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아틀라스에어의 주식은 $68이다). 자기네와 거래할 경우 주식이 오를 것을 아는 기업이 차액을 노리고 낮은 가격에 지분을 인수할 권리를 챙기는 것은 내부자 거래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궁극의 정치적 판단
물론 거래처 기업이 자발적으로 한 계약이라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반독점법 적용의 대표적인 케이스인 스탠더드오일(1911년에 기업 분리 판결을 받았다)이 미국 전역의 석유 기업들을 사들일 때도 엄연히 합법적인 계약이었다. 그 과정에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일삼았지만, 비도덕과 불법은 다르다. 의회가 새로운 법을 만들 때까지는 말이다. 즉, 독점을 해석하고 이를 막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결정이다. 제도의 허점, 법의 구멍을 막는 것은 정치만이 할 수 있다. 도입부에 이야기한 리나 칸 교수의 연방거래위원장 임명도 그런 정치적인 한 수다.
그런데 오늘 아마존에서 리나 칸을 상대로 일종의 '기피 신청'을 냈다. 리나 칸은 2017년에 재학 중이던 예일 법대에서 '아마존의 반독점 파라독스'라는 논문을 써서 스타가 되었고, 이 논문은 지지부진했던 빅테크 독점방지 노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칸 교수는 그 이후로도 실리콘밸리의 기업들, 특히 아마존의 독점과 관련한 주장을 꾸준히 해왔는데, 아마존은 그런 칸 교수가 아마존의 반독점 심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며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마존 측은 "아마존도 다른 모든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심사(조사)를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대기업도 공정한 조사를 받을 권리는 있다"면서 "칸 위원장의 그동안의 저술 활동과 공개 발언을 보면" 아마존을 상대로 반독점 심사를 불편부당하게 진행하기에는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방거래위원장의 발언이 공정한 심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과거의 사례를 들었다.
연방거래위원회는 즉답을 회피했지만 일단 공은 정부로 넘어갔고, 어느덧 아마존은 이번 반독점 심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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