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필드에 아이티 이민자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기존 주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문제를 전적으로 '이민자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프링필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을 유치했고, 그런 노력이 성공한 결과로 새로운 노동력이 유입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가령 현대차가 앨라배마주에, 기아차가 조지아주에 공장을 세워서 일자리가 늘어나면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업종이 생겨나고, 지역이 성장한다.

그러니까 스프링필드에서 겪는 문제의 많은 부분은 그저 붐 타운(boom town, 산업과 인구가 급작스럽게 성장한 도시)이 겪는 자연스러운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자기가 겪는 불편함을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힘들 때가 많다. 게다가 갑자기 밀려든 인구가 국적이 다른 외지인, 그것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흑인 집단이었다.

오래전에 뉴욕타임즈의 '모던 러브' 칼럼에서 중국에서 온 남자와 결혼한 미국 여성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남자는 영어도 서툴렀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교통 체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 글에서 아내는 일단정지(Stop) 표지판 앞에서 멈추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걸핏하면 중앙선을 침범해서 달리는 남편에게 미국의 교통 규칙을 이해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이야기한다. 다행히 그 커플이 살던 곳은 외지인이 드문 뉴욕주 북부의 한 마을이었지만, 만약 그 남편처럼 미국의 법과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들어온다면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그들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줄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스프링필드에 찾아온 아이티 이민자들은 운전 습관이 좋지 않았다. 본국에서 하던 대로 중앙선을 침범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위험한 운전을 했다는 게 스프링필드 주민들의 말이다. 그래도 주민들은 이를 참고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2023년) 8월, 결국 큰 사고가 났다.

중앙선을 침범한 차와 충돌해 전복한 스쿨버스 (이미지 출처: The Columbus Dispatch)

그날은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개학한 첫날이었다. 52명의 학생을 태우고 가던 스쿨버스가 지방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달려오던 미니밴과 충돌하며 전복했다. 차가 뒤집어지는 과정에서 11살짜리 아이 하나가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하고 (참고로, 미국 스쿨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쿨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없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많은 아이가 다쳤다.

사고를 낸 미니밴의 운전자는 아이티에서 온 이민자였다.

이 사고가 난 후로 스프링필드의 주민들은 시장과 공무원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 위원회(city commission)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의 발언 기록을 보면 아이티 이민자들이 중앙선을 침범해서 운전하는 일이 흔하다는 항의를 비롯해, 월세가 (우리 돈으로 200만 원이 넘게) 치솟은 문제를 지적하고, 심지어 아이티 여성들이 성매매를 해서 도시에 성병을 퍼뜨리는 거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들의 발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 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아이티 사람들은 스프링필드 인구의 절반을 넘을 겁니다. 타지 사람들이 찾아와 원래 살던 주민을 대체(replacing)하는 게 용인되는 일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이 말에서는 트럼프와 극우 세력이 말하는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 Theory)의 느낌이 난다. 이민자의 증가로 백인들이 자국에서 사회적 소수가 된다는 주장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백인이 그 말을 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원주민 (이미지 출처: History.com)

스프링필드시에서는 자기네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아이티 난민의 정착을 허락하는 건 오하이오 주정부와 연방정부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건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화가 난 주민들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으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시에서는 이 문제를 연방 정부에 알리기 위해 연방 상원에 공식 서한을 보냈고,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인 J.D. 밴스에게도 같은 서한을 보내서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이 편지를 받은 J.D. 밴스는 이를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프링필드가 자기가 자란 오하이오주 미들타운과 똑같이 생긴 마을이라며, 그곳에 지난 4년 동안 2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고 했다. 예일 법대를 나온 변호사인 밴스가 아이티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는 그 표현을 사용하기로 한 거다.

기자들과 국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J.D. 밴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가 국경 문제로 민주당을 공격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저는 그들이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오하이오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입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 나라 국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합니다." 오하이오주가 트럼프/공화당 우세주인 것을 생각하면 스프링필드 주민들 중에는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니, 완전히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스프링필드의 주민 하나가 시 위원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기 시작한 거다. 그는 "아이티 사람들이 공원에서 놀고 있는 오리를 잡아서 머리를 자르고 잡아 먹는다"고 했다. 워낙 충격적인 주장이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루머의 확산과 함께 아래 사진도 퍼져나갔다.

한 흑인이 기러기를 들고 걸어가는 모습 (이미지 출처: Reddit)

위의 사진 속 인물이 스프링필드 주민이 봤다는 "공원에서 오리를 잡아 머리를 자른" 아이티 사람일까? 아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 사진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촬영된 것이고, 사진 속 흑인이 아이티 사람이라는 증거도 없다. (일설에 따르면 그저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기러기를 들고 가는 사람의 사진일 뿐이다.) 하지만 난민, 이민자 문제에 화가 난 사람들에게 팩트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트럼프가 토론회 때 언급한 "이민자들이 애완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얘기였다. 이 얘기의 시작은 스프링필드의 한 주민이 "내 이웃집 딸의 친구가 하는 말을 들었다"면서 아이티 사람의 집 앞에 반려묘로 보이는 고양이의 사체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더라"는 말일 뿐 그걸 직접 본 사람은 찾을 수 없었고, '해리스가 놓은 덫 ②'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신고는 받은 적 없었다는 게 스프링필드시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아들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일론 머스크 같은 트럼프 주위의 인플루언서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사실인 것처럼 확산시켰고, 그들의 포스팅을 본 트럼프가 토론회 때 그런 주장을 했던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소문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며 엉뚱한 영상이 떠돌았다. 하지만 문제의 영상은 오하이오주의 캔튼에서 촬영된 것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한 주민(미국인)이 고양이를 먹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찍은 것이었다.

위의 주장들은 모두 허구임이 밝혀졌지만, 트럼프와 밴스는 사과하지 않았다. 밴스는 오히려 "허위라고 해도 중요한 이슈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퍼뜨려도 좋다"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공화당 후보들의 전국적인 공론화는 스프링필드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트럼프가 토론회에서 사회자에게 "스프링필드시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라며 팩트 체크를 당하자, 스프링필드시는 자기네들에게 불리하니까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그의 말을 들은 극우 세력은 스프링필드로 이동해 시위를 했고, 심지어 시청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해서 폭탄 테러 대응팀이 출동하는 일까지 생겼다. 스프링필드의 시장은 제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호소

토론회 직후 이 문제가 전국 뉴스가 되자 짧은 영상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트럼프와 해리스의 대선 토론회 직전에 스프링필드 시 위원회에서 한 시민의 발언을 촬영한 영상이었다. 이 영상 속 남자는 작년 여름, 아이티 운전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로 사망한 11살 짜리 아이, 에이든 클라크(Aiden Clark)의 아버지다. (옆에 함께 서있는 여성은 그의 아내로 보인다.)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아이의 아버지는 최근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필요를 느껴" 그 자리에 나왔다며,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제 아이, 에이든 클라크를 죽인 사람이 60세의 백인 남자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를 낸 사람이 백인 남자였다면 증오에 찬 사람들이 저희를 끊임없이 못살게 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인생 최악의 순간을 그렇게 자꾸 저희에게 들이미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그들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마치 사랑스러운 에이든이 마치 자기네가 가진 혐오를 고마워했을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자기들처럼 다른 사람을 혐오하기 원합니다. 그런 그들 때문에 저희는 이 자리에 나와서 제발 좀 그만하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에이든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것은, 그 목적이 어떤 것이라고 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도덕적인 문제로 말하자면 버니 모레노(Bernie Moreno, 오하이오주 공화당 정치인으로 오는 11월 선거에서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칩 로이(Chip Roy, 텍사스주 공화당 정치인으로, 극우로 분류된다), J.D. 밴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들은 제 아이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 아이의 죽음으로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 합니다. 당장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불법 이민자들이나, 국경 문제, 심지어 애완동물과 관련해서 그들의 혐오를 쏟아내는 건 그들의 자유겠지만, 저희는 그들이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의 에이든 클라크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사과할 목적이 아니라면 저희 아이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아들 에이든 클라크는 아이티에서 온 이민자에 살해당한 게 아니라, 그가 낸 사고로 사망한 것입니다. 스프링필드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슬퍼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증오에 사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에이든처럼 살고 싶다면 모든 이를 포용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되십시오. 변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타인에게 영감을 주시기 바랍니다.

스프링필드와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그 반대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에이든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입니까? 에이든이 정원 가꾸는 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십니까? 그 아이가 야드 세일에서 가격 흥정을 잘했다는 건 아시나요? 그 아이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다는 건 아시나요?

자기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만큼 힘든 감정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괴로운 건 세상을 떠난 아이에 관한 기억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일입니다. 제발 증오를 멈춰주십시오. 저는 세상을 떠난 에이든에게 '너의 명예를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지금 그걸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이든처럼 살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