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의 선거일이 40일 좀 넘게 남았다. 후보 교체로 뒤늦게 레이스에 참여한 카멀라 해리스는 놀라운 속도로 지지자를 모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둘 중 누가 당선되어도 놀랍지 않을 만큼 초박빙의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민주당 성향의 사람들은 "만약 이번에 민주당 후보가 패한다면 그거 국경 문제(border issue) 때문일 것"이라는 말을 한다. 지난 토론회에서 해리스의 전술에 말린 트럼프가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이슈가 국경 문제다.

'해리스가 놓은 덫'에서 설명했지만, 트럼프는 해리스와의 토론 중에 "이민자들이 미국인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을 잡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의 발언 직후에 토론 사회자가 그게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팩트 체크를 했지만,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는 "그 얘기가 허구라고 해도, 미국인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준다면 계속해서 퍼뜨릴 것"이라며 반성하지 않았다.

미국의 국경 문제는 정말로 심각한 걸까, 아니면 공화당의 공격 무기에 불과한 걸까? 트럼프와 밴스가 언급했던 그 소도시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올해 초 미국 국경을 향해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남미 사람들 (이미지 출처: WPRI)

올해 초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리언하트(David Leonhadt)는 미국인들이 느끼는 국경/이민자 문제를 민주당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글을 썼다. 리언하트는 민주당이 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은 원래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찬성했지만, 국경 관리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포퓰리즘에 기대어 어설프게 해결하려다가 무리수를 두면서 인권 문제를 일으켰고, 민주당이 이에 반발해 엄격한 국경 관리라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국경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경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려니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진퇴양난이었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태도로 팔짱을 끼고 있는 바이든-해리스 정부를 보는 미국 유권자 중에는 비록 어설프더라도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났다.

문제의 핵심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유입되는 난민이다. 원래 멕시코 등의 국가에서는 농번기에 미국에 와서 농장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돌아가는 형태의 계절 이동(seasonal migration)이 흔했지만,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마약 카르텔의 성장 등으로 정치적 불안을 겪게 되면서 미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유가 바뀌었다. 자국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납치와 살인의 위협에서 탈출한 '난민(refugee)'의 처지가 된 거다.

다른 많은 나라처럼 미국도 난민이 찾아오면 함부로 내쫓을 수 없다. 국경에 찾아와서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머물겠다고 신청하면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재판을 통해 공식 난민 지위를 인정할 것인지 결정하게 된다. 그러려면 미국의 법원이 난민 개개인의 사정을 듣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들어간다. 많을 때는 매일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미국의 국경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 일 년에 수십만 명이 들어온다면 미국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감당하기 힘들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그렇게 들어온 난민들을 교도소보다 열악한 환경에 수용하고, 심지어 부모와 자식을 떼어 놓는 일 처리(심지어 기록도 제대로 하지 않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아직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에 들어온 난민을 수용한 모습 (이미지 출처: The Independent)

난민 지위를 심사받기까지 몇 개월에서 1년도 넘게 걸리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들을 수용할 수도 없고, 수용소 같은 환경에 가둬 둘 근거도 없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신상 조사 등의 절차를 마치면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미국에 머무를 자격(temporary protected status, TPS)을 부여한다. TPS를 받은 사람들은 미국에서 일도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집을 살 수도 있다. 즉, 이들은 불법 이민자가 아니며, 임시적이기는 해도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트럼프가 "애완동물을 잡아먹는다"고 주장했던 아이티 사람들이 바로 그렇게 미국에 와서 머물며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애완동물을 잡아먹은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행동을 했기에 주민들이 분노했을까? 여기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아래의 내용은 뉴욕타임즈에서 이민 문제를 취재하는 미리엄 조던(Miriam Jordan)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풀어 요약한 것이다. 그의 기사는 여기여기,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도시의 사연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발생하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근거 없는 루머의 확산이 드러내는 인종주의, 이를 통해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행동,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양심적인 사람들의 선한 노력을 보여주는 이야기라서 꼭 소개하고 싶었다.

쇠락한 소도시

트럼프가 토론 중에 이야기한 도시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스프링필드(Springfield)다. 미국 중서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이 도시는 1960, 70년대가 전성기였다. 농기계를 제조하는 산업으로 유명했는데, 잘 나갈 때도 인구가 8만 명 정도였으니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미니 시카고"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잘 사는 도시였다.

하지만 중서부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스프링필드 역시 1980년대를 거치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블루칼라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경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사람들을 일자리를 찾아 스프링필드를 떠났다. 인구는 점점 줄어서 6만 명이 채 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버려진 공장과 빈 집이 늘어나면서 쓸쓸한 모습의 전형적인 중서부 도시로 변했다.

1961년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 (이미지 출처: Pinterest)

미리엄 조던 기자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장과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스프링필드를 재건하자는 움직임이 생긴 것이다. 스프링필드는 오하이오에서 큰 도시인 데이튼(Dayton)과 컬럼버스(Columbus) 사이에 있고, 간선도로인 I-70이 지나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기업을 유치하기에 나쁜 환경이 아니다. 이들이 애쓴 결과 스프링필드는 토프레(Topre)라는 일본의 자동차 부품업체를 유치할 수 있었고, 수백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이후로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갖고 찾아와 공장을 만들면서 스프링필드의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제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넘쳐나면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일손이 부족해진 거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고 일자리를 찾던 아이티(Haiti)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몇몇이 이곳으로 와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일자리는 물론이고 물가도 쌌기 때문에 거처를 구하기도 쉬운 걸 발견하고 가족과 지인들을 스프링필드로 불렀다. 이 과정은 모든 이민자 집단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새로운 나라에 정착한 사람들은 지인이 하는 일을 돕거나, 지인이 일하는 곳에 찾아가 일자리를 구하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 미국에 정착한 한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도착한 사람들은 공항에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온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직업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었다. 공항에 나온 가족이나 친구가 세탁소를 운영하면 세탁일을, 식료품점을 운영하면 식료품 파는 일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미국의 다른 지역에 머무르고 있던 아이티 사람들—이들 중에는 미국에 정착한 지 오래되어 영주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과 아이티와 중남미 다른 지역에서 미국으로 떠나려던 아이티 사람들이 그렇게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로 몰려들게 된다. 여기에는 아이티의 국내 사정이 급격하게 나빠진 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뜩이나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였던 아이티는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ïse) 대통령이 2021년에 암살당하면서 더욱 살기 힘든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Why are so many Haitians at the US-Mexico border?
Thousands of migrants are at the Texas-Mexico border. Here’s what we know about why they are coming.
아이티 사람들이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몰려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BBC 기사

스프링필드의 경제가 부활한 이후로 이곳을 찾아온 아이티 사람들의 숫자는 적게는 1만 2,000명, 많게는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구 6만의 소도시에 외지에서 3, 4년 만에 2만 명이 몰려왔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인구 900만의 서울에 300만 명의 외국인이 정착해서 일하며 함께 살게 된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일손을 구하던 기업들에는 희소식이었다. 아이티 사람들은 근면 성실한, 좋은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주민에게는 그렇지 않다.

일단 주거비가 크게 상승했다. 30% 인구 증가가 발생하니 당연한 일이다. 신축도 늘어났지만, 인구 증가를 따르지 못했고, 기존 주민들이 내야 하는 월세 부담이 늘어났다. 일자리를 찾아 오하이오주까지 온 아이티 사람들 중에는 혼자 온 남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4, 5명이 집 하나를 빌려서 함께 거주한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직장이 있기 때문에, 외벌이, 아니 맞벌이를 하는 4, 5인 가족보다 수입이 많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한정된 주택을 놓고 경쟁하니 월세는 오르고 기존 주민들은 집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스프링필드에 정착한 아이티 사람들 (이미지 출처: The Boston Globe)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 인구가 늘었다고 바로 병의원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이티 사람들은 예약을 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고, 그렇게 가능한 예약 시간을 모두 차지해 버리니 기존 주민들은 병원에 가기 위해 몇 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교는 어땠을까? 스프링필드 초중고 학생 7,500명 중에서 1,500명이 아이티 출신의 외국인인 상황이다. 이곳에 정착한 아이티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아이티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영어를 외국어로 가르치는 (TESOL) 교사가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많이 뽑을 수도 없는 상황. 당장 영어를 전혀 못 하는 학부모와 대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주민들의 불만은 점점 쌓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찾아와 일하는 아이티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 사고는 그동안 쌓인 불만을 폭발시킨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