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이상무 ②
• 댓글 3개 보기미국과 교역하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트럼프의 무역 전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가 멀쩡한 것만 이상한 게 아니다. 지금 세계는 트럼프의 관세 외에도 다양한 위기를 겪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끝났지만, 그 후유증이 경제에—인플레이션의 형태로—아직 남아있고,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발생하게 될 위기에 많은 이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고, 유럽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최초의 전면전이 벌어져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중동에서는 테러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중동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고, 미국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군사행동을 저지하기는커녕 본토에서 스텔스 폭격기를 보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해 긴장을 더욱 키웠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2027년까지 대만을 접수할 준비를 마치겠다고 한 상황이다. 이렇게 많은 위기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이런 상황을 polycrisis라고 부른다) 소비와 투자심리가 위축되어 경제가 불안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불안한 국제 정세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설명하는 기사에서 2차 대전이 시작되던 1940년에 런던의 주식시장이 보인 반응을 이야기한다. 히틀러가 프랑스를 침공했고, 모두가 유럽이 전쟁터로 변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런던의 투자자들은 그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이듬해 주가는 오히려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들의 베팅은 맞았고, 전쟁 중에도 투자자들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혼란 속에서도 경제는 끄떡없이 성장 중이다. 2011년 이후로 세계 경제는 매년 약 3%씩 성장해 왔다. 2012년 유로 위기 때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2016년에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진 2022년에도 세계 경제는 꾸준히 3%씩 성장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2020~21년의 팬데믹이었다. 대규모 사망을 걱정한 각국의 정부가 외출을 금지하면서 경제 활동이 위축되자, 1930년대 수준의 경제 대공황이 닥칠 거라는 경고가 나왔다. 하지만 그런 우려 속에서도 그 시기—2020년 마이너스 성장에 이은 2021년 급반등으로—세계 경제는 2% 성장했다. 과거와 달리 외부의 어떤 요인도 세계 경제의 기관차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핵심은 세계 경제가 충격을 잘 흡수하는 데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관찰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점점 많은 나라가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역량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예측가능한" 경제 정책을 세우는 일이 일반화하면서 꾸준한 성장이 시작되었다가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끝났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가 성숙한 경제 정책을 세우고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실업률도 2.4%로 낮지만, OECD에 속한 나라들은 모두 5% 이하의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기록적인 수준이다. 그뿐 아니라—한국의 IMF 구제금융 사태 때처럼—개발도상국에서 외환 위기와 부채 위기가 닥치면 외국 자본이 일제히 탈출하는 현상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가 충격을 흡수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4월 2일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선언하며, 미국에 불공정한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을 때다. 이 소식이 월스트리트에 전해지면서 주가가 떨어졌지만, 바로 반등했다. 소위 '저점매수(buy the dip)'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되어 백악관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해도 주가는 순간적으로 떨어질 뿐, 떨어졌을 때 사겠다는 매수자들이 나서면서 곧바로 회복된다.
미국발 충격만 잘 흡수하는 게 아니다. 러시아가 시작한 전면전 이후로 사실상 붕괴했던 우크라이나의 주식시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했다. 이렇게 우리가 뉴스로 접하는 정세와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판이한 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중국과 대만 사이의 갈등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골드만삭스가 평가한 양안 갈등으로 인한 위험(risk)의 변화를 언론 보도에 근거한 수치(붉은색)와 시장에서 느껴지는 바에 따른 수치(회색)로 보여주는데, 뉴스에서는 위험과 경고의 메시지가 증가하지만, 주식시장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지금의 양안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증가하면 투자와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다. 현재 트럼프가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불확실성도 다르지 않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생산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시장의 반응이다. 흥미로운 것은 1990년 이후로 불확실성이 경제 성장을 방해하는 정도가 과거에 비해 감소했고, 최근의 사례를 보면 성장 자체를 막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현상을 두고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등장했다"고 한다. 바로 테프론 경제(Teflon Economy)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테프론은 미국 듀폰사에서 개발한 불소수지(PTFE)의 상품명으로, 음식이 잘 붙지 않는(논스틱) 프라이팬의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미국에서는 뉴욕의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패밀리의 보스 존 고티(John Gotti)가 재판에서 계속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빠져나가자, 범죄 혐의가 붙지 않는다는 의미로 '테프론 돈(Teflon Do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기에서 Don은 마피아 두목을 가리키는 단어다. (고티는 1980년대 중반에 보스가 되어 법망을 피해다니다가 결국 1992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2016년에 대통령 선거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아무리 과거의 나쁜 행적이 드러나고,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언행을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두고 언론에서는 트럼프에게 '테프론 돈'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물론 여기에서 Don은 도널드를 가리킨다.

이코노미스트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테프론 경제'가 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기업의 현명한 대응이다. 정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충격을 잘 흡수한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발 빠른 대처다. 각국의 정부가 다양한 경제 위기를 맞닥뜨리면, 아니 위기의 조짐만 보여도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조치를 통해 경제를 방어한다.
기업의 대응을 잘 보여주는 것이 공급망(supply chain) 관리다. 우리는 팬데믹 동안 글로벌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과장이 많이 섞여 있다. 실제로 공급망은 놀라울 만큼 잘 버텨줬다. (가령 전 세계 반도체 수출은 2021년에 15% 가까이 증가했다.) 그 기간 전 세계 소비자들이 겪은 것은 공급망의 붕괴가 아니라 수요의 폭증이었다. 이 둘은 구분해야 한다.
지금도 다르지 않아서 뉴욕 연준이 발표하는 공급망 압력 지수(supply-chain pressure index)는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평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은 공급망 관리가 전문화된 사실에 있다. 공급망을 관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전했고, 점점 더 많은 (20년 전에 비해 전 세계적으로 95% 증가)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태가 과거와 달리 세계 경제를 흔들지 못하는 이유에는 에너지 공급의 다원화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 셰일 석유(shale oil, 퇴적암인 셰일이 형성하는 지층에 포함되어 있는 석유) 채취 붐이 일어나면서, 러시아나 중동 국가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줄어들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셰일 석유는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 경제가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비율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래 그래프는 세계가 GDP 1,000달러를 산출하는 데 사용된 석유의 양(배럴)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나타낸다. 1973년 이후로 이 의존도는 60% 가까이 감소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해도 세계 경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공급망 관리가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공급망 전문가들이 관리한다고 해도 수요가 무너지면 경제는 침체에 빠지게 된다. 이 지점을 담당하는 게 바로 각국의 정부다. 그런데 세계의 정치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기관리를 잘하고 있다.
마지막 편, '이상한 이상무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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