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가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했을 때, 전문가들은 일제히 미국의 결정에 반대하며 경고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는 트럼프가 시도하는 관세로 인해 무역이 둔화되고, 미국과 세계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거라고 경고했고, 다른 경제학자들도 미국의 관세는 교역국의 보복 관세를 부를 것이기 때문에 국제 교역과 해외 투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했다.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세계가 일제히 자유 무역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 당시, 많은 나라들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입 관세를 올렸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국제 무역량을 급격히 감소시켰고, 경제난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은 그때의 교훈으로 자유 무역이 세계를 전쟁 대신 협력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1947년에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라는 틀을 만들어 무역 자유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 유명한 WTO(세계무역기구)를 만들어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 서비스와 지적재산권까지 포괄하는 국제 무역의 질서를 확립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지금의 무역 구도를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WTO를 중심으로 한 자유 무역이 결국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먹여 살리는 불리한 시스템이라고 믿거나, 적어도 그렇게 믿는 것처럼 말한다. 트럼프와 같은 사람들이 자유 무역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한 이유는 미국의 경제가 그만큼 크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에서 교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4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캐나다는 경제의 2/3를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한국과 멕시코는 80%가 넘는다. 즉, 미국은 이들과의 무역 전쟁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다.

2021년 9월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하역하기 위해 대기하는 화물선들

하지만 상대방이 불리하다는 것이 내가 다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힘이 센 사자가 꼭 필요하지 않으면 하이에나 같은 동물과 싸우지 않는 이유는, 일대일로 싸워 이길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경우 감염으로 자기도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에서 미국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던 월스트리트저널조차 사설을 통해 "역사상 가장 멍청한 무역 전쟁"(The Dumbest Trade War in History)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을 보면 트럼프의 위협은 먹히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이 줄줄이 트럼프의 요구대로 15%의 관세를 받아들였고, 미국의 제품은 관세 없이 진출할 수 있는 불평등 무역구조가 만들어졌다. 트럼프가 원하던 그림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요구에 굴복한 나라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불평등한 무역을 하게 되었는데도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한국에서는 "선방했다" 혹은 "선방 이상으로 잘한 협상"이라며 이재명 정부를 칭찬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요구를 수용하고도 최악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이 통했다는 얘기 아닐까? 적어도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무역 협정과 관련해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와 만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유럽 연합도 트럼프의 요구에 사실상 굴복했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당연히 의문이 생길 거다. 미국이 수입하는 제품에 관세가 부과되면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가게 될 것이고, 이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의 소비자들만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는 것. 하지만 트럼프는 무역 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관세는 수출하는 나라가 내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관세의 작동 방식

미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한 관세는 수입업자, 즉 미국 회사가 내는 거다. 하지만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식의 표현은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치 중국이나 중국의 수출업자가 관세를 낸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거기에 트럼프가 관세는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낸다는 말을 하기 때문에, 미국에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 도대체 트럼프는 왜 이런 말을 할까?

트럼프가 관세의 작동법을 모르는 게 아니라면—모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그의 주장은 관세로 인해서 수출품의 가격이 올라갈 경우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수출업자가 가격을 낮추는 경우를 가정한 것일 수 있다. 그래도 미국 내 수입업자는 관세를 내야 하지만, 수출기업이 그만큼 가격을 낮추면 추가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따라서 미국 내 판매 가격도 올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주장처럼 관세는 수출하는 쪽에서 내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는 특정한 제품에 한하는 얘기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은 늘게 된다. 공화당에서는 그렇게 얻어진 관세 수입을 국민 한 명당 600달러(약 83만 원)씩 나눠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그렇게 해서 받는 돈보다 물가 상승으로 잃는 소득이 더 크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물론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호무역주의의 논리대로라면,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고, 이는 미국에서 더 많은 고용의 창출로 이어진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만들어 미국 시장에만 팔아도 미국은 잘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번 협상으로 교역국의 무역 장벽은 사라졌으니 미국은 더 많은 제품을 수출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한국 같은 나라는 FTA로 애초에 이렇다 할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관세 없이 미국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에서 만들어 고용을 창출하라는 건, 트럼프만의 주장이 아니다.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미국 노동자들

트럼프의 기대

트럼프는 자신이 벌이는 무역 전쟁의 결과, 미국 기업들이 해외의 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공장을 외국으로 보내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을 기대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관세 때문에 미국 기업들은 눈치만 볼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 결정을 내려도 공장 이전이 완료되려면 몇 년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당장 고용 효과를 보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미국 기업들이 싼 노동력 때문에 해외에 공장을 운영한다고 생각하지만, 해외의 인력이 미국보다 뛰어나기 때문인 경우도 많다. 아래는 그런 미국인들의 착각을 깨우쳐 주는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의 영상이다. 이 영상에서 팀 쿡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에 온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어디를 가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노동력이 쌌던 건 이미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공급 차원에서 봤을 때 기업들이 중국을 찾는 이유는 노동자의 숙련도(skill) 때문입니다. 중국 내 한 지역에 모여있는 기술자 숫자와 그들이 가진 기술의 종류 때문이죠.

가령 우리 애플의 경우 제품을 만들 때 최첨단 장비 사용(really advanced tooling)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장비를 정교하게 사용해서 재료를 다듬는 공정은 최첨단의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루는 중국 인력은 그 숙련도가 아주 뛰어납니다. 만약 미국에서 그런 장비를 사용할 능력이 되는 엔지니어를 다 모은다고 해도 방 하나를 채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사람들로 축구장 몇 개를 채울 수 있어요.

미국 기업이 중국으로 가는 이유는 그들의 직업적 전문성(vocational expertise)이 아주 뛰어나서입니다. 저는 그걸 계속 강조하는 중국의 교육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들이 교육의 방향을 다르게 잡았어도 중국은 그 방향을 유지했죠. 다른 나라들은 이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그게 중요했다는 걸 깨닫고 있지만, 중국은 처음부터 그랬어요."

트럼프의 무역 정책을 다룬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한 전직 관료의 말을 빌려 트럼프가 그리는 미국이 1946년 이전, 그러니까 GATT 이전의 미국과 공통점이 많다고 말한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중상주의 정책을 사용해서 무역 수지 흑자를 통해 부를 창출하던 시대가 있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 유럽에 널리 퍼졌던 경제사상인 중상주의(mercantilism)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해 무역을 중시하되, 수출을 늘려서 국가의 수입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억제해서 지출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다. 1960년대 경제 개발 이후로 국민의 수입품 사용, 해외여행에 대해 오래도록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해 온 한국도 기본 태도는 다르지 않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신중상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유럽의 중상주의는 식민지 건설 노력까지 포함된다.

끄떡 않는 미국 경제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은 비관적인 전망과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고, 임금은 상승하고 있다. 무역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힘들다. 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 들지만, 팬데믹 이후로 계속 그랬던 거고, 인건비도 함께 상승하니 어느 정도 상쇄가 되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경제학자인 브래드 세트서(Brad Setser)는 트럼프 관세의 효과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체감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기 후퇴(recession)를 만들어 낼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고, 물가도 오르는 건 느껴져도 큰 충격은 아닐 것으로 전망한다. 최악의 경우 성장이 둔화될 수는 있어도 성장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뉴스를 보면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데, 경제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


'이상한 이상무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