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 ③
• 댓글 4개 보기드레스 리허설을 하면 론 마이클스는 관객석 맨 아래에 앉아서 모니터를 통해 쇼를 지켜봐요. 그러면 특정 스케치가 시작되면 그걸 쓴 작가는 마이클스 옆 의자에 앉아서 마이클스와 함께 봐야 합니다. 그렇게 제 스케치가 시작되었고, 저는 마이클스 옆에 앉아서 제 스케치가 완전히 망하는 걸 지켜보는 마이클스를 지켜봐야 했어요.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자신이 쓴 스케치 코미디가 론 마이클스 앞에서 완전히 망하는 것을 보신 분이 없을 것 같으니 (청중 웃음)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여러분이 론 마이클스와 섹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론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거예요. 오마이갓, 엄청 불쾌한 이미지..
그래서 이게 제 일상이 되었죠. 매주 같은 작업이 반복되는 거예요. 저는 SNL 쇼에서 흥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대본을 만들어내려 애를 썼고, 항상 망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대성공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겠는 거예요. 저는 추락하기 시작했어요. 인생에서 그 시점까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저의 정체성은 '웃긴 사람'이라는 거였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거였는데, SNL쇼의 웃음 코드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대본 읽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포에 휩싸였고, 드레스 리허설 때는 뱃속에 돌덩어리가 들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걸으면서도 길 잃은 사람처럼 혼돈스러웠고, 안갯속을 걷는 느낌이었어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처럼 말이죠. (웃음)
저 자신의 일부가 망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불안한 상태가 되었고, 친구들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죠. 우선 일하는 시간대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어쩌다 만나게 되면 친구들은 제게 "너 별로 안 좋아 보인다"라거나, "제시, 식당에서 그렇게 울면 우리가 (창피해서) 나중에 어떻게 오니"라고 했죠. (청중 웃음)
잠을 잘 시간도 없었어요. 어쩌나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겨도 불안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주에는 어떤 게스트가 출연하는지, 그 게스트에게는 어떤 대본을 써줘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다음 주에는 제니퍼 로페즈가 나오지. 제니퍼 로페즈에게는 어떤 내용이 좋을까'하고 생각했죠. 이렇게 스트레스의 한 가운데서 뭐라도 즐거움을 좀 느껴보고 싶었어요. 삶에 기쁨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제가 일하는 록커펠러 센터 아래 층에 있는 앤트로폴로지(Anthropologie) 매장에 가서 입지도 않을 트위드(tweed) 재킷 따위를 사는 거였어요. 지금도 기억하는 게 캥거루 주머니 같은 게 달린 280 달러 짜리 스웨터를 산 일이에요. (여성 청중 웃음) 여자들은 무슨 얘긴지 알아요.
어떤 때는 아주 늦게 귀가해서 앰비언(Ambien)을 한 알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LA에 살 때 데이트했던 사람에게 은근한 메시지(sexting)를 보내곤 했어요. 그럼 "안 자?"라면서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아? (Do you think I'm good? 듣기에 따라서는 '잠자리 실력이 괜찮았느냐'로도 해석 가능–옮긴이)" 같은 답이 돌아오죠.
제가 그런 걸 할 때 즈음 타이거 우즈의 (섹스) 스캔들이 터졌죠. 제가 기억하는데, 타이거 우즈가 만나던 여성들 중 하나가 앰비언을 복용한 상태에서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았다고 털어놓았죠. 그 얘기가 나왔을 때 저랑 일하던 동료들이 전부 "으, 지저분하게.."라고 반응하는 바람에 저도 "맞아, 지저분하게.."라고 맞장구를 쳤죠. (청중 웃음) 하지만 속으로는 '타이거 우즈가 하던 짓을 내가 하는 거야?'
제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상태까지 내려갔음을 깨달은 때는 제 불안증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제가 심각한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어서 '내가 죽어가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사를 찾아갔는데, 아주 훌륭한 의사여서 제가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청중 웃음) 그 의사는 제게 좀 느긋해지라고 충고를 해줬고, 저는 그럼 클로노핀(clonazepam, 리보트릴'이라는 제품 명으로도 불리는 공황장애 치료제)이나 좀 처방해 달라고 했죠. 하지만 의사는 약 없이 하라고 했고, 저는 당신은 나쁜 의사라고 했죠. (웃음)
그때 즈음, 제 친한 친구 하나가–창피하니까 식당에서 울지 말라고 했던 그 친구–아잔 브람(Ajahn Brahm)이라는 영국인 불교 승려의 온라인 강의 시리즈 링크를 보내줬어요. 친구는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꼭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회의적이었어요. 제가 이런 종류의 조언은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에게서만 받거든요. (청중 웃음) 하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한번 들어봤는데, 바로 빠져들었습니다.
아잔 브람은 약 15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경험의 모든 면에 관해 이야기를 했어요. 게다가 그걸 웹사이트에 알파벳 순으로 정리해 뒀어요. 한 번 가보세요. 가령 당신 이름이 맨디(Mandy)라면, 알파벳 M 항목에 가보면 "맨디, 이렇게 하세요"라는 제목의 강의가 있을 정도라니까요. (청중 웃음) 아주 도움이 되는 강의들이었어요. 저는 침대에 누워서 듣기 했어요. 노트북 컴퓨터를 침대 베개 옆에 놔두고 아잔 브람의 목소리를 듣는 거죠.
어느 날 밤, 강의를 듣는데 그날은 죽음(death), 죽어가는 것(dying)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주제는 받아들임(acceptance)이었고, 삶과 죽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며 같은 연속선 위에 있다는 얘기였죠.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비록 신체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내용을 내 일에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코미디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죠. 저는 제가 SNL에서 성공하려면 실패(bombing)를 받아들이고 편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삶에서 그걸 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대본이 웃음을 끌어내는 데 실패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특히 SNL 쇼에서는 말이죠.
그래서는 저는 뭘 써야 하나, 하고 겁에 질린 채 대본을 쓰는 일을 멈췄고,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웃기다고 생각하는 걸로 쓴 후에는 '될 대로 되라지 뭐'하는 태도로 제출했어요. 그러자 제 대본이 좋아지더라고요.
그 시즌의 마지막 즈음에서 티나 페이(Tina Fey)가 호스트를 하는 쇼가 있었어요. 저는 티나 페이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티나가 제 대본을 연기하기를 바랐죠. 그 주 화요일 대본은 제가 SNL 작가에 지원할 때 제출했던 내용으로 쓰기로 했어요. 티나가 그 스케치에 적격일 거라 생각한 거죠. 그렇게 제출하고 대본 읽기를 했는데, 엄청난 웃음을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썰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티나가 그거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광고 패러디라서 (토요일 생방이 아닌) 금요일에 찍어서 토요일 내내 편집을 해야 했죠.
저는 드레스 리허설 직전에 론 마이클스 옆에 앉아서 지켜봤습니다. 잔뜩 긴장했어요. 이게 괴상한 내용이라서 모든 사람들이 보고 웃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던컨 하인스(Duncan Hines) 광고 패러디였는데, 초콜릿 광고에서 외로운 여자들이 섹스 대신 초콜릿 먹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거 있죠? 그래서 제 패러디 광고 속 제품은 브라우니 남편(Brownie Husband)였죠. 아이디어는 이래요. 브라우니인데 남편 모양의 브라우니죠. 그러니까 브라우니랑 섹스를 하면서 동시에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청중 웃음)
저는 긴장했는데 광고 영상을 틀자마자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배꼽을 잡고 쓰러지는 진짜 웃음이었어요. 심지어 론도 웃기 시작했죠. 론이 웃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으시면 (청중 웃음) 론과 섹스를 하고 있는데 론이 웃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돼요. (웃음) 그리고 그게 방송이 되자 인기를 끌었고 트위터에서 트렌딩에 올라갔어요. 사람들이 자기도 브라우니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청중 웃음) 그때가 제게는 SNL에서 일하면서 '이게 내가 어릴 때 꿈꿨던 거구나'하고 처음으로 느꼈던 때였어요. 그렇게 시즌이 끝났습니다.
SNL이 가진 또 다른 전통이 있는데, 작가들에게 (가을에 시작하는) 다음 시즌에 재고용이 되는지 여부를 여름 끝 무렵에나 통보해 주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라 한 달 정도 불안에 떨어야 해요. 하지만 저는 'SNL이 나보고 돌아오지 말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 대신 '나보고 돌아오라고 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미칠 것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코미디를 하는 모든 사람의 꿈과 같은 직장, 내가 10살 때부터 꿈꾸던 직장에서 나가는 것만큼 미친 생각도 없었죠. 그래서 저는 제가 SNL을 떠나면 뭐가 가장 그리울까 생각해 봤습니다. 관객의 웃음과 론의 웃음이 주는 인정(approval)이 그리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가장 큰 인정을 받은 스케치는 제가 허접스런 스타벅스에 앉아 쓴 대본, 제가 SNL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드백을 줄 사람도 없이) 혼자 앉아서 쓴 것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그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제가 10살 때 흑백 TV를 보며 꿈꾸던 그런 멋진 경험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저는 훨씬 더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감해지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SNL은 제게 '세상에 뭔가를 내놓으면서 겁을 먹으면 안 된다'라는 것, '네 작품을 내놓을 때는 네게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겁먹고 내놓는 것과 자신을 갖고 내놓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요.
그래서 제 에이전트가 제게 다시 전화해서 SNL이 저를 다시 찾는다는 얘기를 했을 때 저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저는 제 노트북을 들고 다시 스타벅스로 돌아가서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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