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드산티스는 텍사스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와 연합해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고급 휴양지인 마서스비니어드섬에 남미에서 온 난민 50명을 전용 비행기편에 실어 보냈다. 매사추세츠주는 캘리포니아주와 함께 미국 진보 정치를 대표하는 곳이고,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를 꾸준히 선출하는 곳이다. 따라서 공화당 아성인 텍사스와 근래 들어 공화당 지지가 더욱 굳어지는 플로리다 주지사 입장에서 매사추세츠주는 ‘적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2년 ‘역 프리덤 라이드’를 추진한 공화당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속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버스를 타고 온 흑인들.
1962년 ‘역 프리덤 라이드’를 추진한 공화당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속아 남부에서 북부까지 버스를 타고 온 흑인들

즉, 드산티스 주지사는 매사추세츠로 대표되는 여당(민주당)에게 “너희들도 남미 이민자들로 고생을 좀 해보라”며 난민 신청자들을 보낸 것이다. 특히 마서스비니어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찾는 휴양지라는 상징성까지 있기 때문에 완벽한 타깃이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알기는 커녕 영어도 구사하지 못하는 난민들에게 “북부에 있는 섬에 가면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며 일자리도 있다”는 거짓말을 해서 비행기에 태웠다. 그러나 그들은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이 모든 게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드산티스 꾀가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마서스비니어드 주민들은 난민을 돕기 위해 모여들었고, 이들에게 음식과 입을 옷, 그리고 숙소를 제공했다. 게다가 난민을 속여서 주 경계선을 넘게 한 것은 불법의 소지가 크다고 해서 드산티스 주지사를 고소했을 뿐 아니라, 난민들이 드산티스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미국에 합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찾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공화당 주지사들이 사과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역 프리덤 라이드(Reverse Freedom Rides)’라고 부르며 적극 옹호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정확히 60년 전에 이와 흡사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아닌 흑인들을 북부로 보냈고, 그때도 배후에는 공화당이 있었다. 당시 공화당 정치인 속임에 넘어가 버스를 탔던 이들이 도착한 곳도 민주당 대통령(존 F 케네디) 가족이 여름을 보내는 매사추세츠주의 휴양지였다. 그런데 1962년과 2022년에 공화당이 벌인 이 ‘역 프리덤 라이드’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프리덤 라이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61년 미국에서는 북부에 거주하는 인권운동가들이 버스를 타고 남부로 여행하는 시위를 벌였다. 버스를 타는 게 왜 시위였을까?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종이 대중교통이나 식당 같은 시설,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없게 금하는 분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 정책은 1865년 남북전쟁에서 링컨이 이끄는 북군이 승리한 후 해방된 노예들이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이었고, 특히 보수적인 남부 주에서 지독하게 지켜졌다.

그런데 1950∼60년대에 들어오면서 흑인 인권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남부 주들에서 지켜지던 흑백 분리 정책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리고 1961년, 연방대법원이 주와 주 사이를 이동하는 버스와 기차에서 유색 인종의 좌석을 차별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어디까지나 판결일 뿐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백 분리가 강요되었다. 북부의 인권운동가들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흑인과 백인 운동가들이 함께 버스를 타고 남부로 이동하면서 각 주의 경찰력과 대치하는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만약 이들이 운동가들을 체포해서 감옥에 보내면 그 결정을 두고 법정에서 대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프리덤 라이드’였고, 그렇게 여행을 함께 했던 흑백의 운동가들을 ‘프리덤 라이더’라 불렀으며,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같은 운동가들이 이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그뿐 아니라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자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가 나서서 이들을 보호하고 분리 정책 철폐를 위한 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남부의 분리주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흑백 운동가들이 함께 타고 이동하던 버스가 남부의 보수 백인들의 화염병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미국 남부의 분리주의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흑백 운동가들이 함께 타고 이동하던 버스가 남부의 보수 백인들의 화염병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짐작했겠지만 공화당과 남부 보수 백인들의 반발은 거셌다. 프리덤 라이더들이 탄 버스에 화염병을 던져 불태우기도 했고, 그들을 체포해서 감옥에 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더 지독한 일은 이듬해인 1962년에 일어났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화당 정치인들이 흑인들을 버스에 태워 북부로 보낸 것이다. 그들은 프리덤 라이드가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온 것이니,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로 올라가는 것은 역 프리덤 라이드라고 불렀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다. 북부에 사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흑인들 옆에서 함께 살지 않으니까 진보적인 입법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보내는 흑인들과 함께 살아보라는 것이다. 정작 흑인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는 고급 동네에 도착하면 그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말이 허울 좋은 위선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라는 게 그들의 계산이었다. 그래서 흑인 중에서도 정착할 경우 가장 손이 많이 들어갈 그룹을 골랐다. 남편 없이 혼자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흑인 엄마들과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흑인 전과자들이 그들이었다. 북부 주의 복지 제도와 치안에 부담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보내면서 거짓말을 한 것도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2022년에는 남미에서 온 난민들에게 “마서스비니어드에 가면 일자리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면, 1962년에는 남부에 살고 있던 흑인들에게 “케이프코드에 있는 하이애니스에 가면 케네디 가문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이 당신들에게 집과 일자리를 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큰 기대를 품고 버스를 탄 200명의 흑인들은 가지고 온 짐도 거의 없었다. 쇼핑백 하나에 갈아입을 옷 한 벌이 전부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요원했다. 남부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소작농으로 일했고, 평생 목화를 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화당의 몹쓸 장난으로 북부에 도착한 흑인들은 “제가 할 줄 아는 건 목화 따는 게 전부”라며 어디에 가면 목화밭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물론 북부에 목화밭이 있을 리는 없다. 이들이 겪게 된 고통은 전국 뉴스를 타게 되었고 민주당에서는 공화당의 이런 잔인한 처사가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난했다.

그랬던 역사가 정확히 60년 만에 반복된 것이다. 대상만 흑인에서 남미 사람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1962년이나 2022년이나 남부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역 프리덤 라이드를 통해 민주당과 진보 세력의 위선을 드러내겠다고 했지만 두 경우 모두 드러난 것은 공화당의 위선이었다. 바이블 벨트(Bible Belt: 기독교 신자가 많은 미국 남부 주)의 기독교인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로 행동했고, 오히려 “성경은 (인종) 분리를 요구한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세계일보 '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