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치의 낙담
• 댓글 44개 보기나는 박선영 기자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대문 근처 한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나와 동석했던 그의 선배 기자가 "아끼는 후배가 퇴사한다"며 크게 낙담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표정을 보며 '도대체 어떤 후배길래...' 하고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의 퇴사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때 신문사 기자들이 하나둘 그만두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1990년대만 해도 인문사회계 졸업생에게 아주 훌륭한 직장이었던 신문사는 2010년대에는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정치적 진영을 막론하고 소신 있는 글을 쓰던 기자들은 포털에서 클릭을 끌어내는 기사를 써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었고, 매체들은 '제목 낚시'를 하면서 언론에 대한 신뢰를 부순 대가로 푼돈을 벌고 있었다. 그게 나 같은 외부인이 느낀 2010년대 중후반의 한국 언론계의 분위기였다.
인문사회계 최고의 직장이라는 자부심은 사라졌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명 의식을 버리지 않고 일하는 기자들도 있었고, 일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직의 기회를 보며 "아직은 다니는" 기자들도 있었다. 당시 30대였던 한 경제신문 기자는 "지금 월급은 괜찮지만" 가능하면 빨리 더 좋은 기업으로 옮기려고 "기회를 보고 있다"고 했다. 나와 식사를 하면서 자꾸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그의 버릇이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가 하면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언론사에 들어온 게 아니라며 고민하다가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저자가 17년을 일한 신문사를 나온 지 7년 만에 쓴 소회다. 그간 다른 글도 쓰고, 번역 작업도 한 것 같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꾹 참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있던 7년이 그가 기자라는 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준다. 그의 말을 빌리면, "첫사랑과 헤어진 후 다시는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실연자" 같다.
이 책의 첫 몇 페이지만 넘겨도 저자가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기자, 혹은 좋은 기자였던 사람들이 대개 낭만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 게 없는 사람이 기자를 한다는 건, 꼼꼼하지 않은 사람이 회계사를 한다는 것처럼 믿기 어렵다. 저자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가진 애정은 그가 또 다른 (인문사회계들의) 업종인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할 때 드러난다.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떤 사람이 출판 일을 한다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그에게 호감을 갖는다. 아이고, 그 어려운 공부 해가지고서 박봉의 출판계로, 무슨 납치, 유괴를 당한 것도 아니고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니, 이거 존경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라는 생각이 무슨 동작감지센서가 작동하듯이 절로 드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저자가 직업에 대한 그런 태도를 순정(純情)이라고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나처럼) 구제 불능의 X세대라는 생각을 했다. '나'라는 개인보다 대의(大義)를 본능적으로 먼저 생각하는 마지막 세대. 선배 기자가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보다가 울음이 쏟아졌다"고 하는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세대.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읽으면서 저자의 현재 삶과 성장기를 단편적으로나 알게 되면 그가 왜 기자라는 직업에 끌리게 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어릴 때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는데, 정작 집에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었다고 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어릴 때 책을 무척 좋아하고, 거의 유일한 낙이었던 나로서는—슬픈데, 웃음이 터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대체로 실업자였는데,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었던 어느 이례적이었던 해, 술에 취해 계몽사 전집을 한 질 사 들고 왔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마침내 내게도 책이 생겼다.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그 사치스러운 것이 생겼다. 두꺼운 양장의 15권짜리 소년소녀 세계위인전집이었다. 딸내미 훌륭한 사람 되라고 아버지가 골라 온 생애 최초의 책 선물. 하지만 슬프게도 딸의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 게다가 1권에 등장하는 첫 위인이 석가모니였다." (우리 집에 있던 계몽사 전집이 위인전 시리즈가 아니라, 어린이 명작집이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
심지어 어린 시절 집에서 신문을 구독하지 않아서 폐품 수집 때 신문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부러웠다는 저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던 덕분에 내 어린 머리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검증하며 자랐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서러웠지만, 우당탕탕 스스로 알아냈다"고 한다.
"부모가 서발턴(구조적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덕분에 일찍이 부모를 넘어섰다. 내 부모의 자랑이었고, 빛나는 보석이었다. 내 자긍심의 원천이고, 내가 나르시시스트가 된 원인이다. 부모의 성취와 기대에 짓눌려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학하는 많은 또래들을 나는 보았다. 내 부모를 내가 일찍 넘어섰던 것, 그것이 나를 달려나가게 한 엔진이었다.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간들을 적잖이 보며 산 덕에 권세 앞에 주눅 들지 않는다. 기자로서 내가 잘한 일이 몇 개나마 있다면 다 이 덕분일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기자 생활을 한 분들 중에 저자와 비슷한 어린 시절, 비슷한 결을 가진 몇 명을 안다. 남들보다 어려운 집안에서 자랐지만,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다는 얘기를 꾸준히 들었고, 그렇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한 경험 때문에 "여자는 버티기 힘들다"고 하는 언론계에 들어가 자기 자리를 찾은 분들이다. 세상의 일에서 쉽게 패턴을 보는 나의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여성 기자들이 매체와 상관없이 끈끈한 자매애(sisterhood)가 형성되어 있는 걸 보면 그들 사이에는 직업 이상의 공통점이 분명히 있다는 게 내 추측이다.
하지만 확대해 보면 다른 직장 여성들은 안 그럴까? 결국 다르지 않을 거다. 어릴 때 공부를 잘해서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자랐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다른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고군분투하고, 거기에 더해 아이들을 키우느라 또 다른 전투를 벌여야 한다. 저자가 어머니에게서 들었다는 "야, 그 돈 벌려고 하루 종일 나가 있느니, 집에서 애나 키우는 게 남는 장사겠다"라는 말은 한국의, 아니 전 세계의 직장 여성들의 머릿속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맴돌지 않을까?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기자로서의 자아와 엄마로서의 자아 (이 책에서 '기자'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엄마'다) 그리고 1970년대 한국에 태어난 사람이 세상을 탐구하는 모습이 담긴 책이다. 한국과 미국의 사회를 비교하고, 책 속의 세상과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오가며 비교한다. 종종 슬퍼하고 (자신을 '슬픔 수집가'라고 부른다) 때로는 분노하지만, 항상 자기연민을 경계하는 태도가 거의 모든 글에서 나타난다. 참 X세대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같은 세대 사람으로서 괜히 뿌듯해졌다. 🦦
이 책을 펴낸 반비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책을 열 권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의사를 밝혀 주시면 제가 화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