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읽은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로스차일드(Rothschild) 은행이 아프리카의 구리 광산의 입찰에 응한 최종 후보들을 선정하고 있었다." 이 부분만 읽으면 19세기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을 받지만, 그저께 나온 기사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구리 광산과 관련한 기사가 떴을까? 중동의 산유국들이 광산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요즘 관심을 받는 희토류도 아니고, 아주 오래된 광물인데 왜 갑자기 산유국들의 관심을 받고 있을까? 나는 최근의 읽은 책에서 그 이유를 들어 알고 있었다.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라는 이 책의 10장에서 구리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물(futures)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2021년에 골드먼삭스 은행이 발행한 보고서는 "구리는 새로운 석유"라고 선언했다. (새로운 "석유"라서 산유국들이 구리 광산을 산다는 건 좀 웃긴 구석이 있다.) 희토류가 아무리 큰 관심을 끌고 있어도, 구리만큼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광물도 없다고 한다.

구리가 다시 뜨는 이유는 무엇보다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문제를 일으킨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을 전기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구리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구리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탱하는 전기 인프라도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구리는 지구상에 많지 않나?

잠비아의 구리 광산 (이미지 출처: Mining Technology)

바닥이 날 거라고 예측을 해도 공법을 바꿔 계속 뽑아내고 있는 석유처럼, 많은 광물이 손쉬운 채굴로 캐낼 수 있는 양이 바닥나면 그다음부터는 더 많은 돈과 에너지, 환경을 갈아 넣어 빼낸다. 금은 이제 더 이상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광부가 땅을 파들어가서 "노다지"를 발견하는 식으로 채굴하지 않는다. 거대한 산을 폭파해서 추출한다. 책 서문에 나오는 충격적인 얘기: 표준 중량(12.4kg)의 골드바 하나를 만들려면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이 만석일 때의 무게에 가까운 5,000톤의 흙을 파내야 한다.

저자인 에드 콘웨이(Ed Conway)는 사람들이 화석연료의 시대를 끝내면 이런 광물에 대한 인류의 의존도 줄어들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라고 설명한다. 전기차,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같은 새로운 "친환경"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간 이제까지보다 더 많은 물질을 땅에서 캐내야 한다는 것이 인류가 추진하는 친환경이 가진 아이러니다.

중동의 산유국이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구리 광산에 입찰한 배경이 바로 그거다.

이 책,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는 표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인류가 사용하는 물질 중 땅에서 얻어내는 6가지—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각 물질에 한 파트를 배정했고, 각 파트는 3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언뜻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 앞에, 구하기 힘든 물질이 뒤에 등장하는 것 같지만 각 파트에 등장하는 물질 중에 구하기 쉬운 게 하나도 없다.

다시 구리 얘기로 돌아가면, 미국 지질조사국은 지구에 존재하는 구리 자원의 총량을 56억 톤으로 추산하는데, 그중 21억 톤이 이미 발견되었다고 한다. 연간 구리 소비량을 고려하면 앞으로 226년을 쓸 수 있는 분량이었는데, 인류가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을 본격화하면서 구리를 더 빠르게 캐내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의 채굴 속도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앞으로 115년 정도의 분량이 남았다고 한다. 그나마 구리는 재활용하기 쉬운 물질 중 하나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재활용한다 해도 소비량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채굴하기 위해 파괴하는 환경을 생각하면, 구리처럼 흔해 보이는 광물조차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광물들이 하나같이 그런 '사연'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물질의 세계'는 그렇게 딱딱한 통계와 암울한 전망으로 채워진 책이 아니다. 각 물질이 처음 발견된 이야기—여기에는 유리가 처음 만들어진 순간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가 사실인지 검증하는 내용도 있다—와 인류가 그 물질을 사용하면서 벌어진 흥미로운 역사가 곳곳에 등장한다. 가령 ('모래' 파트에 등장하는) 유리처럼 흔하고 오래된 물질이 1차 세계 대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 이야기는 요즘 반도체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과거의 대포는 사정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맨눈으로 목표물을 조준했는데 1차 대전이 일어난 20세기 초에는 사거리가 늘어나면서 정밀한 조준경이 전투에 필수적인 장비로 떠올랐다. 그렇게 고성능의 조준경을 만들려면 정밀 광학 기술과 순도 높은 유리 제조 기술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당시 그런 기술은 독일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독일 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로 쌍안경, 망원경, 잠망경, 거리계, 과학용 렌즈를 만들어 세계에 공급하고 있었는데, 영국은 그런 독일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거다.

전쟁이 선포되자 독일은 곧바로 정밀 광학 제품의 공급을 중단했다.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장을 내자 미국 정부가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제한한 것과 똑같은 일이 한 세기 전에 벌어진 셈이다. 최첨단 반도체를 구하지 못하자 저사양 반도체라도 확보하려고 애쓰는 중국처럼, 영국 정부는 국민에게 각 가정에 있는 쌍안경, 오페라 안경이라도 군에 기증해달라고 호소했다.

20세기의 렌즈 전쟁과 21세기 반도체 전쟁의 공통점은 그게 끝이 아니다. 알려진 것처럼 미국 정부의 수출 제재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살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중동 국가들을 통해 비밀리에 우회 수입을 시도하는데, 당시 영국이 비밀리에 요원을 보낸 곳은 스위스였다. 자국 기술과 제품의 행방에 민감한 나라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중동 국가들이 반도체를 중국에 보내는 것을 미국이 눈치챈 것처럼, 1차 대전 당시 독일도 영국이 스위스에서 독일 기업에 몰래 판매 요청을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독일 정부는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독일 기업이 영국에 쌍안경을 판매해도 좋다고 허용한 것이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왼쪽)와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황제 (이미지 출처: Quora, Pinterest)

그것도 초도 물량으로 쌍안경 32,000개, 한 달 뒤에 15,000개라고 숫자까지 지정했다. 영국이 필요했던 물량의 거의 다 채워준 것이다. 독일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독일 정부는 모종의 거래를 노린 것이다. 영국이 쌍안경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식민지가 적었던 독일에는 고무가 부족했다. 식민지에서 고무 생산을 하던 영국과 연합국이 독일로의 고무 수출을 막았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내용은 그 뒤에 이어진다. 영국이 애초에 정책만 제대로 세웠어도 그렇게 구차하게 뒷구멍으로 독일의 장비를 가져오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는 게 콘웨이의 주장이다. 영국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업용 유리 생산과 광학 분야에서 선두 주자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정 시대의 경제 대국은 유리 제조업의 중심지라는, 역사적 패턴이 있다고 한다.) 그랬던 영국의 유리 산업이 성장을 멈추고 독일에 우위를 내어주게 된 건 영국 정부가 1696년에 도입한 황당한 창문세(window tax)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사례인 창문세는 거주자가 잘살수록 집에 창문이 많을 것이라는 논리로 창문 숫자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유리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고, 국민들은 세금을 더 내는 대신 멀쩡한 창문을 벽돌로 막아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지금도 오래된 영국 주택에 창문이 있을 자리가 막혀있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Sash Windows, Creative Boom, Wikipedia)

영국이 그렇게 멀쩡한 산업 하나를 죽이는 동안, 후발국이었던 독일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면서 유리산업, 광학 산업을 키우는 것은 20세기 후반에 빠르게 발전한 동아시아에서 자주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물질의 세계'는 이런 이야기들이 챕터마다 가득하다. 출판사가 '칩 워(Chip War)'의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와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의 팀 마셜(Tim Marshall)에게서 추천의 말을 받았다는 게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6개의 물질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을 각각 80페이지 안팎의 분량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혀 많은 양이 아니다. 🦦


이 책의 한국어판을 출간한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유료 구독자들에게 10권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은 댓글에 의사를 제가 한국 시각으로 토요일(6일) 오전에 추첨을 통해 뽑아서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