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수염 ② 냇콘(NatCon)
• 댓글 남기기'힐빌리의 노래'로 전국적인 관심을 모은 J.D. 밴스는 오하이오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공화당 티켓을 따기 위해 오는 5월 3일 경선에서 당내 경선 주자들과 대결한다. 오하이오주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마침 연방 상원의원 두 명 중 한 사람(롭 포트먼, 공화당)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밴스가 정계에 진출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인 셈이다.
공화당 상원의원의 빈 자리를 채우는 선거이니 민주당 후보와 맞붙을 11월의 본 선거보다 5월의 당내 경선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밴스의 입지를 볼 때 유리하다고 보기 힘들다. 오하이오주는 전통적으로 민주-공화 경합주(swing state)였다. 대통령 후보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오하이오주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패배했지만, 오하이오에서는 2016년 대선 때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오하이오가 '공화당이 우세한 주(=red state)'가 되었다기 보다는 '트럼프의 땅(Trump country)'으로 변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오하이오주에서 공화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밴스는 2016년에 '힐빌리의 노래'를 펴낸 후 진보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트럼프를 "바보(idiot)," "아편(opioid)"이라고 부른 정치적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트윗까지 지워가며 과거의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지만, 밴스의 당내 경쟁자 조쉬 맨델이 그걸 놔둘 리 없다. 맨델 쪽에서 만든 아래의 광고는 밴스가 얼마나 트럼프를 욕했는지 보여주는 발언을 30초 안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광고가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자 트럼프가 나서서 광고를 내리라고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편에 서서 밴스를 공격하는 광고인 건 알지만 "(밴스는) 트럼프를 바보라고 불렀다" 같은 말이 계속 TV에 등장하는 게 불편하다는 거였다.
결론적으로 친트럼프의 오하이오주에서 출마한 밴스가 트럼프를 비판한 역사는 숨길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밴스는 자신이 트럼프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을 뿐이라며 했던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있고, 더 나아가 한때 사이가 좋았던 주류 사회나 진보 미디어(밴스는 2017년 여름까지 뉴욕타임즈에 칼럼도 기고했다)와는 담을 쌓는 듯 보인다.
변신, 혹은 회귀
이런 J.D. 밴스의 변심을 심층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매거진의 기사 'The Radicalization of J.D. Vance(J.D. 밴스의 과격화)'는 길지만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기사는 밴스의 수염 얘기로 글을 시작한다. 밴스가 기른 수염은 그의 변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밴스의 수염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주니어도 처음부터 수염을 기른 게 아니었다. 트럼프의 두 아들, 특히 정치적 활동이 두드러진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의 임기 중반을 넘길 무렵부터 수염을 기르고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가 기른 수염 때문에 그를 더 싫어했지만,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를 지지하는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을 지지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외모 취향을 반영하는 것뿐이다. 201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 남성들 사이에 수염을 기르는 게 유행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마초적인 힘의 과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수염을 기른 백인 남성들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트럼프 주니어나 J.D. 밴스가 기른 수염은 그런 그들과의 문화적 동질성을 보여주려는 제스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매거진의 기사를 쓴 사이먼 밴 주일렌우드 기자는 밴스가 수염을 기르고, 엘리트와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 모습은 그의 변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궤적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습된 무력감 vs. 자긍심
밴스는 뉴욕타임즈와 같은 진보적인 미디어와 결별한 후 자신이 "엘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불편했던 일을 종종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진보 엘리트들이 자신과 같은 힐빌리, 혹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보는 시각이다. 가령 뉴욕타임즈의 제니퍼 시니어가 '힐빌리의 노래'를 극찬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자신의 처지가 절대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운명적인 태도"와 "절망"에 빠져있다고 진단한 게 그렇다. 밴스는 이를 두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우리를 무력한 희생자(helpless victims)로 취급한다"고 비판한다.
제니퍼 시니어는 리뷰에서 특히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표현을 가져와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묘사하는데, 밴스는 이게 지난 수십 년 동안 변화한 미국 경제의 승자인 미국의 해안지역 엘리트들이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비판하는 밴스도 자신의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백인들의 좌절과 무력감이 분명히 드러나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이야기하려던 건 그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할머니는 자신에게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한다(do the right thing)"고 말했다며, 트럼프 지지자들은 무력감에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접 헤쳐나가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이야기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에서 밴스는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생각, 즉 아인 랜드(Ayn Rand)류의 개인주의, 혹은 리버태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밴스가 같은 책을 두고 2016년과 지금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의 책이 어느 쪽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그걸 보여주는 것이 2020년에 나온 이 책의 영화판이다. 론 하워드 감독은 이 문제작을 영화화하면서 최대한 정치색을 뺐다고 전해지는데, 그 결과 이 영화는 사람들이 처한 위기상황에 대한 고발이라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는 개인의 결단에 방점이 있는 것처럼 보여진 듯하다. 즉, "리버태리언들의 이상형" 같은 영화라는 것. 이를 싫어한 평론가들(아마도 밴스가 생각하는 "엘리트들")은 25%라는 형편없는 점수를 준 반면, 관객은 좋은 평가(83%)를 내렸다.
평론가들의 반응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글은 이게 아닐까 싶다: "Netflix's Hillbilly Elegy Is a Movie Afraid of the Book It's Based on." 넷플릭스가 만든 '힐빌리의 노래'는 원작(책)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무서워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밴스의 입지: 냇콘(NatCon)
그럼 J.D. 밴스가 정말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뭐였을까?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가진 보수적 가치다. "자식도 없고" 종교를 가지지 않은 진보적인 엘리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힐빌리들, 혹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가치는 운명의 결정권이 개인에게 있다고 믿고, 종교(=기독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가 그거다. 물론 이런 보수적 사회 가치는 전통적인 공화당도 줄곧 표방해왔다. 따라서 밴스의 정치적 입지가 전통적인 공화당과 갈리는 부분은 바로 재정적(fiscal)인 부분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줬던 블루칼라 유권자 중 상당수가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히기 전까지)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밴스는 돌아가신 자신의 할머니도 샌더스를 좋아하고 지지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유권자들이 힐러리를 지지하는 대신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는 힐러리가 상징하는 페미니즘과 사회적 진보(social liberal) 가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밴스의 해석이다.
물론 샌더스 역시 사회적 진보에 해당한다. 하지만, 샌더스는 재정 진보(fiscal liberal), 즉 경제적 평등을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삼은 정치인이다. 즉, 2016년에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고, 이들은 샌더스의 메시지를 좋게 생각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밴스가 샌더스 수준의 진보적인 재정 정책을 외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공화당 정치인들(가령 미치 매코널, 재정 보수)이 꾸준하게 유지해온 부자, 기업 감세(tax-cut)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정부가 재정적 방법으로 개입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 개입이 임신 중지나 백신 패스, 젠더 다양성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화당 내에서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근래들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을 '냇콘(NatCon: National Conservatism, 국가보수주의)'라 부른다.
'지적인 트럼프주의'는 가능할까?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트럼프는 재정 진보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부자 감세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재정 보수주의자다. 다만 그가 포퓰리스트였기 때문에, 그리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백인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전통적인 "워싱턴 정치인들"을 싸잡아 공격하는 과정에서 재정 진보를 좋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받았을 뿐이다.
트럼프가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도 (샌더스에게도 호감을 가졌던) 가난한 백인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방법이다. "They hate ME because they hate YOU" 같은 표현이 그거다. "저들(주류/엘리트/진보 세력)은 여러분을 미워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지하는) 저를 미워하는 겁니다"라는 말은 자신과 지지자를 동일시해서 자신이 공격을 받을 때 지지자들도 분노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자신과 트럼프를 동일시하게 된 지지자들에게 트럼프가 추진한 부자 감세 정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J.D. 밴스를 비롯한 '냇콘' 혹은 국가보수는 트럼프가 시작한 프로젝트를 끝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트럼프는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민주(1사분면)-공화(3사분면)의 양당 구도 내에서 대표된 적이 거의 없는 2사분면이 가진 정서의 간만 봤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 모른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는 냇콘에 속하는 인물로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Tucker Carlson)이나 공화당의 조쉬 홀리(Josh Hawley),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을 지목한다. (이들이 냇콘의 어젠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기 보다는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를 응징하거나, 팬데믹 동안의 재난 지원금 지급에 찬성했다는 점을 들어서 그렇게 분류하는 것 같다. 그 정도로 냇콘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공화당의 친기업, 보수적 재정 정책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J.D. 밴스는 그들보다는 이 어젠다에 진지해 보인다. 앞 글에서 언급한 벤 샤피로와의 인터뷰에서 샤피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작은 정부론과 정면충돌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모습에서 요즘 공화당 의원들에게서 찾기 힘든 진정성이 보였다. 물론 샤피로는 이 문제에서 출연자와 의견을 같이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하자마자 손쉬운 사회적 보수 이슈로 방향을 틀어서 함께 민주당을 욕하는 쪽으로 마무리했지만, 최소한 밴스의 생각을 엿볼 기회는 되었다.
밴스의 입장, 혹은 전략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운드바이트는 이거였다. "1990년대 포츈 톱10 기업은 하나를 제외하고 (혹은 모두) 공화당을 지지하는 CEO가 이끌었지만, 2020년대 톱10 기업은 전부 민주당을 지지하는 CEO가 이끌고 있다. 공화당은 기업 영역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구글, 애플 같은 기업들이 진보적인 어젠다를 강요한다'는 앵글로 접근하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허용하지 않을 기업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접근 아닐까? 그런 앵글로 트럼프 지지자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이는 냇콘을 두고 '지적인 트럼프주의(Intellectual Trumpism)'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작업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의 마초 수염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